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끌어 더러워진 기자의 손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만큼 많은 방식의 걸음걸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는 다수의 모습인, 두 발로 걷지 않는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동정표를 던진다. 무작정 도와준다고 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막말한다. 이렇게 다른 방식의 걸음을 걷는 사람들에겐 매일 수많은 시선이 쏟아지고 하루, 이틀 그들의 마음엔 상처가 쌓여간다. 우리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걸어보기를 택했다. 휠체어를 빌렸고, 1주일 동안 이를 사용했다.


  근처 주민센터에서 휠체어를 빌린 뒤 처음 간 곳은 학교 근처 식당이었다. 학교를 나오자마자 정문 앞 내리막길이 기자를 반겼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마치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롤러코스터를 보는 듯했다. 뒤에서 끌어주는 다른 기자와 조심히 길을 내려왔지만, 순간 휠체어를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속도가 붙었다. 우여곡절 끝에 내려왔지만 곧이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계속 말썽이던 왼쪽의 작은 바퀴 때문에 휠체어가 차도 쪽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황급히 아래에 있던 브레이크를 잡았기에 큰일은 면할 수 있었다. 휠체어를 끌었던 기자와 나 모두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우리 학교가 있는 월곡동은 유난히 휠체어로 다니기 힘들었다. 중간에 인도가 끊기는 곳도 있었다. 쌩쌩 달리는 차를 피해 도로를 건너야 했지만, 도무지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휠체어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기다려 차를 보낸 뒤에야 일행과 함께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이제 들어가서 편하게 밥만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으나, 식당 앞에는 턱이 있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올라갔을 법한 작은 턱이었지만, 휠체어에 앉아보니 혼자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일행들은 내가 탄 휠체어를 번쩍 들어 올렸고, 겨우 식당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장애물을 넘기 위해 두 명 이상의 사람이 필요할 줄은 몰랐다. 정비되지 않은 도로 사정, 쉴새 없이 나오는 작은 턱들. 적어도 이 동네에서는 장애인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없어 보였다.

△휠체어 리프트 조종기의 모습이다 

배려가 2% 부족한 우리나라 지하철
  지하철 통행은 조금 쉬울까. 월곡역에서 출발해 동대문역까지 휠체어로 이동해봤다. 완전히 도착하는데 평소보다 2~3배의 시간이 더 소요됐지만, 탑승구까지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무난했다. 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서 다행히 휠체어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 어려움이 찾아오는 법이다, 1호선 동대문역에 내릴 때 플랫폼과 열차 사이의 틈이 매우 넓어 보조 바퀴가 틈에 걸리고 말았다. 보조 바퀴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열차와 승강장 그 좁은 틈에 옴짝달싹 못 한 채 발이 묶였고, 우리처럼 열차도 움직이지 못했다. 조급해진 마음에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지만, 사람들은 빨리 내리지 않고 뭐하냐는 불만 섞인 얼굴로 휠체어에 앉은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에 순간 얼어붙었고 차마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달려와 휠체어를 들어 바퀴를 빼 주셨다.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출입구 틈 사이에 끼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우울해졌다.


  열차에서 내려 8번 출구로 가는 길, 겨우 10개 남짓한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야 했다. 계단을 이용하면 30초도 걸리지 않을 법한 그 구간을 이동하기 위해 역무원을 기다렸고, 기구를 타서 올라가기까지 약 5분 정도가 걸렸다. 이곳에 비치된 리프트는 케이블카와 비슷한 모양으로 앞뒤가 다 막혀 있어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었다. 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월곡역의 리프트는 매우 위험했다. 안전장치라고는 앞뒤로 설치된 안전바 하나뿐이었으며 사방이 뚫려 있었다. 심지어 매우 느리게 운행돼 뒤늦게 도착한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계단에서 머물러야 했다. 리프트의 크기도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이 모습이 신기한 듯 한 번씩 쳐다봤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시선과 고개는 절로 내려갔다. 두 역의 기구를 사용하기 위해선 역무원의 도움과 관리가 필요했다. 짧은 거리를 갈 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매우 번거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운 복잡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기자가 직접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고 있다

편견, 큰 상처가 되다
  월곡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의 일이었다. 엘리베이터 앞 폭이 상당히 좁아 기자가 탄 휠체어가 길 중앙에 서 있게 됐다. 옆으로 움직이고 싶었지만, 역시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사람들의 통행에 불편을 끼치진 않을까 걱정하던 찰나, 문이 열렸다. 길을 대부분 차지한 휠체어 탓에 사람들은 한 줄로 벽에 붙어서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민망함과 미안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 순간, 한 중년 여성의 한껏 신경질이 난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어휴, 걸리적거리게 왜 여기 있는 거야?”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고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보행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을 보고 걸리적거린다는 표현을 쓴 그 여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비장애인인 기자에게는 그의 몰상식한 발언에 분노의 감정만 느꼈지만, 만약 내가 진짜 다리가 불편했더라면 ‘걸리적거린다’라는 말이 매우 깊은 상처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 어린 시선을 마주한 것은 그뿐만 아니었다. 동정심이나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나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시민들도 있었는데, 순간 그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는 생각에 민망했다. 만약 그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봤더라도 그 시선이 달갑진 않았다.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모습이 동정의 대상이 되는 듯해 점차 어깨가 위축됐다.

나란히, 발맞춰, 같이 걸어갈 때
  자라오면서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주입식 교육받듯 머릿속에 새겼지만, 직접 휠체어에 앉아보니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보이지 않던 사회의 모습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밖을 활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거쳐야 하는지,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얼마나 많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지 새삼 깨달았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시선이 서로 맞닿을 때 비로소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제도가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의 걸음과 그들의 시선에 우리가 조금만 맞춰보는 것은 어떨까. 조금만 걸음을 늦춰 나란히 걸어간다면 분명 함께 걸어가는 동행의 가치가 얼마나 값진 일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김현지 기자 guswl5974@naver.com
정채원 기자 jcw9905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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