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쩌다 방전되는 삶을 살게 됐을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골에 푹 파묻혀서 빈둥빈둥 보내고 싶다.” 예전 <삼시 세끼>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 나영석 PD가 뱉은 첫마디였다. 점심을 먹고 회사로 들어가기 싫다는 누군가의 말에 작가와 PD가 작당(?)해 시골집을 알아보고 답사까지 갔는데, 문득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보면 신선하겠다’라는 느낌이 들어 탄생한 게 <삼시 세끼>다. 사실 <삼시 세끼>와 비슷한 프로그램은 애초부터 시도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그저 놀고먹자는 뜻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방송가에서는 <1박 2일>처럼 끝없이 미션이 던져지는 프로그램을 선호했다. 그러니 삼시 세끼 챙기는 것 이외에 ‘무언가를 하지 말자’는 프로그램이 먹힐 리가.
 
  하지만 나영석 PD는 이미 <1박 2일>를 그만두고 <인간의 조건>을 기획할 때부터 대중이 가진 ‘심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당시 <인간의 조건>은 우리가 늘 당연하게 여겼던 무언가를 빼버리고 난 이후의 삶을 담으려 했었다. <삼시 세끼>는 어쩌면 그 연장선에 있는 프로그램이고, 최근 방영이 시작된 <숲속의 작은 집>은 좀 더 그 권리를 적극적으로 실현해낸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숲속에 집 한 채 덜렁 지어놓고 공공수도와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공간에서 생겨나는 ‘심심함의 묘미’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흔히들 ‘고립’이라고 말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요즘처럼 초연결사회에 살아가다 보면 오히려 고립이 하나의 로망이 되는 일을 접할 때가 많다. <숲속의 작은 집>이 보여주는 것처럼 빛이 없으니 별이 보이고, 소음이 사라져버리자 자연의 미세하고 다양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한 고립 속의 경험은 우리가 도시 생활에서 잃고 있었던 감각을 ‘재활 훈련’ 하는 느낌을 준다.
 
  이처럼 여유롭고 느리게 흘러가는 공간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 듯한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멈춰 보니 비로소 내가 살던 모습들이 보인다. 어째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끝까지 방전시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끊임없이 먼저 달려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삶. 그 경쟁적인 삶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진짜를 얻게 해줄까. 이제는 우리가 잃어버린 ‘심심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무작정 달리고 있다면 왜 달리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달리는지 잠시 멈춰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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