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소리가 세 번 울린다. 그러자 퉁소, 북, 장구, 거문고 등 다양한 전통악기들이 차례로 독주를 펼치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끊어질 듯 얇은 음색이지만 조용하게 울리는 우리 전통악기들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현대의 소음과 기계음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전통악기의 음색은 고요함을 선사한다.
  시작부터 생소함과 고요함을 동시에 선사하는 이 공연은 바로 음악극 <북청사자야 놀자>이다. 남산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서울남산국악당에서 펼쳐지는 <북청사자야 놀자>는 다양한 전통악기와 산대놀이를 엮어서 만든 음악극이다.
  산대놀이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행해진 민중극으로 당시 세태를 풍자하며 일정한 줄거리 없이 장(場)마다 다른 에피소드로 펼쳐지는 가면극이다. 이 공연도 전통 산대놀이의 형식에 따라 장마다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산대놀이의 형식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공연은 전쟁과 환경파괴를 일삼는 인간 때문에 희생만 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각 장의 줄거리로 잡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공연의 주요 내용은 동물들이 건강할 땐 잡아먹고, 구제역 및 조류 독감이 걸렸을 때는 동물들을 산 채로 묻는 인간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장마다 달라 산대놀이의 특징을 모르고 공연을 본다면 엉뚱하다고 느끼거나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전통공연이기 때문에 생소한 단어들이 주를 이뤄 극의 줄거리나 대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전통악기의 음색이나 탈춤 혹은 큰 주제 등에 초점을 맞추고 봐야 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북청사자야 놀자>를 보면 현대판 산대놀이답게 극의 일부 내용이 재미있게 표현돼서 이해하기 쉽다.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을 ‘호환마마’라고 표현하면서 킥보드를 탄 호환마마를 등장시키거나 한 사내가 “함경도 북청에 가고 싶어”라고 하자 “안 돼. 거기 가면 너 총 맞아 죽어. 가고 싶어도 못 가”라고 우리 사회를 비꼬기도 한다.
  공연을 찬찬히 음미하다보면 느낄 수 있는 게 바로 ‘여백의 미’다. 배우들의 대화가 중심이 되는 요즘의 공연들과 달리 중간 중간 대사 없이 몸짓과 악기로 말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여백의 공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사는 없지만 그 빈 공간이 전혀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고 편안한 이유는 불필요한 소음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배우들이 건네는 무언의 대화가 일상과는 다른 고요함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청사자 놀음, 봉산탈춤 그리고 양주별산대 놀이와 전통악기가 어우러진 <북청사자야 놀자>는 전통놀이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격렬하지만 고요한 배우들의 몸짓, 탈, 한복, 처용설화, 퉁소 소리 등 한국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이긴 하지만 평소에 쉽게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공연이 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공연이 오히려 새롭고 신선하게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양반들만 풍자할 줄 알았던 산대놀이가 전쟁과 환경파괴 등을 일삼는 현대의 우리 모습을 풍자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신과 우리가 사는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북청사자야 놀자>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은 이에 대해 “가축까지도 우리가 병들게 해놓고 그것을 생으로 묻어버리고 있다. 연극이라는 거울을 통해 오만한 자신(인간)의 얼굴을 비춰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음악극 <북청사자야 놀자>는 우리에게 전통의 미를 전해주는 한편 인간의 추악함을 알려주는 거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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