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시절, 퓨즈 서울 대표 김수정 디자이너

 오늘날, 옷은 단순히 의식주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의류는 이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개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트렌드만 쫓아가는 디자이너들 사이,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의류를 디자인하는 한 여성이 있다. 바로 온라인 쇼핑몰 꽃 피는 시절(이하 꽃시)과 퓨즈 서울의 대표 김수정(25) 씨다. 기존에 운영하던 꽃시와 더불어 벌써 두 개의 쇼핑몰을 운영하면서도, 옷에 대한 애정과 신념을 원동력으로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산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꽃시와 퓨즈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김수정이라고 합니다. 꽃시는 2016년도에 시작한 여성 의류 온라인 쇼핑몰이고 퓨즈 서울은 작년 10월에 론칭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디자이너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선물로 받은 재봉틀 때문이었어요. 비록 낡은 재봉틀이었지만, 작은 천들을 덧대 저만의 무언가를 만들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 뒤로도 옷을 향한 관심은 늘 있었기 때문에 학창시절 내내 제 꿈은 디자이너였어요. 그래서 대학도 패션디자인학과로 진학을 했던 것이었고요. 그러다 졸업식을 2, 3 개월 앞둔 시점, ‘쇼핑몰 창업’이라는 교양 수업에서 과제로 제출했던 쇼핑몰 꽃시를 가벼운 마음으로 오픈했어요. 에코백과 옷 몇 벌을 떼서 작게 시작했죠. 수익보다 몇 달 경험해보자는 의미로 도전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되면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디자이너가 됐습니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대외 활동보다 과 생활에 집중하는 편이었어요. 패션 디자인 공부를 독학으로 해오다가 대학에 와서 전문적으로 배우니 전공이 즐거웠기 때문이죠. 그러다 휴학을 했고 스타일리스트 일에 연이 닿아 배우 위주로 스타일리스트 활동을 1년 동안 했어요. 비록 월급이 60만 원 정도인 박봉에 고된 일이었지만, 저는 이 일이 적성에 잘 맞아서 즐겁게 활동했어요. 무엇보다 이 활동을 통해 옷 보는 눈이 높아졌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배우의 옷을 담당하다 보니 고급 브랜드의 옷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직접 만져보면서 옷에 대한 감을 키울 수 있었거든요. 지금 돌이켜 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경험을 한 게 현재 활동에 좋은 자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기존에 운영하던 꽃시가 있음에도, 퓨즈 서울을 새로 론칭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첫 번째는 나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였고, 두 번째는 페미니즘 공부를 통해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옷을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여성복인지 남성복인지 쉽게 구분할 수 없는 양복 느낌의 옷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었죠. 퓨즈 서울을 시작하기 전에 일부러 남성복을 많이 입어봤어요. 역시나 여성과 남성의 체격과 신체 차이 때문에 어색한 모양새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여성의 몸에 맞추면서도 성별에서 벗어난 젠더리스 의류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퓨즈 서울은 누구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도화선의 의미를 지니거든요. 이를 따라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서 벗어난 의류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시발점이었습니다.
 
옷을 제작할 때 가장 신경 쓰는 점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재질입니다. 이건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해봐야 해요. 재질은 같은 가격이더라도 질의 차이가 크게 나거든요. 저는 여러 종류의 재질을 직접 만져보고 선별한 후 디자인팀과 회의를 해서 고릅니다. 최종적으로는 세탁기에 몇 번씩 돌려보면서 확인을 하죠. 아무리 예쁜 옷일지라도 세탁기에 몇 번 돌렸을 때 버리는 옷이 되면 소비자는 배신감이 들 테고, 그런 제품들은 결국 반품으로 돌아올 테니까요. 저는 제가 입었을 때 좋았던 옷들만 판매하는데 대표적으로 퓨즈 서울의 바지 같은 경우, 무조건 입어보고 특히 앉았을 때 밑위 길이로 인해 활동성에 제약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편입니다. 여성은 골반과 엉덩이 때문에 앉았을 때 밑위가 짧으면 불편해지기 때문이죠. 보통 여성복 같은 경우는 기능보다 미에 집중해서 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퓨즈 서울 같은 경우는 기능에 집중해서 제작합니다.
 
꽃시에서 제작한 페미니즘 티셔츠를 통해 번 수익 중 일부를 여성 단체에 기부하셨는데, 그 계기가 궁금해요
  ‘Girls Can Do Anything’ 티셔츠는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었어요. 티셔츠 한 벌당 800원 정도의 차액으로 최대한 순이익 없이 판매했어요. 만약 제가 소위 ‘페미 코인’을 이용해서 돈 벌 생각이었다면,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서 팔았겠죠.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구매해주셨고 결국 1000만원 정도의 이익이 모였어요. 돈 벌 생각도 아니었을뿐더러 마침 불법촬영 규탄시위가 한창 달아오를 때라 좋은 기회로 그곳에 기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감동이었던 부분은, 불법촬영 규탄시위에 갔을 때 많은 분이 제가 제작한 티셔츠를 입고 계셨다는 거예요. 제가 만든 옷을 사람들이 입음으로써 연대가 이뤄진다는 것을 느꼈죠.
 
여성복에 대한 미의 기준이 높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젠더리스 의류를 제작하면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요
  공장을 찾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저희가 디자인한 옷을 남성복 공장에 맡겼을 때 여성복은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까요. 사실 여성복과 남성복 공장의 제작 과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같은 단가, 동일한 디자인을 들고 여성복 공장에 가면 봉제를 두 번밖에 안 하지만, 남성복은 활동성이 높은 남성이 입는다는 이유로 서너 번은 봉제가 들어가거든요. 결국, 맞는 공장을 찾아서 옷을 제작했지만 처음 판매할 때는 작은 여성복에 익숙한 고객들이 퓨즈 서울의 옷을 낯설어하기도 했어요. 사실 그게 정상적인 옷의 사이즈인데, 바지가 너무 크다는 반응부터 상의 길이를 좀 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죠. 여전히 이 부분은 과도기라고 생각합니다.

의류 디자인에 관심이 많거나, 쇼핑몰과 같은 창업을 시작하려는 학생에게 추천하는 활동이 있나요
  우선, 시작부터 욕심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옷을 한 5벌에서 10벌 내외로 떼와 중고나라나 벼룩시장에서 팔아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수익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나의 안목을 시험하면서 창업의 감을 길러보는 거죠. 무엇보다 쇼핑몰을 시작하려는 친구는 부지런했으면 좋겠어요. 제 주변에도 창업했던 친구들이 정말 많은데, 상품을 떼오고 사진 촬영까지 다 해놓은 상태에서 업로드가 밀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상품 업로드는 상품 사진을 찍고 단순히 올리는 것뿐 아니라 디테일 컷, 상세 사이즈 표, MD 코멘트를 다는 세세한 과정이 따르기 때문이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꿈꾸는 미래 혹은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단기적인 계획이라면, 제 쇼핑몰을 다양한 사이즈와 옷 종류를 제공하는 스파 브랜드처럼 키우는 거예요. 스파 브랜드는 동남아 쪽에 공장을 두고 대량생산하기 때문에 단가를 최대한 낮춘 판매가 가능합니다. 저도 그런 식으로 단가를 낮춰서 저렴한 가격에 좋은 옷을 판매해보고 싶어요. 제 오랜 꿈을 말하자면, 재단을 세워 보육원 원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베푸는 것이에요.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 인식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꾸거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꿈 조각 하나에 꾸준함을 덧대다 보면 어느샌가 여러분만의 멋진 결과물이 나올 거라 믿습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다른 것에 한동안 빠지는 것도 모두 완성해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의 과정을 응원합니다!
하주언 기자 gkwndjsw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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