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든 성직자’라고 불리는 사진작가 앤드루 조지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20명을 만났다. 작가는 2년에 걸쳐 환자에게 ‘처음 진단을 받았던 순간에 대해 말해주세요’와 같은 총 37개의 질문을 던져가며 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모든 사진은 디지털 보정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촬영됐다. 관람객의 눈높이에 사진이 아닌 환자들의 자필 메시지와 인터뷰 일부를 배치한 까닭은 사진보다 글을 먼저 봐달라는 작가의 부탁이다.

우리 사회가 죽음을 터부시하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만약, 이를 <있는 것은 아름답다>의 사진작가 앤드루 조지에게 묻는다면 분명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거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각 개인의 가치관이 달라진다는 그의 역설은 오늘날 고통 완화 치료를 받는 20명의 인물 사진으로 탈바꿈됐다.

전시는 사진 이외에도 환자 본인의 심정을 적은 손편지와 대면 인터뷰를 통한 답변의 일부를 발췌해 총 3번에 걸쳐 한 인물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 한 갈피를 펼쳐보는 것도 꽤 에너지가 소모돼 20명의 이야기를 모두 주목하는 건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돕는 백색소음 음향과 전시장 중앙에 놓인 벤치는 관람객이 다른 이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목도하는 만큼 온전한 시간을 갖길 바라는 기획 측의 세심함이 돋보였다.

한편, 성별과 피부색을 비롯해 성장 배경까지 제각각인 20명의 인물은 그동안의 고통을 통해 여느 누구보다 죽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 중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눈부신 사랑을 했던 여정으로 묘사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타인을 두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의 여생은 단편적으로 볼 때, 죽음 외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상 우리와 같은 표정을 짓되 다른 감정을 갖는다는 서로 간의 접점을 보인다.

실제로 사진 속 환자들의 얼굴을 마주하면 보통의 예상과는 달리 병색을 읽기 힘들다는 첫인상을 받게 된다. 이러한 간극은 우리가 너무나 쉽게 환자의 미소와 찡그림 등을 개인의 상태를 나타내는 표식이 아닌, 아프기 때문에 나오는 표정으로 단정 지어왔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환자와 일반인을 나누는 이분법 체계를 내려놔서야, 관람객은 이들의 삶에 스스로를 대입해 봄으로써 어렴풋이 죽음을 경험할 기회를 얻는다.

나아가 이들의 인터뷰를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을 회상하고 털어놓기도 하지만, 그 속에 짙은 후회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있는 것은 아름답다> 포스터에 모습이 실린 조세피나는 인터뷰에서 인생을 ‘죽음으로 가는 대기실’로 비유한 바 있다. 곧 죽을 것을 알기에 마음이 평온하다던 그녀는 죽음으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흔히들 죽음을 맞닥뜨리면 지금껏 겪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면서 지난날을 후회한다고 알려진 것과는 다른 모양새다.

사실 이 같은 차이는 환자들 스스로가 호스피스 병원 내에서 ‘애도’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겨난다.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에 의하면, 애도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적절한 시간을 통해 대상에게 쏟았던 생의 에너지인 리비도(Libido)를 회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여기 환자들은 죽음이라는 상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애도의 작업을 거쳐 우울증이라는 병리적 특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후회의 감정을 지워낸 거다. 이로 인해 환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후회가 아닌 주변인과 함께 여생을 준비하는 데 사용하게 된다.

끝으로 사진을 감상하던 관람객은 어느 순간 작품 사이에 놓인 큰 거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면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모습을 상상할 테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했던 먼 훗날의 모습은 머지않아 죽음과 함께 우리의 몸에 뿌리내릴 것이다. “여러분은 인생의 편도 티켓을 쥐고 있는 셈이에요. 인생을 허비하지 마세요.”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20명의 주인공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건 이 한 문장이 아닐지 싶다.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생과 어리석음을 토대로 이들이 남긴 사진 20장과 20개의 인터뷰는 우리에게 죽음을 눈으로 목도할 수 있는 몇 없는 자산이다.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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