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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평화 올림픽의 기둥이 되다
2018년 03월 03일 (토) 16:06:50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경기를 모두 마친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쇼트트랙 자세를 취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경기장 안을 가득 메운 관중의 큰 함성과 박수 소리, 2018년 평창의 겨울은 뜨거웠다. 그리고 그 현장의 가운데에는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빨간 유니폼으로 맞춰 입은 그들은 선수, 관중, 기자가 어려움에 처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도움을 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흘린 굵은 땀방울이 모여 2018평창동계올림픽은 성황리에 치러질 수 있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다양한 사람들 
  평창올림픽 취재 분야(이하 PRS) 자원봉사자로 선발돼 평창으로 가는 길, 1월 끝자락의 서울역 분위기는 제법 삼엄했다. 평창으로 향하는 열차의 출입구에는 신체와 수화물을 검사하는 장비가 늘어서 있었다. 무사히 검사를 마치고 기차에 올라타자, 여행용 가방을 끄는 20대 대학생이 많이 보였다. 유니폼을 입은 사람도 눈에 들어왔다. 기차에서 만난 이혜민(24, 서울시 영등포구) 씨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 무척 기대된다. ‘선수단 지원’ 분야로 선발돼 선수와 소통할 기회도 얻게 돼 기쁘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같은 설렘을 안고 평창행 열차는 동계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듯 힘차게 출발했다.


  유니폼을 배부받고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깜깜한 밤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정된 숙소에 들어가자, 룸메이트들이 인사를 건네 왔다. 재활스포츠학과에 진학 중인 표정연(22, 인천시 부평구) 씨는 “평소 체육에 관심이 많고 여러 가지 경험해보는 것을 즐겨서 자원봉사에 참여하게 됐다”라고 말했고, 김일나(21, 인천시 남동구) 씨는 “세계적인 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오게 됐다”라고 전했다. 동기는 모두 다르지만, 평창올림픽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왔다.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길,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설악산의 높은 산맥에는 겨울을 알리듯 흰 눈이 쌓여 있었다. 평창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동상도 길 곳곳에 세워져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1시간가량 달려 강릉아이스아레나에 도착했다. 아이스아레나는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진행되는 경기장으로,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하키센터, 컬링센터와 함께 강릉올림픽파크에 있다. 
 

  담당 매니저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3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삼삼오오 모였다. 매니저 라쿠엘(38, 포르투갈) 씨는 환한 미소로 봉사자를 맞이했다. 그녀는 “여러분을 만나서 정말 반갑다. 앞으로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며 인사말을 전했다. PRS 자원봉사자는 베뉴미디어센터(이하 VMC), 기자회견장 및 기자관람석, 그리고 공동취재구역으로 나눠져 봉사를 진행했다. VMC는 기자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며 기자관람석은 경기장 내 마련된 기자 자리다. 공동취재구역은 경기를 마친 선수가 기자와 인터뷰하는 공간을 가리킨다.


  VMC에 들어서자 많은 기자를 수용하기 위해 마련된 몇십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경기일정 및 선수명단 등의 자료가 담긴 ‘피죤홀’과 검색만 전용으로 하는 컴퓨터도 있었다. 봉사자는 이곳 헬프데스크에 앉아 기자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기자회견이나 경기 시작 5분 전에 방송을 통해 알리는 역할도 담당했다.

   
▷베뉴미디어센터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인 만큼 VMC에는 다양한 기자들이 있었다. 눈 마주칠 때마다 윙크하는 기자부터 밤 11시에 갑자기 바다 가는 길을 알려달라는 기자, 매일 저녁 택시 운전사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는 캐나다 기자까지. 여러 요청이 VMC 헬프데스크로 들어왔다. PRS 봉사자 박수진(22, 서울시 종로구) 씨는 “난감하거나 어려운 부탁을 요청하는 기자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항상 도움을 받은 뒤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줬다. 배지나 선물을 주는 기자도 있어서 보람찼다”라고 말했다.


  한편, 봉사자들은 셔틀버스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 김일나 씨는 5시 반에 오기로 예정돼있던 버스가 8시가 다 되도록 오지 않아 추위에 계속 떨었다며 “차라리 얼마큼 늦어진다는 정보를 주면 건물 안에라도 들어가 있을 수 있는데, 전혀 정보를 받지 못해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추웠다”라고 전했다. 영하의 추위에서 1시간 넘게 기다린 일부 자원봉사자가 보이콧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북이 서로 화합하며 평화올림픽이 열리다
  다행히 개막식이 다가오자, 셔틀버스도 안정적으로 운행됐고 강릉의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서울에서 강릉을 오가는 KTX 기차가 매진되는 일이 잦아질 만큼 관중이 많아졌다. 피겨스케이팅 페어 프리 경기가 있는 17일, 아이스아레나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기자관람석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도 동시에 바빠졌다. 언론사별 지정석을 안내하고, 관중이 기자석에 오지 못하게 막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북한 응원단이 기자관람석 바로 옆 관중석으로 들어섰다. 빨간 옷으로 맞춰 입은 응원단은 화장법까지 똑같을 정도로 서로 비슷한 모습이었다.


  북한의 렴대옥, 김주식 선수가 출전하자 북한 응원단은 일제히 손뼉을 치며 “렴대옥! 김주식! 장하다!”를 외쳤다. 아리랑 노래도 부르며 응원을 이어나갔다. 지정된 자리가 아닌 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기자와 응원단을 신기해하는 관객이 뒤엉키면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그때 북한 응원단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기자 때문에 경기가 보이지 않는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계속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응원단의 시야를 확보했다. 경기가 끝나고 좀 전에 말을 걸어왔던 그녀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m 결승과 남자 500m 예선이 진행되는 20일, 아이스아레나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고조됐다. 여자 계주 경기는 항상 금메달을 놓치지 않던 종목이기 때문에 기대를 하는 관중이 많이 모였다. 심판의 총성과 함께 관중들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의 국가대표는 마지막에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북한 응원단은 계속해서 파도타기를 하며 응원을 주도했고 경기장 내 우리나라 관객은 그 파도를 이어받아 응원했다. 남북이 하나 돼 우리나라를 응원하는 순간이었다. 


  쇼트트랙 결승 경기가 세 개나 예정된 22일, 공동취재구역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공동취재구역은 경기를 마친 선수가 기자와 인터뷰하는 곳이다. 여기서 봉사자는 선수를 안내하고 옆에서 마이크를 들어주는 일을 도맡는다. 여자 1000m 경기에서 아쉽게 넘어진 심석희 선수는 담담한 모습으로 공동취재구역에 들어왔다. 그녀는 올림픽이 모두 끝나 홀가분한 마음이라면서도 경기 결과에 아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쇼트트랙 여자 1000m 경기 후 심석희 선수의 인터뷰 모습

  남자 5000m 계주 경기에서도 임효준 선수가 넘어졌다. 남자 대표팀은 공동취재구역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스러운 표정을 짓는 선수를 보며 한 기자가 입을 뗐다. “수고했다. 미안할 필요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면서 박수를 쳤다. 이윽고 주변에 있던 모든 기자와 봉사자도 같이 박수를 치면서 선수를 북돋아 줬다. 선수들은 가볍게 경례를 하며 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수고한 밤,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속초의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수놓아져 있었다. 수고했다며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별들은 계속해서 반짝였다.

 

“자원봉사자 덕분에 성공적인 올림픽이 이뤄질 수 있었다”
  어느덧 올림픽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 다가오고 있었다. VMC에 앉아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한 기자가 다가왔다. 국민일보의 박구인 기자는 봉사자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며 봉사자들이 서로 친해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자원봉사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평창올림픽이 무탈하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건 자원봉사자들이 힘써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칠 때마다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는 봉사자가 있어서 힘이 났고, 아파서 보건실에 갔을 때도 자원봉사자가 진심 어린 걱정을 하며 치료해줘서 고마웠다고 전했다.


  자원봉사자 문소연(20, 서울시 강서구) 씨는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어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 또한, 남북한이 한 곳에서 만나 서로 교감하는 평화의 장에서 봉사해서 더욱 의미가 깊다”라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은 남북한 그리고 세계가 평화롭게 즐길 수 있었던 축제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역할을 해준 자원봉사자와 선수, 관중, 기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모여 ‘하나 된 열정’을 뿜어냈기에 평창올림픽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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