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가 웰빙, 2010년대가 힐링의 시대였다면, 2019년 현재는 욜로, 소확행 등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삶의 방식 개선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점점 중시되는 추세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생활에 현대인은 늘 피로감을 호소한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도 부지기수라 이들에게 ‘꿀잠’은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가 됐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숙면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수면시간은 7시간 41분에 그쳤다. 이는 OECD 평균보다 41분 정도 부족한 수치며 한국은 꼴찌를 차지했다. ‘잠 못 드는 한국’은 수면 관련 시장을 빠르게 키웠고 이런 가운데 숙면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사업 ‘슬리포노믹스’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는 불면증이나 잠들어도 자주 깨는 얕은 잠을 자는 등의 수면장애를 종종 겪는 한국인이 많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들은 쌓인 피로를 풀길 원했고, 자연스럽게 잘 자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가 강해지면서 꿀잠을 위한 상품 시장이 새롭게 등장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에서는 수면에 도움이 되는 스마트밴드, 캔들·디퓨저, 라텍스·기능성 침구 등의 수면 관련 용품의 매출이 증가했다. 이전엔 잘 찾아볼 수 없었던 수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수면등이나 아로마와 같은 ‘꿀잠템’(꿀잠과 아이템의 합성이 더해진 신조어)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위해 잠이 잘 오는 소리를 만들 수 있거나 자신의 수면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등 다양한 수면 앱 또한 출시됐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잠 못 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영상이 유행하기도 했다. ‘꿀잠’을 위한 새로운 상품 시장은 최근 큰 성행을 이뤘으며 수면 산업이라는 뜻을 가진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직장인을 위한 점심시간 패스트 슬리핑(Fast sleeping)
  통계청의 ‘2014년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1.3%가 평소 피곤함을 느낀다고 답했으며, 그중 30대(90.3%)의 체감 피로도가 특히 높았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하는 현대 직장인들은 불편하게 책상에 엎드려 자는 대신, 비용을 지불하고 고급 안마의자에서 편하게 잘 수 있는 수면 카페를 찾았다. 회사가 밀집된 명동의 수면 카페 안엔 수많은 방이 있고, 방마다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커튼이나 문이 달려 있다. 카페는 안대, 수면 양말, 귀마개 등의 각종 수면 키트도 구비해 이용 시간 동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방문자들은 “수면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무드등과 따뜻한 온도에 의해 쉽게 잠이 들 수 있다”라며 짧은 시간에 양질의 수면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을 추천한다.
  대기업 CJ도 슬리포노믹스 산업에 뛰어들었다. 여의도 CGV에서는 점심시간인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낮잠을 잘 수 있는 ‘시에스타(Siesta)서비스’를 운영한다. 잠이 부족하거나 과음으로 힘든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활용해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잔잔한 음악과 마음이 편해지는 향기가 나는 공간에서 안락한 프리미엄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시간당 만 원이라는 다소 비싼 금액이지만 짧게나마 긴장을 풀고 싶어 하는 직장인들은 기꺼이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다. 2016년 시작된 이 서비스는 2017년 잠시 중단되었다가 사람들의 요구로 재개했다. 현대인의 피로도가 얼마나 쌓였는지를 알아볼 수 있던 결과다.
  어릴 적, 귀가 따갑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가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를 걱정 없이 편하게 자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현대인은 늘 시간이 부족했고 시간을 버는 가장 손쉬운 선택으로 잠을 줄였다. 시대에 맞게 변화하며 새롭게 성장하는 수면 산업의 모습은 항상 일에 쫓기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잠시라도 숙면을 하기 위해 편안하고 아늑한 장소를 찾아 헤매고, 돈을 지불해서라도 수면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현대인들. 시간의 흐름 및 기술의 발전과 함께 나날이 성장한 수면 산업이 어쩌면 잠 못 드는 현대인의 어두운 그림자는 아닐까.
정보운 기자 bounj07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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