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 자료를 수집·보존·연구하는 국립한글박물관을 방문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이 걸어온 길이라는 주제의 상설 전시, 한글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기획 전시와 더불어 한글 자료 체험의 장소를 제공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채롭게 변화하면서도 한글이 지난 문화·예술적 가치를 지키는 기관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글의 본질을 지키며 변화하다

  최근, 국내 박물관들은 기존의 지루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고자 노력하는 추세다. 국립한글박물관 역시 한글 고유의 가치를 담은 전시에 젊은 감각의 자체 기념품을 더해 변화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이 지켜야 할 본질인 전시 내용에 대한 충분한 자료와 이에 대한 설명도 놓치지 않아 제 역할을 하는 기관임을 입증했다.
 
  우선, 박물관의 상설 전시는 흥미와 전문성 모두 놓치지 않도록 기획됐다. 전시는 한글의 창제부터 문자와 현대 기술의 조합을 다루고 있었는데, 관객의 수준에 맞춘 기본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뤘다. 한글의 원리를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과 아이 모두 이해할 수 있을 수준의 내용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설명했다. 전시관 곳곳에 놓인 터치스크린이 그 방식 중 하나였으며 이는 전시가 지루하게 흐르지 않도록 도왔다. 특히 실제 광고 제품의 이름을 연도별로 보관해둔 화면은 관람객이 과거의 상표를 보고 추억에 잠기게 하거나 무궁무진한 한글만의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전시의 마지막, 한글 정보화를 주제로 한 3부에서는 실제 대학 강의에서 배우는 국어정보학을 다루고 있어 전문성까지 확보한 전시였다.
 
  무엇보다 박물관 한쪽에 마련된 질 높은 기념품은 박물관의 매력을 한층 확장하는 요소였다. 기념품 매장에는 필기구부터 패션 용품까지 다양한 종류가 마련돼 있었다. 순우리말이나 시의 일부가 발췌된 디자인 제품은 한글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은 선에서 매력을 살렸고,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한글에 대한 애정을 갖게 했다. 또한, 기념품이 전시 관련 내용으로 꾸며졌기 때문에 상품 구매는 관객이 전시를 한 번 더 곱씹을 수 있도록 돕는 매체로 작용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누구에게나 열린 전시 공간이다. 또한, 성인 관람객에게 박물관은 학창 시절에 잠깐 배우고 스쳤던 한글의 창제 원리, 역사에 대해 복습할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잊고 있던 한글만의 독창적인 가치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박물관이었다.
 
하주언 기자 gkwndjswn2@naver.com


 

화려한 표면 속 알맹이 없는 박물관

  박물관은 고고학적 유물 전시와 현대 기술을 활용한 역사 체험을 제공한다. 이로써 우리는 경험할 수 없었던 시대에 대한 정보를 학습하고 지난 역사의 현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에 대한 학술적인 요소가 부족하고 관람 진행에 불편함이 커 본질적인 견학이 이뤄지지 못했다.
 
  먼저,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 관련 자료의 부족과 낮은 전시 수준으로 방문객의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 수려한 디자인의 박물관 내부는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그에 비해 진열된 유물은 실제를 본뜬 모형 등이 조잡하고 자료의 양도 적어 초라했다. 이렇듯 빈약한 내용의 전시는 한글이 지나온 역사의 실재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또한, 관람 대상이 어린이나 외국인에게 맞춰져 있어 전시 내용에 한글 학문의 심화적인 부분까지 포괄하지 못했다. 전시 공간 역시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 위주로 조성돼 있어 박물관에 주로 찾아오는 20~30대의 방문객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집중을 흐리는 방해 요소가 많아 박물관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한글 디자인을 담은 기획 전시실에서는 작품을 볼 때 강한 페인트 냄새가 거슬렸다. 개화기 문학을 이끌었던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을 볼 수 있는 책장은 책이 인쇄된 판자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 실망감을 더했다. 한글을 이용한 광고의 체험 공간에서도 전광판의 작동 오류로 인해 현대의 광고 글자를 보지 못했고, 심지어 헤드셋이 없어 음성 지원도 불가능했다. 이렇듯 박물관의 어설픈 모습은 방문객의 당혹감을 자아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에 대한 교육적 내용의 부실함과 준비가 덜 된 체험 부스가 실망감을 안겼다. 한글의 문화·예술 가치를 보기 위해 향했던 발걸음이 무색해지는 시간이었다. 천지인을 형상화한 외관과 자음 모양으로 제작된 의자가 박물관 디자인의 독특함을 살린 것에 비해 독창성이 느껴지지 않는 전시 내용과 공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 진행될 각종 전시는 국립한글박물관만의 특별함을 한껏 발휘할 수 있을까.
 
노희주 수습기자 nnwrigg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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