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6시-11시 30분) 
  칼바람이 부는 11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정문 뒤 마련된 작은 경비소에 불이 들어오고 깜깜한 새벽의 어둠이 점차 가시고 있었다. “김 기자 왔어? 이리 와 앉아” 5명의 경비원 중에서 반장을 맡은 박정섭 씨가 가장 먼저 반가움을 드러냈다. 이윽고 박 반장은 나머지 경비원에게 기자를 소개했다. “이 학생은 오늘 하루 동안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취재할 김 기자입니다. 다들 김 기자가 질문하면 잘 대답해주도록!” 낯선 어른을 만나 어색해하는 기자를 보며 경비원들은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현재 본교 경비는 총 10명이며 5명씩 두 조로 나뉘어 운영된다. 근무는 24시간 동안 진행되고 새벽 6시에 두 조가 교대한다. 즉, A조가 오전 6시부터 일하면, 다음날 새벽 6시부터는 B조가 근무를 이어가는 시스템이다. 틈틈이 수면 및 휴식 시간이 있긴 하지만, 한 번 일터에 오면 24시간 동안은 충분히 쉴 수 없다. 일주일에 3-4번은 밤을 새우는 셈이었다. 하루에 커피를 두 세잔씩 먹는 건 이미 일상이 돼버린 지 오래였다.


  6시 반부터 경비원들의 첫 번째 일과인 조회가 진행됐다. 박 반장은 오늘 오전에는 특별히 수시 면접이 진행된다며 경비원들에게 말했다. 면접이 있을 때면 학교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또한, 차량을 안내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이 더 늘어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차 전형을 통과한 학생만 오는 날이라, 방문 인원이 대략 100-200명 정도로 예상된다는 점이었다. “많을 때는 1,300명도 넘게 와.” 박 반장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조회가 끝난 7시에는 본격적인 오전 근무가 시작됐다. 경비원은 백주년기념관에 1명, 후문 초소에 1명, 그리고 정문 초소에 3명 배치된다. 세 명은 30분씩 번갈아 가면서 정문 앞에 선다. 백주년기념관에 있는 1명은 1층 데스크에 앉아 외부인이 들어오는지를 감시한다. 하지만 오늘 오전 백주년기념관을 맡은 경비는 건물 앞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차량을 안내하는 일을 맡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이진필 경비원은 빨간 안전봉과 우산을 들고 백주년기념관 주차장 입구 쪽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차가 몇 대 오지 않았지만, 면접 시간이 다가올수록 차량이 연달아 들어왔다. 주차 공간이 적지 않은지를 묻는 말에 이 씨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외부 주차가 허용되는 곳이 예지관밖에 없어 정말 곤혹스러웠다고 말을 꺼냈다. 동인관 지하 주차장은 교직원이 사용하는 곳이라, 사실상 외부 차량을 받기 힘들다. 이런 상태에서는 동인관 운동장을 개방해 주차를 가능하게 해야 하는데, 학교는 해당 공간의 주차를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제기되는 여러 손님의 비난은 모두 경비원의 몫으로 돌아갔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이 씨는 우산을 쓰고 1시간이 넘도록 같은 곳에 서서 차량을 인도했다. 조금씩 저리는 기자의 다리와는 다르게, 이 경비원의 다리는 굳건했다. “조금씩 왔다 갔다 움직이면 괜찮아”라고 말하며 이 씨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5-6년 차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두 시간 정도 지난 오전 9시쯤에는 후문 초소에 들렀다. “후문에도 왔구먼. 한 명씩 번갈아 가면서 다 만나나 보네.” 김인배 경비원은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반겼다. 후문 초소는 중문 및 후문이 모두 보이는 곳에 위치하며 숭인관과 민주광장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다. 하지만 도로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차량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여기에서 경비원은 교내를 살피는 일을 한다. 이따금 후문의 차단기가 열리지 않아 차가 나가지 못 하는 일이 발생하면, 주차 관리인에게 따로 연락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김 씨는 교내에서 10년째 일한 최고참이다. 오랫동안 본교 구석구석을 살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우리 학교에 대해 잘 아는 분이셨다. 본교의 여러 문제 중에서도 김 경비원은 요즘 경비 인원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사실 이 문제는 김 씨뿐만 아니라 모든 경비원, 그리고 더 나아가 미화를 포함한 교내 모든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가 가진 걱정이었다. “만 70세가 되면 정년이라 하나 둘 씩 떠나가는데, 그 빈자리에 학교가 새로운 인력을 추가해줄지 모르겠어.” 김 씨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경비 인원은 12명으로, 지금보다 두 명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인원이 줄어든 정도를 넘어서, 일까지 늘었다. 지난 10월부터는 5명의 인력으로 백주년기념관까지 도맡게 됐기 때문이다. 학교는 자동출입문 통제 서비스인 캡스를 도입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경비 인원을 늘리지 않겠다고 한다. 하지만 캡스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추가 인원을 선발하는 게 옳다. 본교는 1년이 넘도록 캡스를 도입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현재 예지관과 목화관에는 캡스가 도입된 상태며 캡스 경비 7명이 두 건물을 관리한다. 반면, 본교 경비는 5명의 인력으로 △백주년기념관 △인덕관 △대학원 △인문관 △숭인관 △율동기념관 △학생관 △본관 △약학관 △동인관 총 10곳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 학교 경비원이 캡스보다 1인당 약 7배 많은 공간을 관리하는 것이다.


  경비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됐다. 평소에는 학생식당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지만, 오늘은 수시 면접이 있어 학교가 특식을 제공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일하던 경비원이 점심을 먹기 위해 모두 정문 초소에 모였다. 낡은 접이식 테이블을 편 다음, 신문을 깐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이 왔다. 메뉴는 낙지볶음이었다. 빨갛고 탱탱한 낙지를 보니 침이 꿀꺽 넘어갔다. “김 기자 많이 먹어” 낙지를 한가득 퍼주는 경비원의 손길에 애정이 묻어 있었다.

 

오후(1시-6시 30분)
  식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오후 근무가 이어졌다. 오후도 오전과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다만, 오전에 정문에서 일했던 사람은 오후에 백주년기념관 또는 후문에서 일하게 된다. 기자는 오전에 만나지 못 했던 경비원을 만나기 위해 먼저 백주년기념관 1층 데스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주년기념관에 배치된 1명은 본래 인덕관에 배치됐었다. 그래서 셔틀버스의 출차가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출차 15분 전에 인덕관 뒷길에 나가 주변 차량을 정리했다. 하지만 백주년기념관까지 관할 구역에 포함되면서 경비원들은 인덕관에 배치한 인원을 할 수 없이 옮기게 됐다. 이에 백주년기념관에 머무는 사람이 셔틀버스 출차도 돕기로 정했다. 1시 반에 청담 캠퍼스로 떠나는 셔틀버스를 돕기 위해 백주년기념관에 있던 조종영 씨는 인덕관 뒷길로 향했다.


  무사히 출차를 마친 뒤, 조 씨는 “경비 인원은 한정돼있는데 인덕관보다는 아무래도 백주년기념관에 외부인 출입이 잦아서, 경비가 상주하는 건물을 바꿨지”라고 말을 전했다. 인원은 줄어드는데 일이 더욱 많아지면서, 경비원의 손길이 미치는 곳이 어쩔 수 없이 적어지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본래 경비가 일하던 인덕관 데스크에 가봤지만, 그곳에는 싸늘한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3시쯤 될 무렵, 후문에 근무하던 조기형 경비원을 만났고 이런저런 말을 나눴다. 여러 대화가 오가던 중 TV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조 씨와 경비원들이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나는 자연인이다>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출연자를 보면서 조 씨는 미래를 꿈꾼다. “70세 정년이 되면 고향에 내려가 농사도 짓고 소박하게 살아보려고.” 퇴직 후의 삶을 상상하는 조 경비원의 표정이 밝았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고,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조 경비원과 함께 정문 초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저녁(8시-11시 반)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교내를 순찰하고 건물의 문을 잠그는 일이 이뤄진다. 이 경비원을 따라 건물 순찰에 동행했다. 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추운 날씨에도 이 씨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경비원과 순찰에 동행했는데 전등이 켜진 곳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 경비원은 “아이고 전기세 아까운데…. 학생들이랑 교직원이 나갈 때 불 좀 꼭 끄고 갔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순찰조’가 다녀간 후 11시가 되면 ‘잠금조’가 본교의 모든 건물을 폐쇄한다. 11시 반이 되면 2명의 경비만 남고 나머지는 잠깐의 취침 시간을 갖는다. 남은 2명은 2시 반부터 잠을 청한다. 이때는 먼저 취침한 경비가 일어나 학교를 지킨다.


  모든 잠금을 마치고 박 반장과 다른 경비원은 기자에게 수고했다고 전했다. 이윽고 한 경비원은 “하루 밖에 안 봤는데 벌써 정든 것 같네”라고 말했다. 기자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오늘 답변 잘 해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떠나는 기자의 뒤로 손을 흔드는 경비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며칠 뒤, 기자에게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박 반장이 보낸 ‘한 말 덧붙인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학우들에게 전할 말을 하지 못했다며 그는 글을 이어나갔다. 박 씨는 경비원에게 ‘고생 많으십니다’,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학우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가끔 경비원들은 학교에 남아있으려는 학생들과 부딪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도 학교의 안전을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이었다. 학우의 안전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알아주지 못 했다. 박 반장은 “여러분 곁에는 항상 경비 아저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메일을 끝마쳤다. 경비원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는 학교가 더 나은 근무 환경을 만들어 줄 차례였다. 언제나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그들이 있어 우리는 오늘도 안전한 학교에 다닌다.

 

글·사진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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