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에 임용되어 교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당시 총장님에게서 책 한권을 선물 받았다. 『최고의 교수』라는 제목의 그 책에는 “지식 전달자를 넘어 인생의 멘토로”라는 매혹적인 문구가 적힌 홍보용 띠로 감싸져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회사원, 기자, 큐레이터, 시간강사 등의 직업을 거쳐 어느덧 불혹을 넘어 또 다른 직업을 갖게 된 나는 그 책을 흥분과 호기심에 휩싸여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선배 교수들이 소개한 나름의 교수법과 교육철학은 새내기 교수인 나의 심장을 콩닥거리게 했다. 아마도 그것은,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열망(éspoir)의 힘을 동반한 물리적 압박이었던 것 같다. 교육이라는 행위가 인간 사이의 이념의 실현을 바탕으로 하는 정신적 ‘연결’이라면, 나의 그 떨림은 인문적 지성을 성취할 수 있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가 아니었을까.


  지금 나는 교수라는 직업 세계에 갓 입문했던 그 때 그 마음을 돌이켜본다. 그리고 나의 직업 실천의 과정이 이끄는 관심과 사유의 세계가 나를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 유심히 비판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착잡한 경험에 짓눌린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하게 된, 단순히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한 하나의 조건에 대한 작은 고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보다는 애초의 ‘기대’에 대한 기대감이 과연 나의 직업을 잘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직업은 생존의 수단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 생존을 향해 추구되는 노동에서의 욕망이 궁극적으로 흐뭇하면서도 깊이 있는 총체적인 지혜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직업이어야 한다. 특히나 교수라는 직업은 학생이라는 존재와 ‘더불어’ 직업윤리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가꾸어야 하기에, 공감의 다채로운 철학적 체계를 주의 깊게 세워 여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퇴행의 직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정치·경제적 흐름 속에서 교육제도가 요구하는 산업적 정신의 틀에 대응할 수 있는, 그래서 시들어버린 교수와 학생 공동체의 자유 또한 살펴야 한다. 이는 어찌 보면 오늘날 대학의 교수에게 부여된 절대적 명령과도 같은 것들이지만, 적극적인 자기 성찰과 변화가 없다면 공허한 몽상의 당위에 머무르고 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 어떤 모색의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본다.

 

임산(예술대학 큐레이터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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