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
“사과하거나 발언 철회할 마음 없어”
미투 운동을 비하했다는 논란과 성추행 파문에 휩싸인 하일지(인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가 지난 19일 오후 2시에 백주년기념관 1층 중앙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1시 반 무렵이 되자 각 언론사의 소속 기자들이 본교 백주년기념관에 모여들었고, 학생들은 중앙홀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면서 긴장감을 연출했다. 2시가 지나면서 하일지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메라의 셔터가 터지고 마스크를 쓴 100여 명의 학생은 ‘하일지 교수는 공개 사과하라’, ‘하일지 OUT’이라는 문구의 피켓을 들며 교수를 향해 사과하라고 소리쳤다.
하 교수는 준비한 입장서를 꺼내 읽었다. 그는 최근 미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례하고 비이성적인 도발을 받게 됐다고 했다. 미투 운동을 조롱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하 교수는 수업 중 발언 일부분이 악의적으로 유출돼, 선정적인 보도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문학 교수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게 학생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오늘부터 강단을 떠나 작가의 길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기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기자들은 성추행 의혹에 대해 여러 차례 물었지만 하 교수는 보도자료를 참고하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기자회견 전, 하 교수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성추행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강제적으로 입을 맞췄다는 A 씨의 주장에 “‘강제성’이라 하면 그야말로 완력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키스는 급습한 것이다. 그걸 강제성이라고 한다면 강제성이 있다고 하겠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는 피해자 A 씨와 주고받은 메일 내용만을 보여주며 의혹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A 씨가 보낸 메일에는 하 교수에 대한 이성적인 마음이 없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A 씨는 정상적인 학교생활과 졸업을 위해 자신의 속사정과는 반대로 메일을 썼다고 이미 반박한 바가 있다. 한 기자가 이 사실을 기자회견 중 하 교수에게 전달했고 그 입장을 들으려 했으나, 하 교수는 답변하기 힘들다며 회피했다.
성추행 의혹에 대한 정확한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들이 재차 질문하자, 하 교수는 △피해 내용이 사실인지 △피해자의 감정이 진실한지 △피해자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성추행이 진실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고 하 교수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일축했다.
논란이 됐던 발언에 대해 하 교수는 “피해자의 자기 고백에 대해 우리 사회는 평가 및 검증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다”라고 전했다. 교수는 이날 학생들에게 소리 지르는 게 아니라, 토론해야 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한편, 하 교수는 이날 사과할 마음이 없다고 단호히 말해 학생들의 원성을 샀다. 그는 수업 중 한 발언 때문에 학생들에게 사과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사과를 강요받아 굉장히 억울하고 힘들다고 전했다. 덧붙여 이 사안에 대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권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이고, 자신이 그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피해자라고 주장해 학생들의 야유를 받았다.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