공영방송 총파업 르포 下

  
  불그스름하게 노을이 깔린 광화문 광장에는 어느덧 시원한 가을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언론에도 새로운 개혁의 바람이 찾아오기를 염원한 사람들이 광장을 빼곡하게 메꿨다. MBC 사옥 앞에 있던 태극기 부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파였다. ‘SAVE OUR MBC’라고 적힌 노동조합(이하 노조) 티셔츠를 입은 기자, PD, 아나운서부터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30대 부부, 백발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한 손에 ‘고대영, 김장겸 사장은 물러가라’가 적힌 피켓을, 다른 한 손으로는 촛불을 들고 있었다.


KBS와 MBC가 총파업에 들어선 지 이제 4일이 지났다. 이곳은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파티’(이하 돌마고파티)가 진행되는 현장이다. 돌마고파티는 매주 한 번씩 언론 정상화를 위해 진행되는 시민문화제다. 마봉춘과 고봉순이라는 애칭을 붙여줄 만큼 아끼고 신뢰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외압으로 인해 망가진 지금의 KBS와 MBC를 바로 잡기 위해 기획된 집회다. 전국 213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꾸려진 KBS·MBC정상화시민행동의 주최로 진행되고 있다.

 

“공영방송 정상화의 필요성, 많은 시민이 공감했다”
  경복궁 앞 설치된 무대에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켜졌다. 큰 스크린 위로 빨간 넥타이와 반짝거리는 파란 조끼를 입은 중년 남성이 등장했다. MBC 김민식 PD였다. 무대에 오른 그의 선곡은 지누션의 ‘말해줘’였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흥겨운 반주 위로 김 PD의 익살스러운 랩이 깔렸다. “언제까지 바라봐야만 해. 고대영 이제는 그만해. 이미 넌 고봉순을 망쳤잖아. 언제나 그랬잖아. 그렇지만 넌 듣고 있질 않잖아”


  공연을 마친 후 김 PD는 여느 시민처럼 인파 속에 앉아 다른 사람의 발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지난여름, 고요한 MBC 건물 안에서 홀로 “김장겸은 물러나라”라고 쩌렁쩌렁 외치며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었다. 해당 영상은 당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많은 언론도 그를 주목했다. 이후 공영방송 정상화를 꿈꾸는 여러 언론인과 시민이 그의 퍼포먼스를 따라 해 SNS상에 게시하면서 언론 개혁에 대한 여론이 한층 더 세졌다. 라이브 방송을 함으로써 총파업의 촉발제가 됐다는 기자의 질문에 김 PD는 “그동안 공영방송이 정상화돼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시민이 많았다. 누군가가 나서 이 문제를 크게 터뜨려주기를 기다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외에도 <PD수첩> 방영을 정지한 PD들, 각자 맡은 방송을 그만둔 아나운서 등 많은 노조원의 행동이 이어졌기에 지금의 큰 판이 벌어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공영방송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 묻자 그는 “3대 적폐인 재벌, 검찰, 언론 중에서 시민이 힘을 모아 가시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게 언론 적폐다. 검찰은 조직 자체가 몇십 년 넘게 공고화돼 개혁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빼앗기도 사실 쉽지 않다. 반면 공영방송은 김장겸과 고대영 두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최승호, 이용마 등의 해직자를 복귀시킨다면 정상화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시민은 정말 잘 싸워주고 있다. 이렇게 모여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응원해주고 있지 않은가. 공영방송은 지금까지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서 정말 죄송하다. 이제 언론 노조원들이 사내에서 더욱 잘 싸워서 방송을 바로 세워야 한다”라고 말하는 그의 주먹이 꽉 쥐여 있었다.


  해가 져 어두워진 광화문 광장에는 촛불이 빛나고 있었다. 한 시민 발언자가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 무대 위에 섰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故유예은 학생의 아버지 유경근 씨는 굳게 입술을 다문 채 집회에 모인 이들을 쳐다보다 처음 한 마디를 뗐다. “여러분의 파업을 적극 지지한다” 힘 있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박수쳤다. 하지만 뒤따른 발언에 현장에 있던 언론인들의 박수, 환호가 멈췄고 정적이 흘렀다. “그 이유는 망가져 버린 언론의 피해자는 바로 예은이 아빠인 나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유 씨는 거친 숨이 섞인 강한 어투로 발언을 이어 나갔다. “KBS는 사실 확인도 없이 정부 얘기를 그대로 보도했고, 세월호가 침몰한 그 날 저녁 뉴스에 사망보험금 얘기를 언급했다. 실존하지 않던 에어포켓이 배 안에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언론에서 수차례 보도해 속았다”라고 울부짖으며 말했다. 유 씨는 이어 “사실 확인과 윤리적인 보도가 중요하다. 더불어, 한 발짝 더 나가 그 이면에 숨겨진 거짓과 위선을 고발해주는 공영방송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보도라는 그 중립성 뒤에 숨지 마라”라고 전하며 발언을 마쳤다.


  이처럼 공영방송의 몰락은 국민의 가슴에 시퍼런 멍을 남겼다. 사실 확인과 공정 보도라는 기본이 무너진 상태에서 언론은 민주주의를 흐렸다. 독점 기업의 비리를 밝히고 약자를 대변하는 방송이 사라져갔다. 그렇게 <PD수첩>과 <100분토론> 등의 시사 프로그램, 각종 다큐멘터리의 방영이 중단됐다.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하는 구조로 언론이 변질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시민은 좌절하지 않았다. 바르게 보도하지 않는 언론을 비판했고, 이를 고치기 위해 행동했다. 바로 자신을 위해, 나아가 가족과 후손, 그리고 좋은 사회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공영방송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촛불이 방송 민주화의 지평을 열었다”
  투쟁 구호와 격양된 발언이 이어졌던 무대에서 기타 튜닝 소리가 들려왔다. 가수 ‘안녕바다’가 무대에 오르고 노래 ‘별빛이 내린다’의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졌다. 영상을 찍는 사람부터 멜로디에 맞춰 리듬을 타는 사람까지 시민들은 자유롭게 돌마고파티를 즐겼다. 그중에서도 ‘KBS MBC 총파업을 지지합니다’라고 적힌 피켓과 함께 셀카를 찍는 한 시민이 있었다. 다가가자, 그녀는 함께 찍자며 브이를 해 보였다.


  신준희(51, 노원구 중계동) 씨는 ‘시민의 눈’이라는 단체에 속해 선거 투표함을 감시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시민이었다. 그녀는 “우리나라 곳곳에 적폐가 박히지 않은 곳이 없지만, 가장 중요하고 빨리 청산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은 대중의 눈과 귀를 가려버리고, 생각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방송은 이러한 위험한 기능을 가졌기에, 믿을 수 있는 공영방송의 존재가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언론이 망가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감시하는 시민의 역할이 필수적이다”라고 덧붙였다.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가는 신 씨는 “세상은 국민과 시민으로 나뉜다. 국민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반면, 시민은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원하는 것을 요구하면서 정치에 참여한다. 동시에 권력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그녀는 두 눈썹에 힘을 준 채 얘기를 계속했다. “특히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 나갈 젊은 층이 더욱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라는 말을 끝으로 신 씨는 연설이 진행되는 무대에 집중했다.


  다음으로 발언대에 오른 사람은 KBS, MBC 노조 위원장이었다. 김연국 MBC 노조 위원장은 양손으로 마이크를 꼭 쥐며 말을 이어나갔다. “MBC를 아직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하고 싶다.” 군중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MBC는 30년 전 군사독재 시절에 진실을 은폐하고 정부를 찬양했다. 하지만 MBC의 젊은 기자들은 굴하지 않고 한국 언론 사상 최초로 노조를 만들었다. 수차례 총파업을 진행한 결과,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 <어머니의 노래>를 방영할 수 있었다. 시청률 44%를 기록할 만큼 대중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노조 창립선언문에는 ‘저 빛나는 6월 항쟁이 방송 민주화의 공간을 열었다. 이제 우리가 좋은 프로그램으로 보답할 때다’라고 적혀 있다. 똑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작년 겨울, 촛불이 우리에게 공영방송을 되살릴 기회를 줬다. 우리가 왜 이렇게 쉽게 무너졌는지 더 치열하게 반성하고 성찰하겠다”라고 호소했다. 굳건한 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지난 9년간 공영방송이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가, 그리고 국민의 가슴이 무너진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 이를 잊지 않고 다시는 허물어지지 않을 공영방송을 만들어 응원에 꼭 보답하겠다”라고 말하며 연설을 마쳤다.

 

시민과 언론인이 하나 돼 언론 개혁의 ‘청신호’를 밝히다
  돌마고파티의 끝은 ‘맞절’이었다. 무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모여 앉아있는 언론인들과 왼쪽에 앉아있는 시민이 서로 마주 보면서 인사했다. 맞절은 아마도 지난날의 아픔을 용서하고 앞으로 서로 힘을 합쳐 공영방송을 되찾자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시민과 방송인이 한 마음 한 뜻을 이뤘다.


  이를 방증하듯 공영방송의 미래도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작년 6월, 광화문 광장에서 ‘공정언론 콘서트’가 열렸다. 무너져가는 방송을 일으키고자 기획됐던 그 무대에 해직자로서 올라 발언했던 YTN 조승호 기자는 지난 8월 3,225일 만에 복귀했고, 복직자로 돌마고파티에 등장했다. 이 외에도 방송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돼있는 MBC 유의선 이사가 지난달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는 등 조금씩 언론계도 변화가 보인다. 특히, 고용노동부에서 김장겸 사장을 조사하고 검찰에 송치하는 등 언론 정상화를 위한 일이 진전되는 중이다. 시민의 성원에 힘입어 언론인들도 더욱 의기투합해 열심히 파업에 임하면서, 조금씩의 발전을 이끌어 내고 있다. 공영방송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올 그 날이 머지않았다.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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