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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동덕문화상-시 부문 당선작
2017년 11월 14일 (화) 22:14:11 동덕여대학보 ddpress@dongduk.ac.kr
   
 

•시 부문 당선작


정오의 고백1) ―유진에게


박세진(국어국문 14)


당신 어제 오지 않았어
창문을 닫을 사람이 없어서 방안이 온통 젖었지
비가 그치기 전부터 새들이 쉼 없이 울었고 그 틈에 알았지
언젠가부터 내가 당신을 위해 볕을 가리고 있었다는 걸

쏟아지는 햇빛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도 좋을까
당신이 사랑했던 여름의 풍경은 여전히 바깥에 있을까
한때는 이런 것들이 궁금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늘, 그늘이면 좋아

당신 어제 울지 않았지
대신 하루 종일 창문을 닫고서 바스락거렸지 그건,
창틀에서 부서지는 나뭇잎의 소리 방 안의 목소리도
반으로 쪼개지고

얕은 땅 젖지 않는 흙
당신이 방 안을 비울 때마다 그늘의 기울기는 점점 더 가파르고
분명 장마가 시작될 거야 당신이 창문가에 설 때마다
번번이 빗나갈 예상을 던지곤 했다

여기, 내가 서 있는 곳
겨울에는 춥고 낮에는 볕이 들지 않는 곳
계절의 이름이 바뀔 때마다 빈 방을 위해 조금씩 기울어지는 곳
어린 식물을 키우다 잠이 든 사람이 가끔 조리개로 물을 뿌린다
 

1) 송유진, 「밤의 고백」

 

시 당선 소감


깊은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는 기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몇 번씩 멀리 떠나기도 했지만 영 속이 비워지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악착같고 가끔은 무딘 마음으로 말입니다. 무딘 마음에 사랑을 담아 쓴 시가 당선되어 기쁩니다. 이 마음이 오래가기를 바랍니다. 
이 시에 큰 영감을 준 유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졸업과 생일을 축하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수없이 많을 축하의 날을 같이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언제나 살아갈 힘을 보태어주는 우리 가족, 수민, 은지, 소영, 해린, 권민지 감독, 먼 곳의 혜원, 함께 한량의 꿈을 꾸는 승, 곁의 J에게도 마음을 전합니다.
스무 살 때부터 무지한 저의 지평을 열어주신 여태천 선생님! 앞으로도 선생님을 본받아 열심히 공부하고 계속 쓰겠습니다.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기가 힘이 듭니다. 부족한 저를 보듬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오며 가며 뵙기를 소망합니다.

 

시 심사평


시는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면서 언어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언어를 통해 이 세계를 발견하는 일은 시의 여러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입니다. 세계에 대한 응모자들의 섬세한 감각과 깊은 고민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까지 눈길을 끈 작품은 「조현」외 2편, 「세계 마지막 놀이」 외 2편, 「정오의 고백」외 2편이었습니다.
「조현」은 현실과 환상의 간극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의 차이를 ‘조현’이라는 증세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열은 현실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서 오기도 하고,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주체의 태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함께 투고한 「인터미션」에서의 한 구절 “끝나지 않을 사람멀미”는 그 단적인 증세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 마지막 놀이」는 두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어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는 시였습니다. 서로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살기란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분명한 목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는 축축했고 우리를 꼼짝 못하게 했으며 계속 살게”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그 과정의 변화를 알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맙니다. 그 감정이 “우리는 그냥 작은 방에 있었다”로 처리한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정오의 고백」은 오후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풍경은 곧 화자의 감정이기도 합니다. 비, 볕, 햇빛, 그늘, 장마 등으로 비유되는 당신에 대한 화자의 감정변화가 세밀하게 기술되고 있다는 점이 이 시의 미덕입니다.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발레 연습에서 수영으로 바뀌면서 역전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학생을 위한 아바베스크 연습곡」 역시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의 차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어 믿음이 갔습니다.
「정오의 고백」을 당선작으로 뽑았습니다. 응모자 모두에게 이 세계를 견딜 수 있는 언어의 힘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여태천(시인·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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