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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감수성이 가득 찰 내일을 위해 오늘도 외친다
2019년 04월 10일 (수) 15:41:25 정보운 기자 bounj0719@naver.com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이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있다
   
△이번 대회의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이다
 

 

 

 

 

 

 

 

 

 

 

 

 

 

 

△대회를 마무리하며 무대 위에서 사람들이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아직 봄이 오지 않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에서만큼은 그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많은 여성이 광장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미투,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여성 5000여 명의 뜨거운 목소리가 광화문 광장을 울렸다. 그동안 여성들에게만 가해졌던 차별과 혐오에 맞서 성 평등을 이뤄내기 위한 외침이었다. 그들은 여성이 받았던 차별과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광화문에 모였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기념일인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인 것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이 2018년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됐다. 이날 열린 한국여성대회 행사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여성들의 연대를 위한 대회로 제35회를 맞았다. 대회는 3.8 시민 난장, 기념식 및 문화제, 거리 행진 및 마무리의 순서로 진행됐다.


여성 인권을 위해 애쓴 수많은 전사
  본격적인 3.8 기념식 및 문화제 대회에 앞서 시민들과 각 여성 단체에서 세워 놓은 각종 부스, 굿즈 및 먹거리를 구경했다. 비건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와 같은 평소 보기 힘든 단체의 부스들도 있었다. 비건 김밥 등 평소 보지 못했던 음식도 많아 재미있게 구경했다. 부스를 구경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육식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여성’인 비인간 동물들의 재생산이 반복되며 끊임없는 강간과 임신, 출산, 학대가 이뤄진다고 했다. 기자는 비인간 동물들이 학대 당하는 것이 인간 여성이 재생산을 강요당하고 강간을 당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식이 시작되자 광장은 금세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세계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색깔인 보라색이 이날의 드레스코드 색상이었기 때문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도 따뜻한 미소로 서로를 반겼다. 여성만 대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곳곳에는 대회에 함께 참가하기 위해 온 남성들도 보였다. 많은 사람이 모인 만큼 대회가 진행되는 광화문 광장 주변에는 대회 참가자를 보호하고 질서를 정리하기 위한 경찰과 대회를 취재하기 위한 언론사 기자들, 대회를 구경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국여성대회의 기념식·문화제는 권해효 배우와 남은주 대구 여성회 상임 대표의 사회로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과 진선미 국회의원은 대회 개최 축사를 전했다. 이윽고 문화제 대회 시상식이 시작됐다.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한국 사회 미투 운동의 물꼬를 텄던 서지현 검사가 수상했다. 이어 그녀는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미투가 번져 나가는 세상이 아니라 미투가 없어지는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라며 수상 소감을 말했다. 그녀의 소감을 듣고 있던 참가자들은 그 말에 공감하듯 맞장구를 쳤다. 또, 일부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다. 동시에 기자의 마음 속에도 큰 울림이 느껴졌다. 이어 전시 성폭력 문제를 국제적 인권 이슈로 이끌어 낸 여성 인권 운동가인 故 김복동 선생님이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故 김복동 선생을 대신해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시상대에 올랐다. 그는 고인이 생전 병상에서 말씀했던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라는 말을 전했다. 많은 사람은 故김복동 선생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고 현장 분위기는 금세 숙연해졌다.

성평등이 이뤄지는 그 날을 위해 우리는 외친다
  기념식·문화제의 마지막 순서인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에서는 전국 공동 퍼포먼스인 ‘ONE BILLION RISING IN KOREA-싸우는 여자가 춤춘다’가 개최됐다. 이 무대를 꾸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 차별의 사슬을 끊고 일어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을 춤으로 표현했다. “사슬을 끊자. 무릎을 꿇고 기도해. 나는 두렵지 않아. 저 문을 걸어 나갈 거야” 무대 위에 올라서 춤을 추던 상담소 활동가들은 노래 가사에 따라 모은 두 손을 바깥쪽으로 뻗는 동작을 선보이며 손목을 연결한 사슬을 끊어버리는 표현이라고 춤을 소개했다. 이어 다시 노래가 나오면서 무대 위의 공연이 시작되자 머뭇거림도 잠시, 5000여 명의 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음악에 맞춰 주먹 쥔 팔을 뻗으며 우렁차게 소리를 내지르고 환호했다. 큰 음악 소리와 그에 걸맞은 여성들의 격렬한 춤사위에 광화문 광장이 다시 한번 들썩였다. 한참을 춤추다 각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국 공동 퍼포먼스 영상을 생중계로 연결해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상을 보며 이 순간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이 대회를 함께 하고 있다는 여성들의 따뜻한 암묵적 연대를 느낄 수 있었다.
 
  영상을 보며 쉬는 도중 대회 참가자 이규화(58세) 씨에게 바라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물었다. 그녀는 “앞으로는 여성들이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고 능력을 인정받으며 여성이 세상을 바꾸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행동하는 여성의 힘찬 발걸음
  주변이 어둑해지면서 어느새 대회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참가자들은 행진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곳곳에 많은 대학교 단체들의 깃발도 눈에 띄었다. 행진 대열은 ‘차별금지법 제정,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여성 대표성 확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성별 임금 격차 해소, 정상 가족 해체’ 등 그동안 우리 여성들이 바랐던 의제들을 소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짧은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거리 행진 내내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구호를 외치며 걸어갔다. 대열은 200 미터가 족히 넘었고 참가자들은 모두 질서정연하게 앞사람을 따라 움직였다. 그날 처음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속의 ‘여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그들은 하나로 뭉쳐 한 목소리를 냈다.
 
  40여 분간의 거리 행진 후에 사람들은 래퍼 슬릭의 무대가 준비된 광장에 다시 모였다. 슬릭이 무대에 등장해 랩을 하자 대회 참가자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며 대회는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렇게 제35회 한국여성대회는 화려한 막을 내렸다. 사회를 본 권해효 씨는 “한국 사회에서는 전면적인 차별 금지 법안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법안이 빨리 만들어져서 혐오 범죄와 같은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참가 소감을 전했다. 
 
  미투 운동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문화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여성들의 강력한 선언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근절되고, 성평등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그 날까지 세상을 향한 여성들의 움직임과 외침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성평등 사회를 위한 여성들의 용기와 열망은 서로 연결돼 더욱 강하게 타오르고 있음을 경험한 오늘. 시위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추운 날씨에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기자의 손은 꽁꽁 얼어 있었지만 수많은 여성과 함께 있는 동안 그들에게 받았던 따뜻한 온기와 열정은 가슴 속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정보운 기자 bounj07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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