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성 소비자들은 옷을 구매할 때마다 혼란스럽다. 사이즈가 체계화돼 있지 않고, 그 범주 또한 좁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여성복 사이즈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16일부터 21일까지 약 5일간, 20대 여성 721명을 대상으로 여성복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여성복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여성 의류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파악해봤다.

김현지 기자 guswl5974@naver.com
정보운 기자 bounj0719@naver.com
정채원 기자 jcw990531@naver.com
하주언 기자 gkwndjswn2@naver.com
곽예은 수습기자 yeeun3636@naver.com
김도헌 수습기자 heenglow@naver.com
 
  평균 체형을 가진 A 씨는 하나인데 그의 사이즈는 여러 개다. 어느 가게에서는 44 사이즈가 맞아 말랐단 소리를 들었지만 바로 옆 가게에선 66 사이즈도 작았다. 순간 살이 찐 걸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고 보니 요즘 A 씨의 옷 치수가 한 치수씩 늘었다. 그렇다고 그의 체중이 증가하진 않았다. 하지만 큰 옷이 맞는다는 것에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없어진 체재를 지금까지 따르다
  44, 55, 66 사이즈를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사실, 이 사이즈는 만들어진 지 40년도 더 돼 낡을 대로 낡았다. 1979년 당시 20대 여성의 표준 체형이었던 키 155cm, 가슴둘레 85cm에서 뒷자리 숫자를 합쳐 만든 것이 55 사이즈였다. 여기에서 키 5cm, 가슴둘레 3cm를 각각 가감해 44, 66, 77이 탄생했다. 이후 경제 발전과 식생활의 개선으로 여성의 체형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이 표준은 1999년 폐지됐지만, 아직도 쓰인다.
 
‘개’ 옷이 아니고 ‘성인 여성’이 입는 옷 맞나요?
 얼마 전 크롭티를 개에게 입힌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성인 여성의 옷이 몸집이 작은 강아지에게 꼭 맞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복을 두고 ‘개’ 옷이 아니냐는 웃지 못할 농담이 생길 만큼 옷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는 추세다. 본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다수의 여성이 사이즈가 작은 옷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한 학우는 ‘옷을 새로 구매할 때마다 살이 찐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라며 적어도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판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랜드마다 다른 크기 “내 사이즈는 뭐야?”
  이에 더해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인 사이즈로 불편함을 겪는 사례도 많다. 본지의 설문조사 문항 중 ‘옷을 살 때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서 ‘예상한 사이즈와 맞지 않아서’가 80.3%로 압도적인 응답률을 보였다. 그 뒤를 이어 ‘생각한 디자인과 달라서’가 14.2%, ‘옷이 불량이라서’가 1.9%를 차지했다. 또한, ‘브랜드에 따라 다른 사이즈 때문에 겪는 불편의 정도는 얼마입니까?’라는 문항에 ‘보통이다’에서 ‘매우 불편함’을 응답한 사람들이 94.9%를 차지했다. 이는 통일되지 않은 사이즈 체계가 소비자들에게 큰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본지는 설문조사를 통해 여성복 사이즈 문제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 달라 요청했고, 답변은 ‘여성 의류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더불어 줄어드는 옷의 크기로 살이 찐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답변도 종종 있었다. 여성복이 얼마나 작게 나오는지 알아보기 위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법한 옷이라 판단한 흰 블라우스와 청반바지의 사이즈를 ‘20대 여성 표준체형 평균’과 비교했다. 흰 블라우스와 청반바지는 인기 있는 6개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각각 6개의 상품을 무작위로 골랐으며 그 사이즈의 평균을 도출했다.
누구나 한 번쯤 입게 되는 블라우스의 사이즈는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프리사이즈 하나로 나왔다. 총 6개 프리사이즈 블라우스의 평균 어깨 길이는 36.4cm, 가슴둘레는 82cm였다. 하지만 사이즈 코리아가 제시한 20대 여성 표준체형은 어깨 39.2cm, 가슴둘레 84.9cm이다. 이는 ‘프리사이즈’ 옷이 20대 여성의 표준체형보다 작게 나왔음을 알 수 있는 바이다.
이어 청반바지 사이즈 평균과 20대 여성 표준체형 평균을 비교했다. 20대 여성 표준 허리둘레는 71.6cm였던 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L 사이즈 청반바지의 허리둘레가 70cm였다. 제일 큰 사이즈였음에도 표준체형보다 1.6cm나 작게 나온 것이다. 또, S 사이즈의 허리둘레는 63.8cm로 이는 10-15세의 평균 허리둘레인 65.9cm보다 2.1cm나 작았다. 아직 이차 성징도 제대로 안 온 어린아이들에게나 맞는 옷이 성인 여성의 옷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 의류가 점차 아동복만큼 작아져 간다’라는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프리(free)사이즈’라는 단어는 누구나 다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느낌이 든다. 패션전문자료사전에 나와 있는 프리사이즈의 정의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맞도록 만들어진 옷에 붙는 사이즈, 넓은 뜻으로는 그러한 옷 전반’이다. 하지만 본지의 설문조사 결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옷을 수월하게 입을 수 있는 범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본지의 설문조사 질문에 응답자 719명 중 절반이 넘는 (52.3%, 376명) 사람들은 프리사이즈임에도 그 크기가 작거나 달라 일부에게만 자유로운 옷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L 사이즈 미만만 입을 수 있다(26.3%, 189명), M 사이즈 이하만 입을 수 있다(16%, 115명), L 사이즈 이상만 입을 수 있다(6.1%, 44명)가 그 비율을 채웠으며 S 사이즈 이하만 입을 수 있다(3.3%, 24명)는 답변도 있었다. 
그렇다면, 프리사이즈 의류의 실체 치수는 어떠할까. 인터넷 쇼핑몰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모양의 티셔츠를 무작위로 뽑아 그 사이즈를 확인해봤다. 동일한 방법으로 남성 의류 쇼핑몰에서도 티셔츠를 골랐다. 여성 티셔츠의 경우, 어깨와 가슴 단면 길이가 제각각이었지만 남성 프리사이즈 티셔츠 치수는 비교적 균일했다. 본지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본인의 옷 사이즈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사이즈를 6개의 군으로 나눠 총 7개(잘 모르겠음 포함)의 선지가 있었지만, 이 질문에는 20여 개의 추가 문항이 생겼다. 6개 그룹에 자신의 사이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55사이즈인데 M’, ‘55사이즈이며 L’ 등의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답변도 많았다. 이는 여성복 사이즈가 균일하지 않아 자신의 정확한 의류 치수를 모르기에 벌어진 상황이며 천차만별인 사이즈 속에서 많은 여성은 혼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 유명무실한 치수
  앞서 설문조사와 취재를 통해 지적된 여성 의류계의 문제는 어떤 뿌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스티치랩소잉스튜디오 공동대표인 조아라 디자이너에게 국내 여성복 흐름에 관해 물었다. 그는 국내 여성복의 사이즈가 균일하지 않은 원인으로 시장을 반영하지 않은 규격화 과정을 지적했다. “규격화 과정이 보통 실제로 여성복 사업을 하는 의류나 업체보다는 교수나 연구자의 의견을 참고해 진행되다 보니 실제 시장의 사정은 이와 다른 경우가 많죠.” 이어 그는 규격화 자체도 강압적으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수익을 내야 하는 회사의 입장으로서는 하나를 위해 기존의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도 덧붙였다. 실제로 국가기술표준원이 운영하는 ‘e나라표준인증’에 접속하면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한국산업표준(Korean Industrial Standards)(이하 KS) 이 기재돼 있고 ‘KS의류치수규격’을 통해 국가에서 규정한 여성복의 정확한 치수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KS는 권고사항일 뿐 법적 강제 사항이 아니다. 이에 대해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KS는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일 경우에만 의무 적용된다. KS규격 자체를 지키지 않는다고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서 임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라며 왜 여성복 치수가 법적으로 통제될 수 없는지 설명했다. 

‘쉽게’가 만들어낸 규격의 무관심
  그렇다면 국내 여성복이 갖는 문제는 국가의 안일한 판단만으로 인해 생겨난 것일까. 조 디자이너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패션 구조에 대해 추가로 설명했다. “해외의 경우 디자이너가 패턴을 만들고 생산까지 가능한 나라는 거의 없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옷의 유통이 굉장히 빨라 인디 디자이너나 보세 시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브랜드를 쉽게 런칭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을 갖고 있죠. 소자본으로도 옷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보니 동대문과 같은 도매시장이 활성화된 거죠.” 이렇게 비교적 단기간에 유통채널이 다양해지다 보니 ‘규격화’라는 개념이 퍼지기도 전에 수많은 업체가 생겨났고 그들 재량껏 옷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는 “의류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불만을 일으키는 사소한 문제인 경우가 많아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다 보니 법안의 테두리에서 틈새가 많았던 듯하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소비자 ‘눈 가리고 아웅’하는 마케팅 
  물론 가시적으로 보이는 구조적인 문제들만 현 여성복의 흐름을 악화시킨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손이 여성의 심리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마른 몸이 미의 기준으로 정착한 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살찌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소수가 아니게 됐다. 유독 마른 몸을 강요받는 한국 여성의 경우, 큰 사이즈의 옷을 입으면 왠지 더 살이 찐 것 같고, 몸매가 좋지 않은 것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쇼핑몰에서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사이즈를 작게 표기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실제 M 사이즈이지만 S 사이즈로 표기된 옷을 샀을 때, 자신이 더 작은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들이 쇼핑몰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 평가로까지 이어지고 높은 수익 창출로 직결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옷 치수를 실제보다 작게 표기해 날씬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마케팅 기법을 ‘배너티 사이징(Vanity Sizing)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겉으로 봤을 때 이는 기업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성공을 도모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 중 하나고 일시적으로 소비자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지만 명확한 의류 표준 규격에 혼란을 야기한다. 결국 같은 M사이즈더라도 각 브랜드의 실측 사이즈가 각각 달라 의류 선택에 실패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구매할 때 빈번한 구매 실패를 감수해야 했다. 사이즈가 잘못 배송되거나 생각했던 품의 옷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개인의 선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됐다. “여성 소비자가 옷의 불편함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낸다면, 판매자도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그들이 추구해왔던 발전 방향은 디자인이었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예뻐 보이는’ 옷을 넘어 의복의 편리성도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 된 거죠. 이렇게 스마트한 컨슈머들이 더 많아지고, 편리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 이어진다면 균일하면서도 다양한 여성복 사이즈 구현은 가능성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조 디자이너의 바람대로 여성복의 불편한 진실이 걷어지고 소비자가 근본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은 곧 도래할 수 있을까.

프리사이즈가 아닌 원 사이즈
  본지 설문조사 중 국내 여성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타질문에 ‘대체 프리사이즈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건지 궁금하다’, ‘프리사이즈라고는 분명 쓰여 있지만, 정작 치수는 자유롭지 못하다’와 같은 답변이 주로 등장했다. 이에 본지는 프리사이즈의 규격과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사이즈 코리아에 문의해봤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사이즈 코리아의 안병오 담당자는 국가 기술 표준원에는 프리사이즈 표기가 등록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프리사이즈의 수치가 규격화돼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판매자는 임의로 프리사이즈의 범위를 정하고 호칭을 붙일 수 있다. 결국, 최대한 적은 단가로 수익을 내고자 하는 공장에선 하나의 치수만 제작한 옷에 모두가 입을 수 있다는 의미의 ‘프리’를 붙여 제작, 판매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업체마다 다른 프리사이즈 치수에 혼란과 불편함을 겪게 된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의류 업체는 기존에 사용하던 프리사이즈가 아닌 원 사이즈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성별로부터의 자유와 다양한 사이즈로의 확장
  키가 작고 뼈대가 가는 여성들에게는 가장 작은 사이즈를 사도 옷이 크고, 반대의 여성들은 가장 큰 사이즈를 사도 옷이 작다. 이런 한국 의류 브랜드의 특징은 해외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다. 해외 브랜드의 경우 XS부터 3XL까지 사이즈가 다양하며, 플러스 사이즈 판매 라인이 따로 존재한다. 보통의 옷가게에서 맞는 사이즈를 찾을 수 없는 여성들은 해외 쇼핑몰 혹은 매장에서 옷을 구매해야만 한다. 국내 의류 브랜드 및 쇼핑몰은 성인 여성이 입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작은 사이즈의 옷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사이즈 또한 다양하지 않으며 통일된 기준이 아닌 브랜드 별, 쇼핑몰 별로 천차만별이다.
  시선을 돌려 바라본 남성복의 경우 여성복과는 상황이 달라진다. 보통 한국 매장에서 남성복을 보면 여성복과는 반대로 무조건 크게 나오거나 실용성과 활동성에 초점이 맞춰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모습은 대한민국 사회가 여성과 남성에게 부여하는 이미지를 그대로 투영한다. 여성에게는 마르고 날씬한 몸의 이미지를, 남성에게는 두껍고 강한 몸의 이미지를 강요하는 모습이 의류 소비 시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최근엔 유니섹스 라인이나 여남 공용 쇼핑몰이 등장하면서 성별을 구별 짓지 않는 젠더리스 의류가 나타나는 추세지만,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여남 공용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디자이너에게 의류계 흐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퓨즈서울의 김수정 대표는 “여남 공용 의류를 제작하기 시작한 뒤로 기존의 기형적으로 작게 나왔던 여성복 사이즈 체계를 바로잡고, 라인은 없애는 옷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어, 앞으로 국내 여성 의류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선 “화려한 부자재를 사용하여 겉모습만 그럴싸한 옷보다는 좀 더 실용성 있고 기능적인 옷이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 모두 사회가 정해 놓은 성별의 틀에 박힌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받는 것은 옳지 않다. 그저 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싶은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 개인의 체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자연스레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과 사이즈가 다양해질 것이다. 사회는 사람들이 의식하고 행동하는 대로 따라가기 마련이다. 더이상 옷을 입기 위해 ‘여자다운’ 혹은 ‘남자다운’ 틀을 씌우며 고민하고 옷에 몸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뷰티 시크니스(Beauty sickness) 앓는 사회
  국민건강영양조사 통계에 의하면 여성의 실제 비만율은 28%에 불과하지만, 스스로 비만으로 여기는 주관적 비만인지율은 90%에 이른다. 남성의 경우 비만율이 42%, 비만 인지율은 80%에 달해 비교적 여성이 ‘나는 뚱뚱하다’라고 판단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성인 저체중 비율 또한 여성이 남성 보다 두 배 높고,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남녀 환자에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81%였다. 이 지표들은 모두 마른 몸과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이 유독 여성에게 가해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장은재 (자연과학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미의 기준은 계속 변화해왔고, 현대 아름다움의 기준은 마른 몸인 것 같다.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이 하다 보니 스스로 비만으로 여기고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월등히 많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식품영양학적으로 봤을 때, 미디어에 노출되는 여성 연예인의 다이어트 식단은 비정상적이다. 과도하게 살을 빼면 지방뿐 아니라 수분, 단백질이 함께 빠져나가면서 효소나 호르몬, 항체가 부족하게 되고 이는 면역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신경전달물질 또한 영양소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정신학적으로도 당연히 문제가 생기기 쉽다”라며 과도한 다이어트의 위험성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왜 유독 여성은 다이어트와 마른 몸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손희정 평론가는 가부장제의 깊은 역사가 그 원인 중 하나라고 답했다. 그는 “가부장제에서는 여성의 가치를 외모로 축소하여 끊임없이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부터 소외되도록 해 온 역사가 깊죠. 그런 ‘아름다움’의 기준이 점차 ‘마른 것’과 ‘하얀 피부’가 되어 온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덧붙여, 신자유주의의 자기계발 담론도 사회적 코르셋을 조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먹을 것이 없어 ‘잘 먹는 것’이 상층 계급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을 때에는 통통한 여성이 미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죠. 하지만 '질이 안 좋은 음식'을 먹고 '자기 관리할 시간이 없을 때’, 그리고 ‘자기 절제가 안 될 때’ 살이 찐다고 생각하는 시대에는 ‘건강하게 마른 것’이 그 계급을 보여주는 것으로 미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외모 기준이란 다른 한편으로는 정확하게 계급적인 문제이기도 한 거죠.” 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엔 가부장제의 영향인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려는 인식이 견고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젠 여성이 스스로 대상화하면서 끊임없이 본인의 외모와 미를 검열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미와 결부된 자본인 성형, 화장품 산업이 합쳐져 더욱 견고한 외모 지상주의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미디어를 타고 흐르는 자기 대상화
  이러한 마른 몸에 대한 환상은 미디어를 타고 더욱 빠르게 퍼진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은 기아 문제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다이어트 자극 사진 속 아이돌의 혹독한 자기 관리로 표현되기도 한다. 왜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을 보면서 동정과 동경이라는 모순된 감정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 원인엔 미디어의 송출 방식이 분명 존재한다. 마른 몸을 찬양하고, 그렇지 않은 몸을 폄하하는 소재의 개그나 혹은 예쁘면 다라고 외치는 성형 광고는 너무나 비일비재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다. 미디어에서 여성의 몸매를 다루는 이러한 방식은 왜곡된 미의식을 더욱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뉴욕에서 이뤄진 한 실험을 통해 SNS와 대중매체를 자주 접한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외모 강박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국내 한 학생복 업체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73%가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압박이 미디어를 통해 견고하게 퍼지고, 결국엔 아래로 흐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여성에겐 아름다워야 할 의무도 이유도 없다. 책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당신은 그저 몸 또는 신체 부위의 총합으로 취급받는다.” 내가 나로서, 당신이 당신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함을 명시하는 문장이다. 그래야 다음 세대의 여성 또한 이 강박과 불필요한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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