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올림픽의 기본 정신이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라 할 때, 휴전 상태인 우리의 상황을 상기한다면 이번 올림픽은 새삼 심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쿠베르텡 남작은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올림픽들은 각국의 국력을 과시하고 선전하는 각축의 장으로 변질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애국으로 포장된 국가주의적 가치로 올림픽을 대하곤 하였다. 시상식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눈시울을 붉히며 새삼 국가와 민족이라는 ‘애국’의 조건들을 떠올리곤 하였다. 애국은 개인에 앞서는 최고의 가치였기에 반드시 승리해야 했으며 그것은 오로지 금메달로만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감동하고, ‘금’이 아닌 ‘땀’에 열광하며 선수들을 응원하였다. 우리들은 선수들과 더불어 어우러지며 웃고 울며 탄식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로 표현되는 오늘날의 사회상과 달리 ‘꼴찌에게도 기꺼이 박수치는’ 성숙함을 보였다. 다른 이의 성과를 인정하고 그 과정의 스토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감동은 배가되었다. 젊은이들의 시련과 좌절, 그리고 극복과 성취의 스토리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감동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그 성취를 집단적인 것으로 치부하기에 앞서 온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돌리며 갈채를 보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것이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정정당당한 경쟁의 결과임을 확인하였기에 기꺼이 그 결과를 수용하고 승복하였던 것이다.


  금수저, 흙수저로 희화화되고 있는 불공정한 세태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청춘들은 거듭하여 도전하고 반복하며 좌절해도 그 건강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록 ‘금’이 아니면 어떠랴. 우리는 이미 ‘땀’의 소중함을 확인하며 그것의 소중함을 확인한 터이다. 늦게 피는 꽃인들 어찌 아름답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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