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는 물러가고 어느새 가을바람이 살랑이는,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 찾아왔다. 우리 학교가 위치한 성북구에도 예쁘고 볼거리가 풍부한 장소가 많다. 오늘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유명 장소보다 자신이 사는 가까운 동네를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떨까.

                                                                          정보운 기자 bounj0719@naver.com
                                                                   곽예은 수습기자 yeeun3636@naver.com
                                                                김가희 수습기자 skyballoon00@naver.com
                                                                     노희주 수습기자 nnwriggle@naver.com

 

달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을 거닐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간, 한적한 시골 느낌을 물씬 풍기는 마을이 성북구에 있다.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인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북정마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양도성 성곽 바로 아래 위치한 이 동네는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1111번 버스를 타고 40여 분을 달려 달과 제일 가까워질 쯤에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길치임에도 먼 길을 잘 찾아왔다는 기쁨 반, 헤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반을 안고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 명이 나란히 갈 수 있을 만큼 널찍하고 손잡고 걷기 좋은 골목이었다. 또, 한 사람만 겨우 걸어갈 수 있는 좁은 폭의 길은 끝없이 이어져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조선 시대 때 메주를 만들기 위해 온 마을 사람이 북적북적하게 모였다는 뜻에서 북정이라고 불렸다는 이곳은 지금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됐다. 몇몇 어르신들의 나지막한 대화와 간간히 들려오는 자동차의 시동 거는 소리만이 귓가를 부드럽게 감싼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골목을 따라 강렬한 원색의 지붕과 빛바랜 벽들이 뒤섞인 집들은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낡은 집 벽 한구석을 아름답게 수놓은 꽃들, 시간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담벼락은 정겨운 느낌을 불어넣는다. 특유의 분위기에 푹 빠져 잡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느샌가 사진작가라도 된 듯 마을 여기저기를 추억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진을 찍다 담장 위에서 호기심에 가득 찬 눈길을 보내는 새끼 고양이 두 마리와 짧은 인사도 나눴다.


  옛것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이 마을을 거닐 때면 방 안의 TV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서울 한복판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작은 소음들이 섞여 만들어진 여유로움. 시끄러운 번화가에 지쳤다면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북정마을에 들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조선의 숨결을 느끼며 쉬어가다

  우리 학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조선 왕릉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6호선 돌곶이역 7번 출구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조선의 20대 왕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 씨의 무덤 ‘의릉’이 있다. 이렇게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맸다. 흐린 날씨였지만 조금 높은 기온 탓에 금세 지쳤고 힘든 만큼 짜증이 난 채 발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우 매표소에 도착해 입장권을 샀다. 걸음을 옮겨 의릉으로 들어가니 입구에는 ‘금천교’라는 다리가 보였다. 이곳은 단순히 길을 건너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의미를 알고 나니 다리를 건널 때 숨겨진 비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금천교를 건너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붉은색 홍살문을 지나면 왼쪽과 오른쪽의 높이가 다른 돌로 된 길 하나가 나온다.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향을 들고 가는 향로, 오른쪽의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어로다. 어로로 걸으라는 팻말을 따라 임금 행세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정자각’에 들어섰다. 정자각은 지금까지 사용되는 제향 공간이다. 그 위에 올라서니 왠지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자각 뒤편으로 돌아서자 비로소 의릉이 나타났다. 능침공간에는 들어갈 수 없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천천히 걸으며 바라본 의릉은 고요한 분위기를 풍겼고 웅장한 멋이 있었다.

  의릉 옆 산책로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초록 물결이 살랑대며 내 주위를 포근하게 에워쌌다. 숨을 쉴 때마다 나는 풀냄새는 온몸으로 상쾌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도시의 소음을 의릉이란 벽으로 막은 듯 주변은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항상 바쁘게 움직였던 서울에서 여유를 느끼며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 경험은 색다른 선물로 다가왔다. 이따금 지칠 때 의릉에 방문해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가야겠다.

심우장에서 문학과 민족의 정신을 느끼다

  우리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동네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아갔다. 그의 삶이 그대로 보존된 마을에는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냈던 ‘심우장’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곳곳에 놓여있었다. 심우장은 완전한 깨달음을 깨치기 위한 집이라는 뜻으로, 늘 공부에 전념했던 그의 일생을 담고 있다. 얼핏 평범한 한옥처럼 보였지만, 지리적으로 유리한 남향이 아닌 북향으로 지어진 점이 눈에 띄었다. 이는 조선총독부 청사에 등지기 위한 목적을 지닌 건축구조로, 뼈아픈 역사 속에서도 민족의 혼을 간직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가 묻어났다. 북쪽을 향한 한옥의 형태에서 독립운동가였던 그의 투철한 저항 의식이 느껴졌다.


  어떠한 변형도 없는 심우장의 방과 부엌 등을 보며 만해 한용운이 여기서 만년을 보냈다는 것이 실감 났다. 특히 그가 살아생전 만들었던 작품들이 진열된 방에서 그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의 독립 의지가 담긴 시 「님의 침묵」과 심우장의 내력을 밝힌 글은 그가 민중계몽을 위한 운동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불교 교리를 담은 글씨 서각은 불교계를 혁신적으로 이끌었던 스님의 면모를 드러냈다. 게다가 그가 전 생애를 걸쳐 지은 한시를 수록한 시집이나 외국어로 번역된 시집은 그가 한국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근대적 시인이었음을 증명하는 듯 했다.

  심우장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골목길 어귀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 ‘만일 내가 단두대에 나감으로써 나라가 독립된다면 추호도 주저하지 않겠다’라고 적힌 팻말이 인상 깊었다. 그의 저항 의지가 강하게 담긴 그 글에서 나라 잃은 민족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골목 사이사이로 흐르는 바람이 제법 차가워지고 있음이 느껴졌던 가을 아침, 만해 한용운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며 지난 우리의 역사에 대한 아픔과 의지가 와 닿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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