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발행된 신간을 들고 서 있는 곽 씨의 모습이다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노량진역 3번 출구에서 빨간 모자와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큰 목소리로 잡지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본체만체하며 자기 앞길 가기 바쁜 눈치였다. 하지만 그는 익숙하다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잡지를 든 채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바로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 곽창갑(49) 씨의 이야기다. 

  영국에서 창간된 ‘빅이슈’(bigissue)는 대중문화 잡지를 만들어 빈곤층에게 판매 기회를 제공해 그들의 수입 창출을 돕는 사회적기업이다. 이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대상은 노숙인을 비롯한 주거취약계층으로만 제한된다. 이로써 그들은 자활의 계기를 얻게 된다. 잡지는 권당 5,000원에 판매되며 수입의 절반이 빅판에게 돌아간다. 빅이슈는 주거취약계층에게 합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둔다. 현재 60여 명의 빅판이 전국에 분포돼 있고, 지하철역 출구 근처에서 어렵지 않게 그들을 찾아볼 수 있다.

  빅이슈가 잡지 판매 권한만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주거취약계층의 자활의지를 북돋아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다. 국제 규모의 축구 대회가 열리는 ‘홈리스(homeless)월드컵’, 그리고 소외 계층과 지역 주민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어울려 풋살을 즐기는 ‘다양성 컵’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좋은 취지로 회사가 운영되다 보니, 찬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 되면 각계 계층의 유명 인사가 표지 모델이 되고 매년 ‘빅이슈 판매 도우미’(이하 빅돔)로 봉사 활동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곽 씨가 지난 호 빅이슈 잡지를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안정된 주거 공간을 얻는 것이 목표예요”
  지난 3일 오전 10시, 취재와 빅돔 활동을 겸할 계획이었던 기자는 빅이슈 본사에 도착했다. 빅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본사에 방문해 빅판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빅돔으로서 간단한 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빅돔 지원자가 많지는 않지만, 그들의 도움이 빅판에게는 정말 큰 힘이 돼요. 혼자 지하철역 한복판에서 잡지를 파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책임감을 느끼고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셨으면 좋겠어요.” 빅이슈 판매국의 모민희(28) 코디네이터가 빅돔으로서의 역할과 지켜야 할 주의 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의 말을 계속 곱씹으며 본사를 나섰다. 그리고 낯선 곳으로 취재를 하러 간다는 두려움과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설렘이 뒤섞인 채 취재가 예정된 노량진역으로 향했다.

  두 시가 조금 안 된 시각, 오락가락한 날씨 탓에 걱정했는데, 역시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3번 출구에는 이미 누군가가 잡지를 꺼내어 한창 판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보사 기자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하자, 빅판 곽창갑 씨는 대답 대신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취재를 돕겠다며 나온 한현재 판매국 코디네이터도 있었다. 낯을 가리는지, 곽 씨는 한 씨에게만 계속 말을 걸었다. 근처에서 시위가 이뤄져 시끄럽다는 얘기부터 빅이슈에서 주최하는 노래 대회 얘기까지, 곽 씨의 이야기보따리는 끊길 틈이 없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곽 씨는 ‘등대’라는 노래를 부를 거라며 나름 대회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곽 씨는 다니던 교회 간사의 권유로 올해 9월부터 일을 시작한 3개월 차 신입 빅판이다. 하지만 신입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꾸준하고 자신감 있게 판매를 이어나가 다른 빅판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빨리 모아서 임대 주택에 들어가는 게 목표여.” 그는 돈이 생길 때마다 틈틈이 저축해 벌써 135만 원을 모았다. 빅이슈는 6개월 이상 열심히 잡지를 판매하고 꾸준히 저축해 일정 금액을 달성한 빅판에게 임대주택 입주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남영역에 위치한 고시원에 사는 곽 씨는 부지런히 돈을 모아 입주 기회를 얻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준이 간단하지만은 않아 현재 입주 중인 빅판의 수는 적은 편이다.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는 곽 씨를 지나치는 사람들
 
매일 그들이 겪어야 하는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다
  휴대폰을 하지 못한 채 계속 잡지만 판매해야 하기에 분명 무료함을 느꼈지만, 몇 시간 동안 서 있으려니 허리와 발바닥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한 씨는 사무실에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운 지 오래였다. “보통 빅돔은 많아 봐야 두세 시간 정도 활동을 하고 만다”라던 한 씨의 말에 괜한 오기가 생겨 다섯 시간을 채우겠다고 다짐했지만, 무의식적으로 하품이 나오고 다리가 저려 괜히 발을 움직여보고는 했다. “힘들지 않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곽 씨는 “별로 힘들지 않다.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라고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휙 달려갔다. 이윽고 음료수 두 개를 들고 나타나 기자의 손에 음료수를 쥐여줬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수라며 마시면서 하라고 기자를 독려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구호를 외치며 판매를 이어나갔다.

  이제는 곽 씨도 기자에 대한 어색함이 사라진 건지 계속 말을 걸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출구 밖으로 나가 크게 소리치며 판매해 15부 정도 파는데 비가 오면 9부 정도밖에 못 판다며 연신 아쉬워했다. 많은 수의 판매량은 아니었다. 이를 증명해주기라도 하는 듯, 출구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곽 씨를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거나 전혀 관심 없다는 태도로 지나쳤다. 아예 노골적인 시선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매정한 현실을 견디며 꿋꿋이 잡지를 팔아야 했다. 

  그러나 지나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발걸음을 되돌려 잡지를 사가는 사람도 꽤 있었다. “매번 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눈에 보일 때 많이 사두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보통 한두 권을 사지만 윤 모 씨는 지난 호까지 다양하게 네 권이나 샀다. 잡지를 한 아름 안은 채 출구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모습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어느새 다섯 시간이 흐르고 곽 씨는 수북이 쌓인 잡지를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 되고 싶다”라며 잡지 네 권을 사려는 기자의 말에 함박웃음을 지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잡지가 든 가방을 멘 후, 남영역으로 향하는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들은 이렇게 매일 열심히 살아가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도약을 다시 준비한다. 내일도 그는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서 멋지게 인생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임나은 기자 dong77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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