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고 지루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박물관. 하지만 서울 곳곳에 숨어있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이 박물관들은 흔한 사고의 틀을 보란 듯이 깨부순다. 추운 겨울, 쇼핑몰이나 영화관 같은 뻔한 실내 공간에 질렸다면 재밌는 박물관에서 유익한 시간을 보내 보는 것은 어떨까.

정채원 기자 jcw990531@naver.com
곽예은 수습기자 yeeun3636@naver.com
김가희 수습기자 skyballoon00@naver.com
김도헌 수습기자 heenglow@naver.com

팔색조 매력을 지닌 한의약의 세계에 빠지다

  조선 시대 때 가난한 백성 치료와 약 조제를 담당하던 ‘보제원’이 지금의 동대문구에 있었다. 한약재 내음이 가득했을 이곳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 한약재의 약 70%가 유통되는 ‘서울약령시장’이 돼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한의원과 제분소가 골목골목 자리 잡은 시장을 걷다 보니 현대적 건물 양식 위에 자리한 고아한 기와가 인상 깊은 ‘한의약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한약을 제조할 때 쓰는 여러 의약 기구부터 진주, 해마와 같은 우리에게 낯선 약재 등 많은 물건이 전시실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한방 입욕제를 이용한 족욕, 의녀와 의관을 비롯한 전통 의상을 입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러 약재 때문인지 전시실은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냄새를 풍겼다.
  약재 전시장을 지나 침을 보관하는 ‘침통’이 전시된 공간으로 들어섰다. 대여섯 개의 침통은 나무, 은 등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모양이었다. 침통은 생각보다 작은 크기였는데, 각 침통에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문양이 그려진 점이 인상 깊었다. 이를 통해 침통이 치료를 통한 쾌유의 소망을 담기도 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환자의 병이 무사히 낫길 바라는 선조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람의 체질을 네 가지로 분류한 내용부터 눈을 사로잡는 다채로운 전시물, 그리고 지친 몸의 피로를 녹이는 프로그램까지. 톡톡 튀는 매력을 지닌 이곳은 관람객 모두에게 잊지 못할 멋진 하루를 선사하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떡, 어디까지 알고 먹니?

  떡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떡의 역사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와룡동에는 이러한 떡의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떡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떡’이라는 생소한 전시내용에 이끌려 박물관의 문을 두드렸다.
  먼저 혼례, 백일 등 과거 통과의례에 차려졌던 상차림을 복원해 놓은 통과의례관으로 향했다. 각각의 의례마다 상 위에 올라간 음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갈하게 차려진 상에는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한 떡부터 생소한 수수팥경단까지 다양한 떡들이 올라와 있었다. 상차림을 구경하며 백 사람에게 나눠줘야 아기가 오래 산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긴 백일 떡에 대한 유래까지 알게 됐다. 통과의례관을 지나자 보이는 세시음식관은 점점 기억에서 사라지는 세시풍속의 상차림을 전시해 기자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매해 다르게 기획되는 특별전시관에서는 ‘옛이야기 떡 보따리’라는 주제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창작한 동화와 함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떡의 역사를 자세히 배울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그저 평범하게만 느껴졌던 떡은 조상의 삶에 생각보다 깊게 녹아 있었고, 전통 음식에 무관심한 관람객의 태도를 뒤바꾸기에 충분했다.
  전통 상차림에 올라가는 다른 음식들도 함께 전시돼 있어, 우리 음식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었다. 떡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관람객의 흥미를 돋우는 데 단연 일등 공신이었다.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전통음식을 오감으로 느껴보고 싶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길 권한다.

3,000마리 부엉이와 떠나는 세계 여행

  ‘부엉이 곳간’이라는 속담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는 ‘없는 것 없이 이것저것 다 들어 있는 창고’를 뜻하는 말이다. 여기, 그 속담과 어울리는 공간이 있다. 바로 종로 삼청동에 위치한 ‘부엉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우리 학교 강의실보다도 작은 공간이 눈에 띈다. 중심에는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이 있고, 그 주위로 커다란 장식장이 사면을 메운다. 장식장 안에는 옥기, 청동기, 민화부터 화폐, 우표, 만화 등 과거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다양한 부엉이 작품이 가득하다. 부엉이 박물관을 책임지는 배명희 관장은 찾아온 손님들에게 차 한 잔을 건네며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배 관장은 14살 때부터 52년 동안 부엉이와 관련한 유물, 공예품, 생활용품 등을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박물관을 운영한 지는 올해로 15년이 돼간다. 공립이 아닌 개인박물관이기에 운영하는 데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박물관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단지 부엉이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부엉이와 올빼미의 차이점부터 헤겔 철학에 등장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신화까지, 배 관장은 긴 세월 간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부엉이와 관련한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이곳에서 꼭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따뜻한 차와 부엉이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 그리고 이 작은 공간을 지키는 3,000여 작품들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