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미 연예산업 전문지 버라이어티지 선정 주목할만한 10인의 제작자’, ‘홍콩경제전문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 선정 아시아의 변화를 주도한 인물 20인.’ 이 화려한 수식어의 주인공은 바로 영화 제작자 심재명(국어국문 87년 졸)(55) 씨다. 참신한 소재와 뛰어난 기획능력으로 작품성과 흥행, 모두 겸비한 영화를 만든다고 인정받는 심재명 동문. 그를 만나 영화 제작자의 삶과 여성 영화인으로서 바라보는 영화계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제작자 심재명입니다.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는 영화제작사 명필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최근 근황을 알려주세요
  올해가 명필름 창립 24주년이 되는 해예요. 지금까지 40여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항상 그렇듯 새로운 영화 제작을 위한 준비나 시나리오 개발을 계속해 나가고 있어요. 또, 명필름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영화 교육 기관인 명필름랩에서 제작한 영화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자라는 꿈을 꾸게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서 잠깐 일을 하다가 ‘서울 극장’이라는 영화사에 입사했어요. 그곳에서 아주 다양한 경험을 했죠. 마케팅은 물론이고 영화가 만들어지는 자세한 과정을 직접 봤어요. 어렸을 때는 감독과 배우가 영화의 전부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런 힘든 과정 속 스태프와 연기자 모두를 뒷받침하고 있는 사람이 영화 제작자였어요. 그때부터 영화 제작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여성 영화인이 드물었던 이 일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었다면요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이 커 힘든지도 모르고 일했어요. 그리고 젠더 감수성이 지금보다 훨씬 미흡하고 부족했던 시절이라 여성이라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저 현실에 대한 고민만 있었죠. 예를 들면 영화계에서 심재명이라는 사람이 살아남는 것,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잘리지 않는 것 등이요.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 영화인의 숫자가 아주 천천히 증가함에 따라 우리끼리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2000년에 200여 명의 여성 영화인이 모여서 ‘여성영화인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저를 포함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님과 현재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이신 주진숙 교수님 등이 주축이 됐죠. 이 모임을 통해 여성 영화인의 저변을 확대했던 점이 약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많은 변화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영화 제작자로서 힘들었던 점이나 뿌듯했던 점이 있었다면요
  힘들지 않은 영화가 없었어요. 제일 먼저 생각나는 영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에요. 당시 영화계에서 스포츠 이야기는 인기를 끌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에 심지어 여자 선수들의 이야기를 그렸죠. 영화를 어떻게 성공시킬 수 있겠냐는 회의 어린 시선이 많았어요. 주변에서 제작 자체를 말리는 일도 잦았죠. 차가운 시선 속 영화 제작을 위해 40억 원이라는 큰돈을 마련해야 했고 이 상황을 극복해야 했던 점이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요. 반대로 뿌듯했던 점으로는 힘들게 만들어진 영화가 개봉된 후 관객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때예요. 인생 영화라는 평이나, 응원의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행복해요. 또, 저는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사회에서 순기능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개봉한 후에 핸드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핸드볼 전용 경기장을 짓는 등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났죠. 이렇게 긍정적인 사회적 현상이 일어날 때도 보람을 느끼곤 해요.

여성 서사 위주의 영화는 실패하기 쉽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업계의 편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대부분 예산이 적은 편에 속하는 현실주의 영화가 많거든요. 그래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에 예산을 많이 쓰지 않아요. 하지만 작년과 올해에는 비교적 많은 예산을 투자한 남성 중심의 영화가 여성 중심의 영화보다 손해가 큰 경우가 많았어요.
 
  편견을 깨는 듯한 새로운 흐름은, 여성 중심의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것이 영화계의 선입견임을 입증하고 있어요. 최근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미쓰백>이나 <걸캅스> 같은 여성 중심 영화의 성공을 위해 여성들이 관람을 여러 번 하기도 하고, 직접 영화를 관람하지 못할 때는 표를 사서 힘을 보태는 ‘영혼 보내기 운동’도 진행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 영화업계에서는 페미니즘 이슈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디즈니죠. 최근에 큰 인기를 끌었던 <알라딘>이나 <캡틴 마블> 등을 만들면서 주체적인 여성상을 영화에 그려냈죠. 그 영화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큰 수익을 벌기도 했고요. 세계적 흐름에 따라 한국 영화계도 점차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유능한 여성 영화인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까요
  1910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45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서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인 박남옥 감독님이 등장하셨어요. 그리고 1955년부터 2000년대까지 여성 감독의 숫자는 10명 미만이었죠. 약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에야 여성 영화감독이 누적 100명이 됐어요. 계속 여성 영화인이 적다고 말이 나오지만, 이제는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실천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영화계에 존재하는 성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성 평등 소위원회가 만들어졌고, 한국영화성폭력센터 ‘든든’도 설립돼 영화계 내 실제적인 성 평등을 위해 정책을 연구하고 제안하고 있어요. 여성 영화인이 많이 등장하고, 여성이 중심이 되는 영화가 많이 제작될 수 있도록 정책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중이에요. 저도 여성영화인모임의 이사와 든든의 센터장을 맡으면서 후배 여성 영화인이 확대되고 영향력이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인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막연히 꿈꾸는 것보다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러분들이 가진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거예요. 

  항상 생각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고 진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사회는 더 많은 스펙과 자격증을 요구하죠. 그래서인지 본인이 가진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줄 모르고 자신을 자책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까워요.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앞에 놓인 현실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지만, 당장 눈앞의 것만을 보기보단 인생을 길고 여유 있는 태도로 한 번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인생은 단기간의 것이 아니니까요.
정채원 기자 jcw9905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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