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 위기는 빈번하다. 그 양상 중 하나가 외환위기다. 이는 외화가 부족해 나라에 부도가 나거나, 그렇게 될 위험에 빠진 상황을 가리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이 겪은 1997년 IMF 위기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당시 위기를 가리켜 간단히 ‘환란’이라고도 부른다. 


  외화 부족으로 국가 부도를 경험한 한국은 그 이후 외화를 확충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다행히도 그 이후 국내 기업의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내 기업이 외국에서 벌어온 외화가 꾸준히 쌓였고, 정부도 어느 때보다 외환 관리에 신경을 썼다. 그 결과 우리나라 외환보유핵이 세계에서 매우 높은 수준인 3,700억 달러가 됐다.


  외환위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발전해왔다. 그중 하나가 ‘통화스와프 협정’이다. 이는 서로 다른 통화를 가진 두 나라가 일정한 금액을 한도로 정한 뒤, 사전에 합의한 교환 비율에 따라 언제든 돈을 맞바꿀 수 있도록 하는 약속이다. 이 협정이 빛을 발할 때가 바로 외화가 부족해지는 우려가 클 때다. 외화가 적어지는 사태에 이르면 해당 나라의 중앙은행은 스와프 협정에 따라 다른 나라에서 일정한 한도까지 외화를 가져올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스와프 협정을 맺은 상대국의 통화다. 교환하기로 한 상대국의 통화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안전’하다고 평가받지 못하는 이상, 스와프 협정은 외화가 부족해지는 상황을 막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안전한 통화는 미국의 달러화와 일본의 엔화, 유럽의 유로화 정도다. 예컨대, 우리나라에 2008년 금융 위기가 촉발되는 과정에서 원화 가치는 급락했는데, 이 상황을 급반전시킨 결정적 계기가 바로 2008년 10월에 맺어진 한-미 간 통화스와프 협정이었다. 미국의 달러가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논란 중인 한-중 통화스와프 협정에 대한 재연장 협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은 2008년 12월 스와프 협정을 처음 맺은 뒤 2014년에 만기를 3년 더 연장했다. 이때 정해진 만기가 바로 지난 10일이다. 현재 양국은 이례적으로 만기를 넘어서까지 재연장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순탄하지 않은 협의 과정을 놓고 일부에선 재연장 협의 불발 가능성을 제기하며, 한국이 외화 부족을 대비할 수 없게 돼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가깝다. 앞에서 본 대로 중국의 위안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전한 통화가 아니다. 처음부터 한-중 통화스와프는 외화 부족을 대비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먼 협정이었다는 의미다. 두 나라가 협정을 맺은 건 불어난 경제 규모만큼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안화가 더 높은 위상을 얻고자 하는 중국 쪽 바람과,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좀 더 진전시키려는 한국 쪽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이다. 한-중 스와프 협정 재연장 논의와 위기 가능성을 연결하는 건 ‘위기 팔이 상업주의’란 오해를 살 수 있다.


김경락 한겨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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