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교실’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 학급당 학생 수가 많았던 시기의 교실 모습을 콩나물이 빽빽하게 자라는 모습에 비유한 말이다. 1970년대에는 한 학급당 학생 수가 70명이 넘어 교사가 쉽게 지나다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반대인 상황이 펼쳐진다. 통계청이 올해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5-49세의 가임기 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1970년 출생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합계출산율 0명대 시대에 진입했다.


  저출산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출산이 많이 이뤄지는 20-30대 인구와 혼인 건수가 줄어들어 출생아 수도 함께 감소했다. 결혼해도 출산을 미루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주된 원인 중 하나다. 끊임없는 취업난과 주거비 부담 등으로 아이 낳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미래에 대한 큰 걱정 없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인구 감소가 우리 경제·사회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인구 구성의 불균형이다. 사회학자들은 한국 내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 감소 과정이 후대의 부담을 가중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젊은 세대보다 복지의 대상이 되는 노인 세대가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이 거시적으로는 노동력, 국가적 생산성 감소로 귀결되고 미시적으로는 삶과 복지의 질이 훼손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예상한다.


결혼과 출산, 더는 의무 아닌 선택
  하지만,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자 자기 결정권이 존중돼야 할 분야로서 개인적 차원으로 봤을 때 저출산이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출산을 강요받은 예전과 달리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게 된 지금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의견이 주를 이루기도 한다. 이들은 노동력이 없다면 외국인 이민자의 적극적 수용 혹은 자동화 시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출산을 또 다른 원인으로 보기에 앞서 결과로서 받아들이고, 저출산을 초래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입장이다.
 
  저출산 문제는 개인화의 맥락에서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개인이 가족이나 친족 같은 혈연집단보다 자신이라는 개체적 자아를 우선시하고 결혼이나 출산을 선택의 문제로 상대화하는 의식을 가지게 됐음을 의미한다. 둘째, 가족이나 공동체라는 울타리에서 나와 홀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불안정한 개인이 결혼과 출산을 계획하기에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전자의 경우 자발적 선택이라면 후자는 비자발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성인이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당연시하던 사회에서 벗어나 이제 결혼이나 출산을 의무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경제적 지원이 근본적인 해결책?
  문재인 정부는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심화 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본 정책의 세부 내용으로는 둘째 자녀를 위한 육아 휴직을 할 경우 한도 수당을 15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인상하는 ‘아빠의 달’ 지원 확대, 난임 시술비 지원 확대 등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혹하기만 하다. 지난 2006년부터 작년까지 정부에서 저출산 대책 예산으로 사용한 비용은 130조 원가량이나, 그다지 큰 성과는 보이지 못했던 까닭이다. 심지어는 문재인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 역시 참신함 없이 전 정부의 정책을 확대해 적용했을 뿐이라는 지적마저 잇따르고 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을까. 프랑스는 2005년에 비혼 가정 출생아도 기혼 가정과 같은 지원을 하는 법(PACS)을 제정하며 저출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영국이나 독일, 오스트리아 등 여러 국가에서는 정년 연장과 이민 완화 정책을 동시에 펼치며 경제 인구 감소 방지와 출산 장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우리나라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외 사례와 같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 청년층에게는 출산은커녕 결혼마저도 경제적 부담이 큰 실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출산율 상승을 기대하며 청년층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진짜로 집중해야 할 부분은 이제는 금전적인 지원이 아니라 출산에 대한 국민 개인의 인식변화다. 출산을 바라보는 개인의 생각이 바뀔 때 비로소 사회도 변화가 일어난다. 출산휴가 사용이 눈치 보이지 않고 경력단절이 될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의 특수성
  저출산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인을 심층적으로 해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의 특징은 사람들의 가치변화와 사회구조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질은 경제사회 발전과 연동하여 빠르게 변화해 왔다. 하지만 국가의 문화와 사회구조가 국민의 변화된 가치와 삶의 질을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개인의 선택이 어려워졌다. 과거 우리는 성평등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성평등 수준이 출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현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교육 수준 상승, 경제활동 참여 증가 등으로 성평등이 중요해진 반면, 노동시장이나 가족생활 등에서의 성평등 수준은 더디게 변화했다. 이에 따라 개인들은 가치변화와 현실의 간극을 메우지 못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 문화나 사회구조가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에 따라 변화하지 못해 개인은 결혼과 출산을 줄이며 적응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낮은 출산율을 인구학적인 양적 지표로서만 간주하여 방치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해답은 성평등한 복지로부터
  이 사회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세 가지 사항을 완성해야 한다. 첫째, 고용시장에서의 학력차별, 성차별, 연령차별, 비정규직 등 각종 차별이 해소되고,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착취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노동시장에서의 일상화된 구조조정이나 실업, 해고, 퇴직,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셋째, 어떤 가정환경에서 태어났는지에 상관없이 한 명의 사회구성원이 온전한 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사항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선순환 동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교집합에 성평등이 자리 잡아야 한다.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 재생산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사회 속에서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많은 희생을 담보로 하는 어려운 결심이다. 금전적 해결책만을 고려하는 저출산 대책으로는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없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어떤 삶을 선택하더라도 평등하고, 자유롭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정보운 기자 bounj07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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