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씨앗>

지난달 2일 개봉한 영화 <폭력의 씨앗>은 군인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주용’의 단 하루를 보여준다. 그리고 24시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주용을 통해 폭력이 인간 내면에 스며드는 양상을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본 작품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냄으로써, 2017 전주 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분 대상과 CGV 아트하우스상을 연이어 수상해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 곁에 늘 존재하는 폭력

<폭력의 씨앗>은 폭력을 겪는 인간이 변화하는 모습을 생생히 표현했다. 이 영화는 복무 중 외박을 나온 주용이 군대 안팎에서 다양한 폭력을 경험하고 결국에는 자신도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특정 공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내부 폭력만을 다룬 기존의 군대 영화와는 다르다.

우선, 영화는 군대의 부조리한 체계를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누군가 선임병의 폭행을 고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용의 맞후임 ‘필립’은 고발 용의자로 지목돼 이가 부러질 정도로 맞는다. 그 과정에서 필립을 감싸주려던 주용도 구타를 당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군대 구조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는 연출을 통해 그 불편함을 한층 더 높인다. 정사각형에 가까울 만큼 가로 폭이 좁은 4:3 화면 비율은 군대가 드러내는 폐쇄성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주용의 뒤를 따라가듯 촬영된 영상은 다소 흔들리게 표현되면서 관객이 그의 불안정한 심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이어서 영화는 주용이 군대 밖에서 겪는 또 다른 폭력을 제시한다. 주용은 누나가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나는 감시당하듯 끊임없이 남편의 전화를 받고, 얼굴에는 군데군데 상처도 나있다. 이는 가정에서도 은연중에 존재하는 서열과 폭력을 드러낸다. 동시에 영화 전반에 내비치는 “남자가 성질도 좀 부릴 줄 알아야지”,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등 익숙하면서도 폭력적인 대사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폭력을 효과적으로 고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주용은 폭력의 피해자지만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폭력을 마주하다 보면 주변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주용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폭력은 이런 침묵 속에서 은폐되고 지속된다. 한편, 영화 막바지에는 주용 또한 필립에게 자백을 강요하며 그를 때리고 만다. 이를 통해 영화는 폭력을 겪으면서 우리 안에 또 다른 폭력이 싹튼다는 메시지를 ‘폭력의 씨앗’이라는 제목으로 전하고 있다. 이처럼 <폭력의 씨앗>은 단순히 폭력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폭력의 본질을 예리하게 밝혀주는 영화다.


장은채 수습기자 bepi@naver.com


폭력의 이면을 파헤치다

주인공 주용은 두 차례에 걸쳐 폭행을 저지른다. 후임을 때리라는 상병의 명령에 어설픈 위협을 가했던 그의 모습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 주용이 후임병 필립과 누나 주아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주저함이 없었던 건, 자신을 구타한 상급자를 스스로 체현했기에 가능했다.

극 중 폭행이 이뤄진 인물 관계를 살펴보면, 상병-일병과 남편-아내라는 일련의 권력 구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바로 군대 내의 계급 질서와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의 차이로 인해 생성된 권력 관계다. 흔히 폭력을 순간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벌어지는 것으로 여기지만, 이는 착각이다. 실제로는 상하 관계에서 권력을 잡은 이가 힘을 가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직 이들의 목적은 상처 내는 것이 아닌 상대에게 수치심을 줌으로써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다지는 데 있다. 이야기 속에서도 선임병 대웅은 자신과 달리 사회적 지위가 높아 보이는 필립을 겨냥해 긴장감이 맴도는 상황을 연출한다. 게다가 부사관 직함을 얻기 위해 부대를 고발한 후임병을 색출하고자 온갖 폭행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주용이 폭력을 행사한 대상 또한 자신보다 약자인 필립과 주아뿐이었다. 이처럼 영화는 폭력이 철저한 위계 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계산적인 행동임을 폭로한다.

한편, 훗날 이들의 모습을 상상할 때, 선임병의 모습을 똑같이 답습한 필립을 떠올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주아는 어떨까. 영화에서도 주아의 남편 수남은 키가 큰 젊은 남성인 주용이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반면에 소유물로 취급되는 주아는 한쪽 뺨이 멍으로 가득할 정도로 폭력에 노출돼야 했다. 이와 같이 여성 혹은 위계의 최하층에 있는 사람은 권력자의 위치를 점유하는 것도 불가능한 현실이 이들의 관계 속에 녹아 들어있다.

엔딩 직전, 감독은 주용의 얼굴을 숨김으로써 관객이 다음 장면을 예측하는 게 아닌 온전히 상상하도록 만든다. 각자 지닌 폭력의 씨앗으로 뒷이야기를 이어감으로써 스스로 돌아보게 하려는 날카로운 끝맺음이다.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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