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그림 작가 김미승(25) 씨의 모습이다

  분홍, 코랄, 빨강 등 형형색색의 화장품이 진열된 곳이면 자연스레 눈길이 향한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의 화장품에 매료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같은 화장품을 이용해 자신의 얼굴을 꾸민다. 그런데 화장품을 사용해 얼굴이 아닌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여기 있다. 버려지는 화장품으로 멋진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화장품 그림 작가 김미승(25) 씨다. 그녀는 쓰고 남은 립스틱, 립글로스, 아이라이너, 파운데이션 등으로 가수 가인, 씨엘 등 유명 연예인은 물론 <마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영화 속 한 장면을 그려 SNS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녀와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지난 11일 김미승 작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화장품 그림 작가 김미승입니다. 수원여자대학교 아동미술학과를 졸업해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린 지 이제 4년 차 된 프리랜서 작가예요.

 

‘화장품 그림’이란 무엇인가요
  화장품 그림은 말 그대로 화장품으로 그림 그리는 방식을 뜻합니다. 물감, 파스텔 등 기존의 색채 도구 대신에 폐화장품을 사용하는 거죠. 친환경적이라는 장점도 존재하지만, 사실 제가 화장품을 고수하는 이유는 화장품을 좋아하고 화장품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에요. 화장품은 질과 색감이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어요. 아울러 펄도 많아 반짝거리고 예뻐 보이죠. 펄은 조명에 따라 다르게 연출되기도 해 그림에 사용될 때 상당히 예쁘고, 오묘한 분위기를 뿜어냅니다.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렸던 경험은 고등학교 실기 시험 때였어요. 아크릴 물감으로 인물을 그려야 하는 시험이 있었는데, 아크릴 물감을 다루기 어려워 고군분투했죠. 그래서 가지고 있던 비비크림을 몰래 꺼내 물감 대신 사용했습니다. 그때 화장품으로 그림 그리는 것이 피부 표현도 잘 되고, 사용하기도 쉽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이후 대학생이 됐는데 많은 미술대학이 그렇듯, 교수의 스타일에 맞춰야만 좋은 점수를 받게 되는 상황에 놓였어요. 그러다 보니 정작 저만의 스타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죠.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이 단번에 제 그림임을 알아챌 수 있는 저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찰나, 안 쓰던 화장품이 눈에 들어왔고 고등학교 때 화장품으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한두 작품을 완성하다 보니 화장품의 매력에 더욱 빠졌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화장품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궁금해요
  저는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영화 속 캐릭터 등 주로 인물을 그립니다. 이렇게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정한 뒤 바로 스케치에 들어가죠. 다음에는 파운데이션을 바르는데, 흑연이 파운데이션이랑 섞이면 보기에 좋지 않아서 미세한 자국만 남겨둔 채 연필 흔적을 다 지워요. 이후 파운데이션을 기본으로 다 칠하면, 셰딩이나 하이라이터 등으로 얼굴의 윤곽을 잡아가죠. 본격적으로 색깔을 칠하는 작업은 그다음 단계입니다. 

▷김미승 작가가 그린 가수 '가인'

  그림에 색을 입힐 때는 대부분 손으로 칠해요. 화장품이다 보니 손으로 펴 바를 때 가장 표현이 잘되더라고요. 눈썹이나 머리카락 등 손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교한 부분에는 메이크업 붓이나 네일아트에 쓰이는 세필 등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해서 색칠을 마치면 수정 단계를 거쳐요. 화장에도 수정 메이크업이 필요하듯 화장품 그림에서도 여러 번의 수정 과정이 있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면봉으로 그림을 다듬어 주고, 펄이 날아가지 않게끔 몇 번의 수정을 거듭한 뒤 스프레이를 뿌려 마무리해요. 이렇게 작품이 완성되면 유리 액자에 그림을 넣어 보관합니다.

 

재료는 어떻게 구하나요
  SNS를 통해 제 그림을 보신 분들이 택배로 폐화장품을 보내주세요. 안 쓰는 화장품을 정리하면서 그냥 버려지는 것보다는 의미 있게 쓰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가끔 편지와 함께 화장품들이 배송될 때면, 정말 감사하고 큰 힘이 됩니다.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을 꼽자면요
  항상 A4 크기 이내의 작품만 그리다 처음으로 2절지에 완성한 작품이 있어요. 기존에 그리던 것처럼 인물이나 사물을 보고 따라 그린 그림이 아니라, 저만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 작품이죠. 그림에는 제가 한창 사랑하고 이별할 때의 감정을 손으로 표현했어요. 그림의 배경을 모두 손으로 칠했는데요, 칠할 때 세심하게 어루만지듯이 표현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손톱으로 긁거나 화장품을 흩뿌리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나타내 봤습니다. 처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그리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작품 결과도 좋게 나와 만족스럽다고 느껴요.

 

▷김미승 작가가 처음으로 감정과 생각을 녹여내 폐화장품으로 그린 그림이다

작가님이 추구하시는 예술 철학은 무엇인가요
  제 그림이 조금 더 의미 있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버려진 길고양이나 유기견을 돕는 데 쓰일 수 있도록 동물을 보호하는 기관에 제 그림을 기부하면 어떨까 생각해봤죠. 동물 보호 단체가 제 그림을 이용해 마케팅한다면, 동물을 보호하고자 하는 뜻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과거 아모레퍼시픽에서 공병 수거 캠페인을 진행할 때 제 그림으로 마케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림이 좋은 의도로 쓰이게 되다 보니 작가로서 뿌듯하더라고요.

 

작가님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신가요
  저는 이 일을 꾸준히 해서 화장품 그림 분야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아울러 저로 인해 앞으로 화장품 그림이라는 분야도 더욱 뚜렷해졌으면 합니다. 화장품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니 앞으로도 쭉 이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게 제 바람이자 목표죠.

 

좋아하고 잘하는 게 있지만, 취업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단순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취업보다는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어요. 이것을 좋아하니까 열심히 해서 잘하게 되면, 당연히 이 일을 제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어떻게 보면 되게 막연해요. 취업하면 돈이 꾸준히 들어오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것보다는 그림 그리는 게 우선순위에 있고, 실력을 쌓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아하는 게 있고 꿈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그 일을 이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노력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이 일을 믿고 쭉 하다 보면 저도 언젠가 빛을 보게 될 거라고 느끼거든요.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학생들은 우선 경험해볼 수 있는 최대한의 많은 활동을 접해보세요. 그렇게 경험하고 고민하다 보면, 좋아하는 것 또는 잘하는 것을 찾게 될 거예요. 엄연히 말하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또 달라요. 두 가지를 찾아서 서로 융합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진로를 탐색해보는 새로운 시도가 될 것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고민하고 도전하다 보면, 여러분의 진로가 차츰 보이게 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학생분들의 꿈과 노력을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폐화장품으로 그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사진 제공 김미승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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