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음악 작곡가 정현수

  OST 없는 영화를 상상해본 적 있는가. 영화에서 배경 음악은 관객의 몰입을 도와 감동을 극대화해주는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 여기 음악을 통해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가 있다. 작곡가 정현수 씨는 <신세계>, <변호인>, <숨바꼭질> 등 20여 편의 영화 OST를 작곡했고, 작년에는 첫 개인 앨범인 <The Color of Love>를 발표하면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예술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현수 작곡가를 만나 영화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작곡가 정현수입니다. 저는 작곡가로서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창작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영화음악, 현대음악, 전자음악을 주로 작곡하죠. 대표적으로는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변호인> 등의 OST를 만들었고,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화예술경영대학원 컨템포러리미디어뮤직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화음악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지 궁금합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시나리오를 읽으며 영화를 미리 살펴봅니다. 여러 장면의 상황과 분위기도 함께 파악하죠. 그리고 각 상황에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주된 음악 분위기를 생각합니다. 이후 컴퓨터를 이용해, 앞서 계획한 음악 컨셉을 염두에 두고 곡을 제작해요. 그러다 영상이 나오면 작업해둔 곡을 장면마다 배치해보며 곡이 연출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는지 점검합니다. 이 과정까지 모두 마치면 컴퓨터로 작업해둔 곡들을 실제 악기로 레코딩한 후, 여러 소리를 혼합하는 믹싱작업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파이널믹스’를 거칩니다. 영화에는 음악뿐만 아니라 효과음, 대사 등 다양한 사운드가 있는데, 음악과 이러한 소리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에요. 가령, 대사가 나올 때는 배경음악이 작아지곤 하는데, 파이널믹스에서 이러한 효과를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작곡가를 꿈꾸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작곡에 참여한 영화들은 대부분 무섭거나 거친 분위기의 작품이지만, 사실 저는 감수성이 아주 충만한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데렐라>, <뮬란>, <미녀와 야수>처럼 감성적인 애니메이션을 즐겨봤는데, 그 속에 나오는 음악들을 특히 좋아했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나도 멋진 곡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죠.
 
 
현재 작곡과 동시에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계신데, 교수라는 직업에 도전하시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영화음악을 작곡하면서 개인적으로 레슨을 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꽤나 오래 가르쳤던 학생으로, 제가 음악감독을 맡았던 영화에 작곡가로 함께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그 친구가 어엿한 음악감독이 돼 제 역할을 해내고 있더군요.
 
  또 다른 한 명은 처음 만났을 때 작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친구였어요. 하지만 레슨을 하면서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택시운전사>, <보안관> 등 여러 음악을 만들어낸 작곡가가 돼있죠.
 
  이러한 학생들을 통해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일이 얼마나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인지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그들이 좋은 결실을 얻어가는 것을 보면서 제가 누군가를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해보고 싶었고, 교수라는 직업에 도전하게 됐죠.
 
 
신세계 OST인 ‘빅 슬립’은 들을 때마다 영화 속 장면이 고스란히 떠오른다는 평을 얻으며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 곡이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엇보다, 곡이 영상과 잘 어우러져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음악이라고 해서 꼭 화려한 멜로디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그 음악이 영상에 얼마나 잘 스며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요.
그런 점에서, ‘빅 슬립’이라는 곡은 간결한 선율로 이뤄져 <신세계>라는 영화와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주제나 내용도 크게 복잡하지 않다 보니, 오히려 간결한 곡이 들어갈 때 잘 어울리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영화는 거칠고 강렬한 남자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음악은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클라리넷이 주가 돼 대조적이죠. 이런 방법이 오히려 작중인물의 불안한 감정을 잘 드러내줬던 것 같습니다.
 
 
작곡하신 음악 중 가장 만족스러운 곡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선, 영화 <이끼>와 <백야행>의 OST가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현대음악이 영화 속에 잘 스며들게 쓴 곡이기 때문이죠. 현대음악은 기존의 리듬과 연주방식 등을 파괴해 긴박감과 공포, 괴기스러움을 잘 표현해줍니다. 이러한 음악이 공포·스릴러 장르인 두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줬고, 음악적 완성도도 높여줬죠.
 
  뿐만 아니라, 저라는 사람을 조금이나마 알려준 <신세계>와, 크게 흥행은 못 했지만 제작 과정에서 많은 공을 들였던 <돌연변이>의 OST도 아끼는 곡입니다.
 
 
작곡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시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가 중시되는 현대에는 특히 필요한 자질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래된 것을 배척해서는 안 돼요. 지나간 것을 알 때 비로소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으니까요. 저 역시 신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음악에 적용해보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령, ‘DNA 구조를 분석해 염기서열에 따라 음을 대입해보면 어떨까?’ 같은 엉뚱한 생각도 해봤죠. 이러한 실험적인 생각들이 당장은 무모해 보이지만, 계속 발전시키다 보면 좋은 답을 찾아줄 때도 있답니다.
 
  그중에서도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에겐 ‘절제’가 꼭 필요합니다. 작곡가로서 화려하게 돋보이는 곡을 만들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러한 욕망을 어느 정도 자제할 수 있어야 하죠. OST는 음악 자체의 완성도와 동시에 영화와의 조화도 아주 중요합니다. 영화에 어울리지 않게 돋보이기만 하는 음악은 몰입을 방해하고 원래의 연출의도를 해칠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작곡을 할 수 있을까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특히 요즘에는 컴퓨터 한 대만으로도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홈 스튜디오’가 발달했습니다. 작곡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조금만 익히면 비교적 쉽게 곡을 쓸 수 있죠. 이런 프로그램을 잘 이용하면 초보자들도 편하게 작곡을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떤 학문이든 학습은 중요해요. 특히 제가 무게를 두는 영화음악, 현대음악, 전자음악 분야에서는 이론적인 공부가 많이 필요합니다.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곡을 쓸 수는 있지만, 그러다 보면 점점 발전 없이 비슷한 곡을 만들게 되죠. 따라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곡을 해보다가, 차차 화성학이나 관현악기법 등 이론적인 공부를 병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곡을 쓰는 과정에서 그러한 지식을 실제로 적용해보는 게 좋습니다.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겪으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작곡을 하다 보면 종종 난처한 일들이 생기곤 해요. 영화 <후궁>을 작곡할 때 집에서 작업을 했는데, 하필이면 정사 장면에 들어가는 곡을 만드는 중이었죠. 곡 작업 때문에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어머니가 집에 찾아오셨어요. 비록 작품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머니와 마주쳤을 때는 아주 민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저도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학생들에게 특별히 해줄 만한 인생조언은 잘 생각나지 않네요.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만한 대학생활을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장은채 기자 bepi@naver.com
[사진 박의현 수습기자 jatoiga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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