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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배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2019년 09월 24일 (화) 18:12:34 하주언 기자 gkwndjswn2@naver.com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막을 올린 연극 <비평가>의 두 인물이다 ⓒ네이버 이미지
  7명의 여성 배우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영화 <신세계>, <햄릿> 등의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영상이 있다. 2분 남짓한 이 영상은 조회수 약 98만(2019. 9. 20 기준)을 기록했고 댓글 창에는 ‘신선하다’, ‘여성 배우에게도 다양한 역할이 필요하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다수를 이뤘다. 이렇게 여성 배우가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공연의 경우 기획 단계부터 캐릭터의 성별을 정하지 않고 배역에 맞는 배우를 섭외하는 것을 ‘젠더 프리 캐스팅’이라고 한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공연계에 새로운 바람으로 등장해 다양한 여성 캐릭터, 더 넓은 연극으로의 신호탄 역할을 하고 있다.

무성 캐릭터부터 성별 치환까지
  젠더 프리 캐스팅의 범주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성별이 고정된 캐릭터라도 성별에 상관없이 해당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에게 역할을 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주로 남성 캐릭터 혹은 기존에 남성이 연기했던 인물을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이 중심을 이루는 국내 연극계에선 여성이 설 자리가 적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여성 배우에게 다양한 캐릭터를 주기 위함이다. 예시로 연극 <비평가>를 들 수 있다. 이 연극의 원작에서 주인공 연출가와 비평가는 모두 남성이었지만, 국내 초연 당시 두 인물 모두 여성 배우가 연기한 바 있다.
 
  두 번째는 신과 동물 등 성별 구분이 없는 무성 캐릭터의 캐스팅이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신이라는 설정의 ‘월하’역에 여성과 남성 배우를 동시 캐스팅해 성 고정관념의 해체를 시도했다. 이렇게 한 인물을 두 성별이 연기하게 될 경우, 연기의 스펙트럼과 더불어 관객의 선택지가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캐릭터 자체의 성별을 전환하는 캐스팅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햄릿은 남성이지만, 2016년 국내에서 초연된 연극 <함익>에서는 여성이 햄릿을 연기함으로써 캐릭터의 특성 자체를 변주한 고전의 재분석이 이뤄졌다.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시작된 변화
  이러한 젠더 프리 캐스팅 바람의 시발점은 2018년 국내에서 일어난 ‘미투(Me Too)’ 운동이었다. 미투 운동은 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그 심각성을 알리는 운동으로, 극단계에선 위계에 의한 연출가의 성폭력이 잇달아 폭로됐다. 이후, 연극계 내 성평등 담론이 제시되며 무대 위의 더 많은 여성 서사와 여성 배우의 다양한 역할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바로 젠더 프리 캐스팅이었다. 더불어 여성 서사에 갈증을 느꼈던 관객의 수요가 뒷받침되면서 이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기존 여성 캐릭터는 성녀와 창녀 등 이분법적으로 분류되거나 수동적인 엄마, 여자친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성별을 뒤집는 캐스팅을 통해 좁은 여성 캐릭터의 입지를 확장하는 일이 수월해졌다. 실제로, 이 캐스팅을 통해 기존 공연에선 보기 힘들었던 여성 신, 왕 그리고 갱스터가 무대에 등장했다. 관객은 캐릭터의 특성을 성별의 특징으로 여기기보다 그 사람의 것으로 보게 됐다. 이는 가시적으로 답습되던 성 편견을 깨는 순기능으로 이어지고 배우와 배역의 생물학적 성을 일치시키는 관행에서 벗어나는 기점이 됐다.

여전히 적은 무대 위 여성의 목소리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공연계엔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아직도 무대에 오르는 여성의 수는 비교적 적으며, 젠더 프리 캐스팅이 주인공이 아닌 조연 인물에서 만 한정적으로 이뤄진다는 한계도 있다. 연극 <비평가>를 기획한 이영석 연출가는 이 흐름에 대해 “개인적으로 연극에서 젠더 프리 캐스팅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흥미의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사회적 성차별과 우리 인식의 불균형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연극은 강연이 아니라 공연이므로 내용과 작품성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적극적인 선택으로 실천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젠더 프리 캐스팅이 공연뿐 아니라 예술계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에서 활용되길 바라는 건 이른 욕심일까. 성별을 뛰어넘는 캐스팅과 텍스트를 통한 건강한 성 담론이 문화계와 사회로 뻗어 나가길 바라본다. 
하주언 기자 gkwndsjw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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