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이미지

 

  약 4년 전 혜화역 주변은 시카고 피자 음식점이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덮밥 음식점과 미국식 가정식을 파는 곳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온 동네를 달콤한 냄새로 가득 채웠던 대왕카스테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는 한때 ‘허니버터칩’과 ‘꼬꼬면’을 사기 위해 근처 모든 마트를 헤집고 다닌 적도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외에도 슈니발렌과 벌집 아이스크림, 짬뽕 맛 라면과 마카롱 등의 바람이 불었고 현재는 마라와 흑당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고작 몇 년 사이에 수많은 음식이 소비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졌다.

 

개성은 사라진 지 오래, 유행만 좇는 음식들
  하나의 식품이 인기를 끌면 어느샌가 거의 모든 거리는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프랜차이즈에 점령당한다. 2018년 우리나라의 가맹점 수는 약 243,450개. 같은 해 미국과 일본의 가맹점 수는 각각 745,290, 263,490개였다. 한국에 유독 프랜차이즈가 활기를 띠는 이유 중 하나로 낮은 시장 장벽을 꼽을 수 있다. 프랜차이즈의 진입이 쉽기에 비슷비슷한 이름과 맛, 그리고 분위기를 가진 일명 ‘미투 브랜드’가 활개를 친다. 미투 브랜드가 늘어날수록 그 음식은 소비자에게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힘들어진다. 가장 핫했던 식당이 진부한 곳으로 변해 가는 속도를 부추길 뿐이다.


  SNS를 이용한다면 ‘도를 넘는 한국인들’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주로 아주 많이 기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 괴상하다 싶을 정도의 상품을 평가할 때 쓰인다. 흑당 샌드위치와 마라 아이스크림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제품은 ‘끔찍한 혼종’이라 불리지만 냉담한 반응과 상반된 매출을 보인다.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던 아이템의 재탄생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이렇기에 인기를 끄는 아이템을 내가 가지고 있는 메뉴에 넣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맛이 좋은 조합은 호평을 받을 것이고 맛이 덜하더라도 특이한 조합은 확실한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하나의 아이템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상품이 넘쳐나면 소비자들은 더 이상 그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는 것 자체에 질리기 마련이다.


  한국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자주 의식한다. 이러한 풍속은 식문화에서도 나타난다. “이게 요즘 잘나가는 음식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한 번은 더 관심이 간다. 나만 그 음식을 못 먹으면 유행에 뒤처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거 먹으면 나도 인싸?
  콘텐츠의 발달로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인플루언서도 많이 생겨났다. 한 플랫폼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먼저 접한다. 먹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중국 당면의 유행도 인플루언서의 영향이 컸다. 그들에게서 창조되는 아이템들은 최신 유행하는 것으로 소비되어 시청자를 그 음식을 먹고 느낌을 공유하고 싶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유명해진 ‘쿄효젤리’, 분모자 등엔 ‘인싸음식’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인싸음식의 주기는 매우 짧은 편이다. 인플루언서가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선이 움직이는 만큼 유행은 더 빠르게 지나간다.


  정보 습득이 빠른 20-30대에게는 새로운 음식을 찾아 나서는 것이 일종의 놀이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들은 음식을 맛보기 위해 줄 서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자체를 즐기고 재미를 느낀다. 이들에게 새로운 맛을 보는 일은 그들만의 미션이며 자기만족이다. 한정판 운동화나 텀블러가 출시됐을 때 힘들게 제품을 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 남들보다 빠르게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은 일종의 우월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해냈다는 뿌듯함과 희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은 새로운 놀이를 끊임없이 찾길 원하며 이러한 과정은 유행 주기를 앞당긴다.


  유행을 따르기 위해 공급하고 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소비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또 다른 핫한 아이템을 열망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이클 속 여러 음식은 아주 잠깐 빛을 보고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이 만들어 낸 하나의 물결이다. 빠르게 타오르고 꺼지는 유행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맛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김현지 기자 guswl5974@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