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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04월 17일 (화) 14:08:32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스텔라데이지호 시민문화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년, 시민문화제 개최
실종자 가족 ‘블랙박스 회수, 구명벌 수색’ 요구

  노르스름한 천막 지붕에 샛노란 깃발이 흔들리던 지난해 광화문 416광장의 어느 여름날. 문득 노란 리본 사이에 자리한 주황색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 선원 8명이 실종됐어요. 서명 좀 부탁드립니다.” 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기 아들이 탄 배가 먼바다에서 침몰했는데, 정부가 진상조사는커녕 수색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호소했다. 서명을 마치자 그는 감사하다며 주황색 리본을 한 움큼 쥐여줬다. “주변 친구한테 나눠주면서 이 사건 좀 알려주시게.”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자 그는 다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그러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광화문의 도시인들은 바빴다. 할아버지의 외침에도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정부와 시민의 무관심 속에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3월 31일, 스텔라데이지호는 철광석을 싣고 브라질에서 중국으로 운항하던 중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배에는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 선원 16명이 타고 있었다. 사건 발생 24시간 만에 인근을 지나다 수색에 참여했던 선박이 구명벌 한 척을 발견하면서, 필리핀 선원 2명이 구조됐다. 그러나 나머지 선원 22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5일, 416광장을 다시 찾았다. 늘어선 세월호 컨테이너 한편에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의 가족을 위한 컨테이너가 마련돼 있었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서자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허경주(39) 공동대표가 일어서며 인사를 건넸다. 허경주 대표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이등항해사 허재용(34) 씨의 둘째 누나다. 컨테이너 안에서는 실종 선원의 가족들과 자원봉사자가 모여 주황색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주황은 스텔라데이지호의 구명벌을 의미하는 색깔이다. 사고 1년이 지난 이 시점, 주황은 어느새 스텔라데이지호를 뜻하는 상징적인 색으로 여겨지게 됐다.

   
 △컨테이너 안에서 주황색 리본을 만들고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이등항해사 허재용(34) 씨의 어머니 이영문(69) 씨

선사와 정부, 언론의 외면에 힘없는 가족들 고군분투 
  “앞만 보고 달렸다는 말이 딱 맞아요. 가족들은 1년간 안 해본 일이 없죠.” 허경주 씨는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되새기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들은 광화문에서 10만인 서명을 받았고, 청와대 앞에서 꼬박 1년째 농성도 했다. 외교부 앞에서 노숙 농성을 진행했으며 수색에 쓰일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100명 넘게 찾아다녔다. 실종된 선원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적은 수의 가족이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심지어 선원들의 부모는 대부분 70대 노인이었다. 허재용 씨의 두 누나 허영주, 허경주 씨의 어깨는 무거웠다. 누나는 생업도 포기한 채 동생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애썼다.


  이렇게까지 가족이 나서야 했던 이유는 선사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선사는 노후화된 배를 사용했고, 정부는 사고를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사실 스텔라데이지호는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배였다. 선사 ‘폴라리스 쉬핑’은 일본에서 15년 동안 운항해 이미 낡은 스텔라데이지호를 폐기처분의 목적으로 헐값에 사들였다. 본래 기름을 운반하던 유조선 스텔라데이지호는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돼 10년을 더 항해했다. 만든 지 25년이 된 배, 사람 나이로 치면 90살이었다. 평소에 잔 고장도 많았다. 고장이 날 때면 수리하는 데 하루 이틀이 소요되기 일쑤였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은 예견된 사고였다.


  사고가 난 이후에도 선사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 폴라리스 쉬핑은 사고 발생 16시간이 지나도록 가족에게 침몰 사실을 숨겼다. 구조된 필리핀 선원 2명에게 각각 5,600만 원씩 돈을 쥐여 주면서 그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 심지어 선사는 사건 초기, 미군 초계기에 의해 발견된 구명벌을 정확히 확인해보지도 않은 채, 기름띠로 밝혀졌다고 언론에 퍼뜨리면서 한 달도 못 한 수색을 사실상 종결짓게 했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선사의 말만 받아 적은 언론도 공범이었다. 


  정부도 믿을 수 없었다. 미군 초계기가 찍은 구명벌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던 정부는 계속 일정을 미루며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해류 분석도 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수색을 진행했다. 황교안 체제의 당시 해수부 과장은 해류 분석을 요구하던 가족에게 “우리나라 앞바다가 아니고 먼 바다여서 자료를 받고 분석하려면 1년이 넘게 걸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간 분석가에게 의뢰한 결과, 이틀 만에 남대서양의 해류 분석이 완료되기도 했다.


  이후 정부가 바뀌었지만 상황이 많이 진척되지는 않았다. 가족들은 수색 재개를 요구했고 정부는 수색 해역의 범위를 설정해 배 3척이 들어갈 때, 21일 동안 해당 구역을 온전히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가족들은 배 3척을 요구했지만, 결국 1척만이 수색에 투입됐다. 추가 투입을 외치는 가족에게 정부 측의 한 행정관은 “그런 식으로 하면 아예 한 척도 넣지 않겠다”라며 협박했다.


  어쩔 수 없이 배 1척만이 투입돼 보름간 수색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며칠만 더 수색해달라는 가족의 외침에도 수색은 종료됐다. 정부는 외교부의 긴급 예산 10억을 끌어왔기 때문에 더는 예산을 쓰기 어렵다고 했다. 이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결과, 실제 수색에 쓰인 돈은 5억 9천만 원이었다. 정부에게 또다시 속은 것이다. 이처럼 실종자 가족들이 기댈 곳은 없었다. 선사와 정부, 언론 앞에 국민은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은 멈추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100명 넘게 찾아다니며 수색 장비를 투입할 예산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여러 국회의원의 동의를 얻어 60억 원이 배정될 예정이었지만, 이 금액은 예산을 결정하는 최종 단계에서 갑자기 전액 삭감됐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가족들은 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 허경주(39) 씨의 인터뷰 모습

실종자 가족에게 필요한 건 시민의 관심과 연대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사라진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지 1%의 확률도 포기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이 사고를 더욱 알려야 했다. 사고 1년을 기점으로 ‘스텔라데이지호 시민문화제’를 준비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5시, 150명 이상의 많은 시민이 모인 광화문 416광장에서 문화제가 열렸다. 순조롭게 진행하는 듯했으나, 태극기 집회가 광장 양쪽을 둘러싸며 행사의 흐름을 끊었다. 확성기를 켜고 소리를 지르거나 북과 심벌즈를 끊임없이 치면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갔던 가족들처럼, 문화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윽고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무대에 올랐다. 유 위원장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버티는 가족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사 확인부터 (국가가) 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호소력 있는 그의 말에 실종자 가족의 눈물샘이 터졌다. 허영주, 허경주 씨는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이후 시민들은 ‘블랙박스 회수하라’라고 적힌 주황색 피켓을 들었다. 가족과 시민은 일제히 외쳤다. “블랙박스 회수하라. 구명벌을 수색해라.” 10명이 조금 넘는 가족들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시민의 외침이 더해지자 소리는 일파만파 커졌다. 이들의 목소리는 광화문을 가득 채웠다. 어느새 태극기 집회의 고성방가는 들리지 않았다.


  문화제가 끝날 무렵, 시민과 가족이 포옹을 나누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정고운(32, 서울시 강동구) 씨도 실종자 가족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문화제에 참여한 소감을 묻자, 정 씨는 “실종자 가족을 안을 때 슬픈 마음이 컸다. 그들에게 힘을 주고 응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알리고 후원을 시작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실천해봐야겠다”라고 전하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가족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정부가 도와줬으면 한다고도 덧붙였다. 

   
△실종자 가족을 안아주고 있는 시민의 모습


  행사가 끝나고 가족대책위원회는 SNS를 통해 문화제 소감을 밝혔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가족들은 행사 내내 좌석이 비어 있을까 걱정하며 뒤를 보지 못했으나, 포옹하려고 뒤를 돌았을 때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아울러 허경주 대표는 심해수색 장비가 투입돼 사고의 원인이 규명되려면, 시민의 관심이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가족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니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해 주목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가족들의 목표는 블랙박스 회수와 구명벌 수색이다. 다행히 올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정부와 가족이 함께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현재까지 ‘심해수색 장비 투입 검토 회의’가 6차례 진행되면서 심해수색 장비를 투입하는 것은 기정사실화됐다. 그러나 블랙박스 회수를 놓고 가족과 정부 측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심해에 가라앉은 배를 찾고 사진을 촬영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블랙박스 회수에는 미온적인 입장이다.


  가족들은 지난 9일부터 블랙박스 회수와 구명벌 재수색을 촉구하는 제2차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심해수색 장비를 투입할 때 블랙박스를 꺼내지 않는다면 또 언제로 미뤄질지 모르기 때문에 가족들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블랙박스에는 침몰 당시의 기상 상황 및 선박의 상태는 물론, 조타실 내에서 주고받은 선원들의 대화도 들어있다. 침몰의 원인과 실종 선원들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꼭 블랙박스를 회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스텔라데이지호와 비슷한 노후 선박이 27척이나 더 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알아내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언제 또 침몰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 사고 1년이 지난 지금도, 가족들은 여전히 광화문 광장에 남아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 안전한 사회는 ‘함께할 때’ 만들어진다.

   
 △1년이 지났지만,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이 머무는 컨테이너는 여전히 광화문에 설치돼있다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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