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링 구급 출동, 구급 출동.” 지난 1일 찾아간 성북소방서에는 분주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었다. 출동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두 명의 소방관이 곧바로 구급차를 타고 출발했다. 채 5초도 걸리지 않은 시간에 이 모든 일이 진행돼 놀라고 있을 때쯤 한 소방관이 말을 건네 왔다. “출동이 정말 빠르죠? 시민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에 구급대는 좀 더 무리해서 서두르는 편이에요.” 나른한 초여름 날씨 탓에 세상은 한껏 여유로웠지만, 그 속의 소방관들은 이처럼 일각을 다투고 있었다.

 

진압, 구조, 구급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소방관의 현장대응
  성북구 종암동에 자리한 성북소방서는 본교 제2생활관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다. 약 2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이곳은 소방행정과, 재난관리과, 예방과 등 다양한 부서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현장에 출동해 사람을 구하고 소방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바로 ‘현장대응단’이다. 현장대응 업무는 실질적으로 진압, 구조, 구급으로 나뉘어 통용된다. 진압대는 불 끄는 일을 중점으로 하며 구조대는 인명 구조에 초점을 맞춘다. 구급대원은 다친 사람을 응급조치해 병원으로 인도하는 일을 전담한다.


  그렇다면 화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대응단은 어떤 과정을 거쳐 불을 진압할까. 빠른 출동을 위해 1, 2층에 사무실이 배치돼있는 현장대응단은 출동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는 대로 바로 소방차 및 구급차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이동한다. 소방관들은 차로 이동하며 방화복을 착용한다. 동시에 무전을 통해 사고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현장에서 어떤 식의 대응을 펼칠지 구상한다. 현장에 도착한 이후에는 진압, 구조, 구급대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진압대는 소방호스인 관창을 들고 불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며 구조대는 여러 장비를 이용해 고립돼있는 사람을 구한다. 구급대의 주된 업무는 구조대가 구출한 사람을 응급 처치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일이다.


  진압과 구조 및 구급 중, 우선 진압대원을 만나기 위해 진압대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소방관들이 행정 업무를 보며 출동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이트보드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던 한 소방관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19년 차 소방관인 조태훈(48) 씨는 진압대를 소개하며 소방관의 업무 범위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소방관이 불을 끄는 직업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정말 다양한 사건·사고를 처리하고 있죠”라고 말하며 주머니에서 준비했던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붕괴사고, 교통사고, 물놀이 및 산악사고부터 동물포획이나 벌집 제거까지 수십여 가지가 적혀 있었다.


  소방관의 업무가 가중돼 보인다는 말에 조 씨는 손사래를 치며 “현장 출동이 많다고 해서 불만을 가지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 출동 업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 업무가 줄어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체력 단련이나 훈련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실제 상황에서 더욱 효과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자신의 안면 마스크를 꺼내 보여줬다. 산소마스크가 아니라 현장에서 불을 소화한 뒤, 연기 차단을 위해 착용하는 작은 마스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마스크의 안쪽은 달랐다. 흰 부분이 연기에 지속해서 노출돼 검게 변색돼 있었고, 보푸라기가 일어나 낡은 모습이었다. 5년간 교체되지 않은 상태였다. 조 소방관은 방화복이나 공기호흡기 등 고가의 장비는 잘 구비돼있는 반면, 소모품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개인적인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취객 대응, 뚜렷한 해결책 없어…경찰 동원이 최선
  조 소방관과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많은 남성 소방관 사이에 있는 여성 소방관이 눈에 들어왔다. 구급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향란(35) 씨였다. 그녀는 소방관으로 활동하던 가까운 친척의 권유로 소방관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해 11년간 구급대 활동을 맡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가자 여성 소방관 대기실이 나왔다. 대기실에는 보온시설은 물론 작은 침대와 이불 등이 제법 잘 갖춰져 있었다.

 
  “예전에는 이러한 대기실도 없었어요.” 그녀는 여성 소방관의 처우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에는 200명 중의 1명 정도가 여성 소방관이었고, 화장실도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을 만큼 다소 열악했다. 그러나 10년 전부터 보다 개선돼 현재는 여성 소방관이 200명 중 15명 정도로 늘어났다. 체력이 중요한 직업이라 소방관의 대부분을 남성이 차지하지만, 여성 환자를 다루는 일처럼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기에 소방서 내에서도 여성 소방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녀는 “소방관을 꿈꾸는 여성분들이 있다면, 도전해보기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꾸준한 체력 및 건강관리가 동반돼야 할 거예요”라고 조언했다.


  한편, 지난달 지방의 한 여성 구급대원이 취객의 폭행과 심한 욕설로 인해 뇌출혈로 쓰러져 순직한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을 언급하며 평소 취객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묻자, 이 소방관은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그냥 참는 편이죠. 소방관은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럴 때면 경찰을 동원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라고 얘기했다. 법률을 강화하겠다는 말이 떠돌고 있긴 하나, 아직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었다. 취객을 상대하는 일은 하루에 2-3번도 일어날 만큼 잦았지만 소방관은 여전히 위태로운 환경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방관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때쯤, 갑자기 구급 출동을 고지하는 방송이 나왔다. 이 소방관은 당황한 기색 없이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행동은 빨랐다. 인터뷰 마지막 멘트만 잘 정리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이 소방관은 바로 구급차로 달려갔다. 10초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를 태운 구급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이후 소방서 2층으로 올라가 구조대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성기환(47) 소방관을 만났다. 23년 차 베테랑 소방관인 성 소방관은 구조3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20대에 경찰이 되고 싶었으나 시민과 대치하는 모습을 자주 접하며 경찰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고, 오롯이 시민의 편에서 일하는 소방관이 됐다. 

 

나라 위해 일하다 다쳐도 공상 인정 어려운 현실
  소방관으로서의 자긍심이 높은 그한테도 직업상 아쉬운 점은 존재했다. 바로 소방관의 공상 인정 시스템 문제였다. 공상이란 공무 수행 중 입은 부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소방관이 다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이 부상을 업무에서 기인했다고 인정한 사례는 보기 드물다.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소방관 개인이 직접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방관이 지속적인 유해가스 노출로 인해 폐암에 걸린다면,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밝히기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에 미국에서는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정부가 밝히지 못한 사례 모두를 공상으로 인정한다. 성 소방관은 소방관의 업무 특수성을 인정해 우리나라도 다른 국가처럼 공상 인정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시민에게 전할 말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다른 곳에 출동해 정작 목숨을 잃을 정도의 위험에 빠진 시민을 구하지 못 하는 일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컨대 집에서 잃어버린 애완용 뱀을 찾아달라는 식의 신고죠. 이렇게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신고보다 스스로 대처하려는 태도가 우선돼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30분 넘게 진행된 취재를 뒤로하고 성 소방관은 구조대가 사용하는 장비를 보여주겠다며 차고로 향했다. 차고에는 빨간 소방차부터 흰 앰뷸런스까지 차량 십여 대가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서 먼저 구조대가 사용하는 장비차를 탑승해봤다. 장비차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장비가 있었다. 방화복과 산소마스크가 자리마다 걸려있었고, 작은 틈을 넓게 벌리는 유압장치부터 절단 장치, 벌집 제거에 쓰이는 물품까지 수많은 장비가 탑재돼 있었다. 바로 입을 수 있도록 의자에 걸쳐진 방화복은 출동 시의 긴박한 현장을 연상케 했다. 다른 소방 차량에도 현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출동한 지 꽤 됐는데도 차에 연기 냄새가 배 있었다.  
 

  교대시간이 다가오면서 성 소방관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조 소방관은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며 마지막 이야기를 전했다. “다양한 종류의 공무원 중에서도 시민분들이 유난히 소방관에 대해서는 언제나 응원하고 믿어주십니다. 이에 정말 감사를 드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봉사하겠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인사했다.


  이처럼 소방관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여러 불편한 점을 겪으면서도 이를 탓하기보다는 시민만을 바라보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소방관, 그들이 바로 이 시대의 어벤져스가 아닐까.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달리는 그들 덕분에 우리는 안전하고 든든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김규희 기자 kbie17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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