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공론화를 통해 발생한 민주주의 논쟁, 민주정치의 분열 초래 위험 있어

 지난달 15일,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이 결정됐다. 이는 시민들의 공론조사를 통해 도출된 결론이다. 공론조사란 사람들이 한 논제에 대한 여러 근거를 접한 뒤, 충분한 토론을 통해 판단하는 방법이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깊게 고민한 뒤 다수결의 원칙을 통해 결론짓는다는 점에서 숙의민주주의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이번 공론조사는 국민이 신고리 5, 6호기의 운명을 결정할 실질적 권한을 부여받아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한국 사회가 숙의민주주의 진전이라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 역사적 경험을 한 것이다.

물론 이번 공론조사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소년들은 의견을 밝히지 못해 미래세대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등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숙의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이번 시도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공론조사의 창시자 제임스 S.피시킨 교수가 제시한 ‘주장의 균형성’, ‘참여자의 다양성’, ‘토론의 평등성’ 등 숙의민주주의의 조건을 따져 볼 때도 이번 시민참여단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된다. 우선, 시민참여단은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졌다. 성별은 정확히 절반씩이고 연령은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일정한 비율로 구성했으며 거주지도 실제 인구분포와 비례하게 설정됐다. 또한, 이들에게 많은 정보가 주어졌고 시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토론에 참여해 자유롭게 주장을 펼쳤다.

한편, 최근정치권과 학계 전문가 사이에서는 공론조사를 직접민주주의의 일환으로 보는 견해와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해석하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전자는 한국 정치가 국민과 너무 멀어졌고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정치가 시민들의 요구에 알맞게 반응하게끔 그 행태와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에 입각해 있다. 따라서 이들은 공론조사가 정당한 시민참여라고 주장한다. 반면, 후자는 시민의 대표자로 구성된 국회를 거치지 않고 중대 사안을 결정하는 방법은 대의민주주의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간 적대적 관계를 따지는 논쟁은 소모적이다. 여러 민주주의는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현대 민주국가들은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참여와 대표성에 관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선진 국가는 시민이 입법에 관한 제안을 하는 국민발안이나, 유권자들이 부적격하다고 생각하는 자를 파면시키는 국민소환 등의 방식을 도입해 시민의 직접 참여를 늘려나가고 있다.

아울러 참여민주주의도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성 문제를 보완해주는 성격을 지닌다. 참여민주주의는 다수 국민이 의사 결정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다. 여기에 깊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방식을 구체화한 형태가 숙의민주주의다. 따라서 숙의민주주의도 대의민주주의를 보충한다고 볼 수 있다. 숙의민주주의도 결국 시민 참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고안되고 발전된 대의민주주의 발전 프로젝트 중 하나인 것이다.

이처럼 현대 민주주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공론조사를 계기로 촉발된 민주주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의민주주의를 굳건히 하면서, 그 기반 위에 국민의 참여와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다양한 현대 민주주의의 유기적 측면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를 간과한 채 적대적 관계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민주정치를 단절적으로 바라보게 할 소지가 있다. 국민주권주의는 다양한 민주주의적 요소가 상호 경쟁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통해서만 완성된다.

조석장 파이낸셜뉴스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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