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가 허리를 한껏 굽혀 백주년기념관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오전(7시-10시)


11월 중간고사 기간의 마지막 날인 2일, 오전 7시. 매서운 아침 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동인관 107호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들어서니 3명의 청소노동자가 기자를 반겼다. “젊은 사람이라 이 시간에 못 올 줄 알았더니만, 다행히 왔구먼? 하하.” 일찌감치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있던 어머님들은 새벽부터 일어나느라 머리도, 옷도 엉망이었던 기자를 보고선 유쾌하게 웃었다. “학생도 왔으니까 이제 출발해보자고.” 본교 청소노동자 노조 분회장인 홍현숙 씨가 힘차게 앞장섰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백주년 기념관 4층이었다. 이곳에서 홍 씨는 또 다른 청소노동자 A 씨를 소개해줬다. 기자가 하루 동안 따라다닐 A 어머님과의 첫 조우였다. A 씨는 백주년기념관 4, 5층의 청소를 담당하고 있다. “아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얼른 일 시작해야 하는데, 학생한테 일하는 거 보여줘야 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잖아.” A 씨는 기자가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시작했다. A 씨가 이토록 급하게 일을 시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원래 본교 청소노동자의 오전 근무시간은 7시부터 10시까지지만, A 씨는 매일 6시 10분쯤에 일을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각에 나오지 않으면 1교시 시작 전까지 강의실 청소를 끝마치기 어렵다. “마음 같아서는 6시보다 더 일찍 나오고 싶은데, 백주년기념관이 6시에 열려요.” 하지만 6시부터 출근했다고 해서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A 씨는 오전 근무를 10시에 끝마쳐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이고, 오늘은 몇 시에 끝날지….” A 씨의 걱정스러운 모습에 기자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늘 기자가 7시에 온다고 해서 1시간 가까이 일이 늦춰진 셈이었기 때문이다. 서둘러야 했다.


A 씨는 먼저 4층 강의실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어제 강의실에서는 시험이 치러졌는지, 둘씩 짝을 지어 붙여져 있던 책상들이 서로 떨어진 채로 흐트러져 있었다. A 씨가 책상의 정렬을 맞추면서 빗자루로 바닥을 쓸자, 기자도 거들기 위해 잠시 카메라를 내려두고 책상을 부여잡았다. 그러다가 청소하는 데 있어서 책걸상이 의외의 방해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주년기념관 강의실에 있는 책상은 의자와 합쳐진 일체형이다. 책상 밑 먼지를 쓸어 담기엔 굉장히 불편한 구조였다. 결국, A 씨는 무거운 책걸상을 들고 먼지를 쓸어내곤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힘겨운 빗자루의 역할이 끝난 뒤에는 대걸레가 바닥을 시원스레 닦아냈다. “어제 오후에 강의실 몇 개를 미리 해놓고 가서 다행이야. 이 시간대에 다 못 해놓으면, 이따가 학생들한테 ‘에고, 미안해요.’하고서라도 잽싸게 치우고 나와야 해요.” A 씨가 자신의 몸집만 한 파란색 쓰레기통을 밀며 깔끔해진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강의실 청소를 끝낸 A 씨의 다음 장소는 화장실이었다. “화장실도 웬만하면 학생들 오기 전에 깨끗하게 치워놔야 해요. 그래야 편히 쓸 거 아니에요.” A 씨의 청소 경로는 학생이 얼마나 불편함을 느끼는가를 기준으로 결정됐다. A 씨가 세면대에서 파란색 걸레를 힘차게 빨았다. 이윽고 걸레를 들고 변기 여기저기를 쓱쓱 닦았다. 맨손이었음에도 걸레는 변기 안쪽까지 놓치지 않고 싹싹 지나갔다. A 씨는 변기를 다 닦고 나서 그 옆에 가득 차 있는 휴지통도 비웠다. 더러운 휴지를 치우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예전에 처음 왔을 때는 더러워서 어떻게 만지나 했지. 근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어. 장갑을 끼면 불편해서 일을 빨리 못 해.” 기자는 널찍한 화장실 여러 개를 반짝거리게 만드느라 퉁퉁 부은 A 씨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A 씨의 손이야말로 존경받아야 마땅했다.

△A 씨가 맨손으로 걸레를 쥔 채 변기를 닦고 있다

 

 

 

 

 

 

 

 


강의실과 화장실만 청소했는데도, 금세 9시에 가까워졌다. A 씨는 기자에게 조금만 쉬겠느냐고 물었다. 고작 두 시간을 따라다녔을 뿐인데도 기진맥진해진 기자는 뻔뻔스럽게도 외쳤다. “너무 좋죠.” 기자에겐 의자가 필요했다.


그런데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나온 테라스에서도, A 씨는 테이블과 의자를 닦고 주변의 쓰레기와 낙엽을 치웠다. “여기도 치우셔야 해요?” 기자가 물었다. “그럼요. 여기 말고도 할 게 아직 많지. 열람실이랑 복도도 아직 안 했고 교수연구실 쪽 쓰레기도 비워야 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10시 30분 금방 넘어.” 일거리는 줄지 않는데,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론, 7시에 시작해서 10시에 끝내라고 정한 사람은 실제로 여기서 일을 해봤을까 강한 의문이 들었다.


A 씨는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일하러 갈 채비를 했다. 커다란 파란색 쓰레기통과 기자는 A 씨의 뒤를 졸졸 따라나섰다. 우선, 학생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열람실의 각종 쓰레기와 먼지, 머리카락 등을 쓸어내야 했다. A 씨는 환기를 위해 열람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시선들이 느껴졌다. 조용한 열람실의 분위기가 A 씨로 인해 깨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소를 대충 해버리고 나갈 수는 없었다. “열람실이 시험기간에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해서 먼지가 말도 아니야. 쓸어내는 것만 1시간이 걸려요.” 실제로 A 씨는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1시간 동안 먼지와 씨름해야 했다.


청소 후 열람실을 나온 A 씨의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대걸레로 열람실 닦기 전에 복도부터 해야겠다.” A 씨가 땀 마를 새 없이 빠르게 화장실 옆에서 대걸레를 들고 나왔다. 백주년기념관의 바닥은 다른 건물과 달리 흰색의 타일이라 검은 자국이 많이 남고 지우기가 어려운 편이다.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얼마 안 있어 학생들이 지나다니면 금방 발자국이 생기기에 십상이었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지나다닐 때 닦아놔야 했다. 덩달아 조급한 기분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고 대걸레를 하나 더 달라고 해서 A 씨를 도와 복도를 닦았다.


그렇게 복도를 다 닦아갈 무렵, A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본교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된 용역업체의 소장에게서 온 호출이었다. 소장은 A 씨를 비롯한 백주년기념관의 모든 청소 담당자들에게, 지하주차장을 닦는 기계가 고장 났으니 대신 청소하러 내려오라고 전달했다. “아유, 여기도 아직 다 못 했는데…. 학생, 나머지는 이따가 오후에 해야 되겠다. 학생도 점심 먹고 다시 와요.” 대걸레도 차마 정리하지 못한 채, A 씨는 소장의 지시에 따라 재빨리 지하로 내려갔다.

오후(1시-4시)

오후 1시. 본교 청소노동자들의 오후 근무가 시작되는 시각이다. 이제 그들은 4시 퇴근 시각 전까지 총 3시간 일을 하게 된다. 점심 식사 후 다시 백주년기념관을 찾아갔을 땐, A 씨가 벌써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A 씨는 오전에 소장이 갑작스레 지시한 일을 하느라, 결국 11시가 다 돼서야 쉬러 갔었다고 한다. 게다가, 오전에 못 끝낸 일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A 씨는 아까 쓸기만 했던 열람실을 이번에는 대걸레로 열심히 닦아냈다. 걸레질만 했는데도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오전보다는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A 씨는 일단 복도의 여러 쓰레기통부터 비우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4층 열람실 앞 복도의 쓰레기통이 종이, 페트병, 비닐 등 각종 쓰레기로 넘쳐났으므로 빨리 치워줘야 했다. 시험기간이 아직 끝나기 전이어서인지 특히나 커피가 담긴 일회용 컵이 쓰레기통에 많이 올려져 있었다. 음료가 많이 남은 컵은 일일이 내용물을 따로 버려줬다. “사실 지금은 많은 것도 아니야. 지난달 연휴 때는 아주 난리였다니까.” A 씨는 지난 10월 초의 긴 추석 연휴 때 학교에 나왔던 일을 이야기했다. 당시 A 씨는 아무리 쉬는 날이라지만 학교 건물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있으니, 쓰레기가 계속 쌓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휴 중간에 백주년기념관을 찾아갔다. A 씨의 예상대로 열람실 주변은 학생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했고, 변기는 대부분 막혀있었다. “친구한테 듣기로는 광운대학교는 그럴 줄 알고 연휴 때 돈 주고 특근을 이틀 정도 시켰대. 근데 난 이게 뭐야. 돈도 안 받고 나 혼자 나와서 일했지.” A 씨가 쓰레기 수거 후, 어느새 빵빵해진 검은색 봉투를 파란색 통에 넣으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 뒤로도 교수연구실이나 복도 모퉁이에 있는 쓰레기통과 강의실이나 화장실에 쌓인 쓰레기들을 치우고 나니, 큼지막한 검은색 봉투가 하나 더 생겼다. 오늘이 쓰레기가 적은 날에 속했다는 게 놀라웠다.


쓸고, 닦고, 치우고 일정한 일을 반복하다 보니, 오후의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갔다. 드디어 퇴근 시간에 가까워져, 함께 지하 3층으로 오후 동안 모은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갔다. 하루 종일 A 씨의 곁을 지킨 커다란 파란색 쓰레기통에는 검은 봉지들로 한 가득이었다. 파란 통이 모조리 비워지고 나서야 하루의 무게가 모두 내려간 느낌이었다. A 씨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집 가면 침도 좀 맞으러 가고, 동네에 운동도 하러 가요.” 기자는 오늘 하루를 같이 보낸 A 씨에게 진심으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66살의 A 씨는 2011년 청소 용역으로 본교에 처음 오고 나서 6년간 학교의 이곳저곳에서 고된 일을 해왔다. 기껏 해봐야 3년 학교 다닌 기자에게 A 씨는 왕고참이자 대선배였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백주년기념관에서 일하는 어머님들의 휴식공간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휴식처는 총 6명이 각각 2명, 4명씩 쉴 수 있도록,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A 씨가 쉬는 2인용 공간은 생각보다 매우 비좁은 편이었다. 창문도 없고 냉난방 에어컨도 없었다. 선풍기가 하나 있지만, 그마저도 어머님들이 직접 준비해놓은 물품이었다. 기자가 방을 살펴보는 동안 퇴근할 준비를 마친 A 씨가 말했다. “요즘엔 인원을 한 명 줄인다는 소문이 있더라고. 여기서 일이 더 많아지면 안 되는데 말이에요. 내가 이것 때문에 요새 고민이 많아요.” 이날 알게 된 바로는 본교 청소노동자의 근로 시간은 오전과 오후를 합쳐 총 6시간이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본 A 씨의 노동은 그 짧은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A 씨의 걱정이 현실로 일어나는 일이 없길 바랐다. 이제야 청소노동자의 하루에 관심을 가져보게 된 무능한 3학년 기자의 작은 바람이었다.


글·사진 이지은기자 unmethi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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