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4 수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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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동덕문화상
2019년 11월 13일 (수) 18:11:30 동덕여대학보 ddpress@dongduk.ac.kr

 지난달 7일까지 본교 학우를 대상으로 제32회 동덕문화상 공모가 진행됐다. 시 부문 여태천(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소설 부문 윤대녕(인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사진 부문 신빛(예술대학 회화과) 겸임교수가 심사를 맡았다.  이번 호의 5~7면은 동덕문화상 당선작으로 꾸며졌다.

<동덕여대학보사>
 
 
 
| 시 부문 당선작 
 
별나라 식구들 - 이상미(문예창작 14)
1
 
우리는 매일 저녁 식사시간 시계의 12와 6처럼 마주 앉는다 n극과 s극같이 한 몸에서 가깝게 멀어진다 입은 진공포장된 생선 마냥 납작해진다 여기서 하는 모든 말들은 밥과 함께 넘어가고 국과 같이 식어간다 아빠는 자주 오늘 신문에 탑으로 실린 한 정치인의 윤리적으로 문제 되는 행동에 대해 말한다 나는 윤리보다는 기술 가정을 좋아했기에 밥을 한 숟가락 더 입에 집어넣었다 놀러 왔던 내 친구는 인공위성 마냥 겉돌다 가면서 헤어진 옛 아빠가 떠오른다고 했다 나로호를 타고 사라졌다는 아빠, 친구의 아빠는 별자리 운세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별자리 운세를 봐 줄 수는 없었다며 내 친구는 매일 밤하늘을 보며 걷는다

2
우리 집에는 은하가 있다 백색왜성 마냥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별들이 있다 나는 식사시간마다 우리 가족의 운석 충돌을 보면서 지구 멸망을 예견해본다 매 식사시간마다 무중력 같은 침묵이 덮치고 어렸을 때부터 꿈이 우주비행사였던 내 동생은 자기만의 행성을 찾아 가출이 잦아졌다 그리고 나는 동생이 남긴 궤도를 따라 불완전한 우주선을 타고 쫓아가본다 엄마, 아빠는 오늘도 알 수 없는 크롭 서클을 해석하느라 바쁘다 내 천구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밤하늘만큼은 죽어도 안 보려고 매일 땅을 보고 걷는다


시 당선 소감

지연이 시인일 때는 시를 쓰는 그 순간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님이 작년 여름, 저에게 준 편지의 일부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시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계속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자리에 앉고 시를 쓰다 보니 벌써 시를 쓰기 시작한 지는 몇 년이 지났습니다. 학보에 실리는 제 시는 최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가 쓰게 된 시입니다. 유달리 다른 것을 고민한다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다만 모두가 하는 고민에 제가 약간은 덜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습니다. 제 시를 좋아해 주는 많은 학우 및 친구들, 제가 펜을 놓지 않게 도와준 은사님들, 제 작품이 학교 신문에 실릴 수 있게 고생해준 분들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 및 절 사랑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조금 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시 심사평

올해 동덕문화상 응모작들은 비교적 다양한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체험이 구체적으로 담긴 작품부터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작품, 자기 성찰적이거나 사회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낸 작품까지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언어를 통해 세계를 발견하고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축제의 밤, 별들은 산산조각 나고」는 미세한 관찰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시의 소재인 ‘감자’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유리어항」은 위태롭고 불안한 감정을 ‘유리어항’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상황을 설명하려는 의욕 때문에 불필요해 보이는 구절이 더러 있었지만, 구체적인 장면 서술이나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고 이를 언어화하는 능력이 수준급이었다. 「1358*」은 아주 건조한 문체로 감정의 변화를 이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내면이란 사실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 행동과 말을 통해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시의 화자는 ‘구피’라는 물고기의 죽음에 대해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 태도는 시적인 순간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과정과 매우 닮았다. 시적인 말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침묵하려는 화자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는 시적인 이미지를 잘 포착해냈다.  

「별나라 식구」는 불편한 감정과 현실을 심드렁한 태도로 가볍게 뛰어넘는다. 집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별들”로 가득하다. n극과 s극처럼 가족 구성원들은 멀리 있고, 그들의 “입은 진공으로 포장된 생선”처럼 납작하다. 시는 가족 구성원들의 불편한 관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아버지, 그런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윤리보다는 기술 가정을 좋아”했다며 눙치는 나, 자기만의 행성을 찾아 가출하는 동생의 이야기가 매우 실감 나게 그려진다. 언젠가 가족 구성원 간의 “운석 충돌”이 있을 것만 같은, 어긋난 채 돌아가는 모습이 현실감을 더한다. 여기에 “별자리 운세”를 궁금해 하는 친구의 역할까지 한 가족의 풍경과 그 풍경의 외부적 시선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함께 응모한 언니의 외출을 흥미롭게 보여준 「해저 3만리 돌고래 거주일기」에서 언니가 돌아온다는 말에 “발이 커졌을 언니를 위해 큰 신발을 신발장에 뒀다”고 말하는 대목은 응모자가 지닌 감수성의 깊이를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게 말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선이 지니는 중요성을 잊지 않기 바라면서 「별나라 식구」를 올해의 당선작으로 뽑았다. 예민한 관찰의 눈으로 사물과 세상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계속해 좋은 시를 쓰기 바란다. 아울러 응모한 모든 학생에게도 격려의 말을 전한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씨앗으로 존재하는 말이 언젠가는 시로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여태천(시인·국어국문학과) 교수

 
| 사진 부문 당선작

Heterotopia; 헤맴 연작 - 양수란(국어국문 14)


사진 당선 소감

William Wordsworth의 시 <Daffodil>에는 “I wandered lonely as a cloud”라는 구절이 있다. 번역해보자면 “헤매었어, 나는, 구름처럼, 홀로” 정도가 될까. 우리를 비추는 수면 위에서 구름처럼 춤을 추는 자아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물빛을 필름에 담았다.
나는 줄곧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나에 대해 연구했고,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다녔다. ‘나’라는 여행지 속에서 물은 꼭 랜드마크 같았다. 자아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이미지인 나르키소스의 물빛으로부터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지문을 더듬는 심정으로 서성거렸다.
물의 표면은 잔잔하며, 일렁이고, 비출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물에 다가가면 무력하게도 비추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셈이다. 다가가면 거역할 수 없이 나를 바라보게끔 하는 ‘물’과 거울이나 물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직시할 수 없는 나의 ‘눈’. 그 일렁이는 수면 위에 바라보기 힘든 나의 근원적 모습과 자아를 담아내 바라보고 싶었다. 
“Painting is self-discovery. Every good artist paints what he is.”― Jackson Pollock
그의 말처럼, 끊임없이 “self-discovery” 하는 삶이길.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 모두가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며, 더 오래 살아남기를 바란다. 고마운 당신들이 있기에 나는 아직 필름을 끼우고, 연필을 잡는다.


사진 심사평

현대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사진 매체는 어떻게 시대를 다르게 해석해 왔는지 보여주고 있다. 풍광이든 일상적 스트리트든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시선과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사진을 구성하는 피사체의 근본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작가들이다. 그들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속성과 가능성에 고민한다. 그리고 사진의 고정된 형태를 변형하거나 지우고, 뒤섞으면서 사진적 이야기 구조를 지극히 개인화한다. 피사체의 구조물을 무너지게 하거나 다시 찾게 되고, 되찾은 것은 다시 또 없애 버린다. 이런 작업유형을 통해 파괴와 창조, 질서와 불규칙, 등 충돌하는 두 개의 개념을 새로운 자기방식으로 풀어간다. 

“나는 줄곧 사진을 찍으며 나에 대해 연구했고,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다녔다. 마치 그게 꼭 거쳐야 하는 길이라도 되는 듯. ‘나’라는 여행지 속에서 물은 꼭 랜드마크 같았다. 자아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이미지, 나르키소스로부터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사진은 물의 이미지로 매듭이 묶이고 있는 것이 맞다. 지문을 더듬듯 물에 다가가며 보이지 않는 나의 원초적 자아를 찾으려 했다.”(작가의 말)

<Heterotopia; 헤맴 연작> 이 작품은 사진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의 사진적 결과물이다. 자아에 대한 느낌, 독백, 공상, 꿈의 다층적 콜라주인 것이다. 촬영 피사체가 되었던 물과 주변 소재들은 작가 자신이 담고 느끼고 싶은 근원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물에 비친 물빛은 필름카메라가 담아내는 진한 향수의 결정체이다. 그런 촬영과정들은 ‘나’를 찾아가는,‘나’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20대 젊은 작가로서 이런 질문들은 ‘나’에 대한 탐구이고 자연과 함께하며 ‘상상’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사진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을 주관적으로 프레이밍 하는 것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관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간격 없이 직접 물빛 속으로 빨려들어 가거나 직접 만지고 싶어 한다. 본질을 직접 보고자하고 느끼고 싶어 하는 간절한 희망이 사진 속에 깊이 묻어있다. 필름 카메라로 떠난 여행은 작가의 개인적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자신도 몰랐던 자의의 발견과정이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헤매었어, 나는, 구름처럼, 홀로” 
신빛(사진가·회화과) 겸임교수

| 소설 부문 당선작
 

가위 - 김명은(문예창작 18)

나는 그 순간을 자주 잊었다. 초등학생 때 나간 중창대회에 개인 파트가 있었고, 자주 불안해하던 엄마는 그날 가위로 손목을 그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나에게 켜지던 순간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어온 선생님에 의해 모든 게 중단되었다. 관객석의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선생님 손에 끌려가는 동안 스포트라이트의 불은 허공을 비췄다. 그 사이로 보이는 먼지들은 공기를 가득 메웠다. 
끝마치지 못한 노래의 끝에 대해 생각했다.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는 창백했고 내가 들어가자 뜨고 있던 눈을 다시 감았다. 안정적인 맥박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삐. 삐. 삐. 한발 내딛을수록 무거운 공기가 발을 감쌌다. 그때 나는 자살 시도를 하루 더 미루지 않은 것에 원망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나는 못다한 노래의 소절만 반복해서 불렀다. 엄마는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그게 좋아서 일부러 목에 힘을 주고 불렀다. 음에서 벗어난 소리들이 퍼져나갔다. 제발 좀 닥쳐. 갈라진 소리가 병실을 가득 메웠다. 엄마는 그때 처음으로 내게 화를 냈다. 그건 아빠를 통해 타고 들어간 마귀인게 확실했다. 경찰은 병실을 자주 들락거리며 늘 뭔가를 적었고 가만있는 내가 착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만있는 게 왜 착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돌림노래도 결국에는 끝이 났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점차 지겨워졌다. 입술은 습관적으로 가사를 읊었고 엄마가 뺨을 때렸다. 그때 들리던 이명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모든 걸 체념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엄마가 퇴원하던 날부터 더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그날을 겹겹이 묻어두었다.

*

엄마는 가위만 보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그게 듣기 싫어서 가위는 모두 치웠다. 학년이 바뀌어도 나는 쉽사리 자라지 않았다. 엄마는 퇴원 이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게 싫어서 엄마가 잠든 어느 날 허리춤에 오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잘랐다. 묘한 쾌감이 올라왔다. 다음날 엄마는 자신의 머리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밤마다 그 끝을 조금씩 잘라나갔다. 머리카락은 쉽게 끊어졌고 또 금방 자랐다. 성인이 되고 미용학원을 다녔다. 그곳에서 가위를 쥐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내 방법 중 옳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위에 끼워 넣은 손이 어색해지지 않을 무렵 각각 길이가 다른 내 머리카락의 끝을 다듬었다. 균형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 후 집에서 멀지 않은, 대로변에 위치한 미용실에 취업을 했다. 시장으로 둘러싸인 그곳에 독단적으로 백화점 건물이 들어서, 불규칙한 느낌을 풍기는 곳이었다. 그들은 내 이름이 촌스럽다는 이유로 써니라고 지어주었다. 혜선에서 써니. 스무살이 된 나에게 생긴 또다른 이름은 낯설었다. 미용실 사람들은 이름을 지어주고도 나를 써니라 부르지 않았다. ‘야, 신입, 거기’로 나를 불렀다. 나를 대신할 말들은 많았다. 나를 대신할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버티지 못하면 새로운 사람을 구하면 다였다. 나는 빠르게 수긍했다. 수습을 거쳐 마침내 정식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 내 이름이 불렸다. 
‘써니쌤, 예약하신 손님 오셨습니다.’ 몇 년 만에 이름을 불러준다는게 우스웠다.
그때 회색 가디건을 입은 남성이 들어왔다. 인상은 전체적으로 깔끔해보였고 눈 밑의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미용실 이곳저곳을 훑어봤다. 정식 디자이너가 되고나서 처음 맞는 손님이었다. 완벽해 보이는 인상에 절로 긴장이 되었다.
“원하시는 스타일 있으세요?”
“알아서 예쁘게 잘라주세요.”
알아서 할 줄은 알았지만 예쁘게 자르는 법은 몰랐다. 그는 내 눈을 빤히 보다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 시선에 가위가 자꾸 손에서 미끄러져 바리깡을 들었다.
“앞머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제 의견 묻지 말고 써니쌤이 알아서 잘라주세요.”
그가 내 명찰을 흘끗 보고는 말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가위를 들고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컷트보로 머리카락들이 떨어져 내렸다. 
“기장은 마음에 드세요?”
그는 고개를 돌려가며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그는 친절했지만 어딘가 어려웠다. 나는 그가 무어라 하기 전에 스폰지로 얼굴 곳곳에 묻은 머리카락을 털어냈다. 그리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써니쌤은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빛이 나요.”
머리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그가 건넨 말은 능숙하고 거리낌 없었다. 내 머리카락이 노란색이라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그의 입술에 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떼어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입김이 손에 닿았다. 뜨겁고 생생한 사람의 숨이었다. 순간 그에게 아무것도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나에게서 느끼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거울 속 노랗기만 한 머리가 빛이 나보이는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은현은 내 본래 이름에 대해 묻지 않았고 나도 굳이 꺼내지 않았다. 써니가 내 진짜 이름일 수는 없었지만 그는 나를 써니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했다. 밝고 따뜻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했다. 그게 정신적이고 성숙한 연애라 믿었다. 속을 꺼내놓지 않아도 되는 사랑. 함께하는 순간만을 추억했다. 우리는 그런 관계였다. 
그는 심리학을 공부했는데 나의 얼굴에 떠오르는 기분을 보고 그날 일들에 대해 맞췄다. 기분이 좋은 날은 염색 손님이 많았던 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날은 커트가 많았던 날. 사실 심리학과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너라서 아는 거야. 그는 시덥지 않은 말을 했고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그가 쓰다듬는 손길이 좋았다. 머리를 바꾼다고 내가 바뀔 수는 없었지만 노란 머리의 내가 본래의 나처럼 느껴졌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다른 사람처럼 새롭게 바꿔주는 거라고. 그때 나는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오프 날 외에는 따로 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대신 은현은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고는 했다. 몇번 만류했지만 밤에는 위험하다며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다고 했다. 더 거절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은현과 집에 가는 시간은 항상 짧게 느껴졌다. 우리는 늘 가로등 앞에서 헤어졌다. 그는 먼저 등을 돌리는 법이 없었고, 내게 먼저 가라고 했다. 그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 나는 사무치게 외로워져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 그를 확인하고는 했다. 가로등에서 집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에게 어둡고 오래된 집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늘 멀리서 헤어졌다. 마귀가 사는 우리 집은 더럽고 퀴퀴했다. 적어도 은현에게만큼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다. 

*

은현은 그날도 어김없이 가게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는 가끔 노래를 흥얼거렸다. 늘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날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내가 중창 대회에서 끝까지 부르지 못한 노래였다.
“너 그 노래 어떻게 알아?”
“그냥, 동요잖아. 어릴 때 가끔 들었지.”
그는 소리내서 입으로 불렀다. 작은 소리였지만 귓속을 가득 메웠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우리들 

“부르지마 그 노래.”
“왜? 가사가 마음에 안 들어?”
그 노래 속에서 내가 죽었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 그의 손을 놓은 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은현은 빠르게 붙잡았다.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지나치려 했다. 어떠한 얘기도 꺼낼 수 없었다. 그는 무작정 내 앞을 막고 사과했다.
“내가 노래 불러서 그래? 미안해. 안 부를게. 제발 가지마.”
신기했다. 내가 이기적인 순간이었으나 그가 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린다는 게 놀라웠다. 그동안 누구도 나에게 쉽게 미안해하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실수한 건 내가 아닌데도 수습이라는 이유로 사과를 해야했고, 고개 숙였었다. 무엇보다 엄마는 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는 미동 없는 나를 보더니 내 손을 붙들었다. 
“용서해주는거지? 가자.”
애교스럽게 나를 끌었다. 용서는 생각보다 쉬운 거였다. 그에 의해서 나는 그를 용서한 것이 되어버렸으니까. 그가 능숙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빠르게 화제를 돌리고 내 기분을 살폈다. 은현은 내 머리를 매만졌다.
“써니 머리 많이 길었네. 혹시 자를 거야?”
“왜?”
나는 괜히 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꼬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짧은 머리는 꼭 누구한테 차인 것 같잖아. 이번에는 계속 기르는 게 어때?”
“그래, 그러자. 너가 원하니까.”
그가 나를 안았다. 
“써니 부모님은 좋으시겠다. 너처럼 예쁘고 순종적인 딸 있어서.”
부모님은 좋을까, 내가 있어서. 아빠에게는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감옥에 들어간 이후로 한번도 본 적 없었다. 출소했을지, 살아있을지 알고 싶지 않았다.
“빨리 들어가.”
나는 그를 빠르게 보내고 대문 앞에 섰다. 마귀가 살고 있는 집. 밤이 되면 더 음침했다. 엄마는 불 꺼진 거실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있었다. 엄마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차려두지 않으면 밥도 먹지 않았고 치우지도 않았다.
“엄마는 내가 있어서 좋아?”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아니, 너는 나를 너무 닮았어.”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적어도 누구를 옥죄고 의지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고 방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의 일에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다. 한때, 엄마는 자기연민에 휩싸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비극적으로 태어나서, 아빠를 만나고 또 나를 낳고 그것이 엄마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

한참동안 바깥을 서성이던 저녁 아빠는 영영 사라졌다. 집안은 난장판이었고 엄마는 피를 흘린 채 누워 있었다. 경찰이 상황을 적고 있었고 내게 딸이냐고 물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뛰쳐 나갔다. 해방이었다. 술을 사오라는 심부름도, 리모콘으로 맞을 일도 더는 없었다. 
어느날 누군가 집 문을 두드렸고, 나는 고개만 내민 채 바깥을 살폈다. 친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다짜고짜 엄마가 어딨냐며 욕을 했다. 눈빛에 분노와 독기가 가득했다. 아빠에게서 보았던 눈빛 같았다. 집에 없다고 해야할 것만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 “눈빛은 꼭 지 애미년 같은 게 어른을 속여? 있는 거 다 알아.” 할머니는 다 아는 것처럼 얘기했다. 나는 빠르게 문을 당겼고, 할머니는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큰 소란에 동네 사람들은 수군대며 우리를 구경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말리지 않았다. 두피가 너무 아파서 제발 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네 애미년 때문에 내 아들이 감옥 간 거야. 집에 있는 거 다 알아!”
할머니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는 아빠를 왜 낳은 거지. 뒤를 돌아본 순간 엄마는 온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며 나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왜 어린 나에게 기댔던 걸까. 나는 문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문틈 사이 낀 할머니의 손가락이 꿈틀댔다. 할머니는 소리를 질렀다. 듣기 싫고 고통스러웠다.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소리가 커질수록 할머니 손아귀의 힘은 약해졌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열어. 열어! 내가 널 가만 둘 것 같아? 애비 빨리 빼낼 거야.”
우리는 공포의 감정 속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철저하게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할머니는 그 이후 자주 찾아왔다. 집앞에 몰래 숨어있기도 했고, 하교하는 나를 붙잡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우리를 끌어내기 위해 안달 난 사람 같았다. 온갖 저주를 쏟아내고도 풀리지 않은 듯했다. 계속되는 소란에 동네 사람들도 합세해 우리를 끌어내려 했다. 시끄럽다고, 우리에게 적당히 좀 하라고 했다. 우리는 피해자인데도 가해자 같았다. 사실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우리는 동네 사람들의 안식을 앗아간 가해자였고 할머니에게 우리는 아빠를 없애 버린 가해자였다. 이후 도망치듯 이사를 갔고 그날의 일에 대해 완전히 입을 닫았다. 

*

알람이 울렸고 나는 눈을 떴다. 이제는 깨려고 찬물로 세수를 했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예약 손님은 지각을 했고 마감까지 일했다. 
미용실 문을 잠그고 나오는데, 은현이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같으면 웃었을텐데 그를 보면 자꾸 그날이 떠올랐다.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으나 우산을 써야 할 정도였다.  
“우산도 안 쓰고 뭐하고 있어. 비도 많이 오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 비 맞으면서 애인이랑 걸어보고 싶었어.”
순간 우산을 펼쳐도 될지 고민했다. 비를 맞는 건 꺼림칙한 일이었다. 나는 우산을 펼치고 그를 봤다.
“감기 걸려. 같이 쓰자.”
그는 거듭 거절했다. 그는 비를 맞고 나는 우산을 쓰며 길을 걸었다. 그가 원하는 장면이 이런 것이었을까.
“너는 이게 좋아?”
그에게 물었지만 나를 향한 물음이었다. 서로에게 맞춰진다는 게 뭐가 좋은 일인걸까. 그는 나의 행동에 대해 빠르게 경계했다.
“오늘 안 좋은 일 있었어? 아니면 혹시 그날이야? 조금 예민하네.”
그는 나를 감정적인 사람처럼 대했다. 그는 나를 배려하는 척 ‘예민하다’고 정의했다. 내가 그렇다 느끼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그렇게 느끼면 난 그런 사람이었다.
“그게 할 소리야? 너 가.”
그에게 나는 순간의 감정에 휩싸인 걸로 치부될 것이다. 그가 미안하다며 나를 쫓아왔다.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움직임처럼 보였다. 
“냅둬. 너 말대로 예민하니까 그냥 가.”
그가 손목을 붙잡았다. 손에서 우산이 나가 떨어졌다. 우산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는데 그가 손목에 힘을 주었다.
“나랑 얘기 좀 하자. 들어봐.”
“놔. 오늘은 좀 가.”
“써니 너 왜 그렇게 꼬였어?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
좀 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낯선 느낌에 순간 겁이 났다.
“미안해. 그냥 다음에 얘기하자.”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내 손목에서 떼어냈다. 나는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고 싶었다. 불 꺼진 집이 보이자 안심이 되었다. 꿉꿉한 공기가 볼을 적셨다. 어둠이 눈에 익자 어질러진 집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옷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이 깜빡이고 있었고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자주색 원피스를 입은 채 소파에 누워있었다. 
“엄마,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내 옷을 왜 입어?”
나는 애써 흥분을 감추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원피스 여러 군데에 실밥이 터져 있었다.
“뭐야! 벗어. 입지 말라고!”
엄마의 팔을 잡아 당겼다. 엄마는 온몸에 힘을 준 채 버텼다. 벗어, 이걸 엄마가 뭔데 입어. 엄마가 꿈쩍도 하지 않자 원피스를 아래서부터 벗겨내려고 치마를 들춰냈다. 엄마는 나를 세게 밀쳐냈고 순간 몸이 튕겨져 나가 선반에 팔목을 세게 긁혔다. 까진 살갗에 피가 차올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상처를 꾹 눌렀다. 엄마는 피를 보자 경련을 일으키듯 온몸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 귀를 막아도 더 크게 들렸다. 가장 듣기 싫은 소리. 닥쳐, 닥쳐.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소리를 질러. 그만 좀 해 제발. 나는 방으로 들어가 서랍을 뒤졌다. 숨겨놓은 가위가 있을 텐데,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집었다. 손이 자꾸만 떨려서 가위를 여러 번 놓쳤다. 나는 거실로 달려가 곧장 엄마의 옷을 자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날 밀쳐내려 애썼다. 사각사각. 옷을 잘라내는 소리와 엄마의 비명이 귓속을 꽉 메웠다. 닥쳐, 제발 좀 닥쳐. 내 인생 갉아먹지 좀 마. 엄마의 몸부림에 손 여러 군데가 찔렸다. 옷을 잡아당기자 몸이 세게 튕겨져 나갔고 내 손에 남은 건 작은 천 쪼가리 뿐이었다. 손은 흥건했고 엄마의 피인지 내 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마귀의 피를 씻어냈다. 조금이라도 옮을 까봐 손가락 마디마디를 철수세미로 세게 밀어냈다. 흐르는 물은 하수구를 통해 빠르게 빠져나갔다. 나는 가위를 물로 씻어내고 옷속에다 감춰 넣었다. 엄마는 경련했다.
나는 도망치듯 집밖을 나섰다. 어두웠다. 가로등 불은 곧 나갈 것처럼 위태로웠고 다리는 힘이 풀릴 것 같았다. 한참을 걷다 뛰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나는 가로등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벌레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밤을 샜다. 불빛은 온갖 것들로 북적댔다.
사람들이 하나 둘 집 밖으로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흐렸다. 해가 뜨지 않은 모양이었다. 군중 속 그들에게 밀리고 밀려 미용실 앞에 섰다.투명한 문이 열렸다. 원장은 나를 보자마자 기겁을 했다. 그녀는 내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내 앞을 막아섰다. 
“꼴이 왜이래?”
“아, 일이 좀 있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이러고 출근을 하면 어떡해.”
그녀는 나를 재빠르게 훑었다.
“그 손을 가지고 어떻게 일해. 손님들 보기 안 좋아. 가위질이 미숙해서 다친 것 같잖아. 절대 안돼.”
“장갑 껴서 가릴 게요. ”
“그래도 안돼 써니씨, 대체 어쩌다 그런 거야?”
말 끝에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냐는 말이 숨겨져 있었다. 집에서 마귀를 잡았어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누구도 믿지 않을 존재에 대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사고가 있었어요.”
“써니씨, 당분간 나오지 마.”
원장은 차갑게 쏘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 더 일을 해야할 것이고 나는 피해를 준게 분명했다. 그들의 입을 타고 내 이름이 얼마나 저주스럽게 불리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출근하겠습니다.”
나는 상처난 손을 감춘 채 미용실을 빠져나왔다. 당장 내일이라도 어떻게든 가려서 출근해야 했다. 서 있을 자리를 모두 잃을 수는 없었다. 병원에 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혹시라도 왜 다쳤냐고 물어볼까봐 가지 않았다. 마귀는 죽었을까. 집은 어제와 같아 보였다. 어둡고 절망적이었다. 이곳에 다시 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때 은현이 우리 집 문을 열고 나왔다.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집에도 없고.” 
그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은현이 미소 지었다. 
“너가 왜 우리 집에서 나와?”
“집에 누구 누워 있던데. 누구야? 어머니신가? 아직 제대로 인사를 못드렸네.”
그는 태연했다. 그는 모든 상황을 알고 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과 의도를 읽어내려 애썼다.
“내가 너 오지 말랬잖아. 설마 나 미행해서 우리집 찾은 거야? 너 신고할 거야.”
그는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 신고,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써니, 애인사이에 무슨 신고야. 나는 너 걱정돼서 찾아간 거 뿐인데.”
모든 것이 그의 덕인 것처럼 굴었다. 모든 게 날 위해서.
“오지마. 그만 와. 너 신고할 거야.” 목소리가 자꾸 떨렸다.
“신고? 미친 진짜. 왜 자꾸 신고를 입에 올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가 무어라 말을 하려 했고 나는 다정하지 않은 그가 무서워서 도망쳤다. 나를 옥죄는 것들 밖으로, 누르는 것들 밖으로 도망쳤다.
“씨발 너 거기 안 서? 나 다 봤어.”
그는 나를 빠르게 뒤쫓아왔다. 그는 무엇을 본 거지, 엄마가 한심하게 집에 누워 있는 모습? 마귀의 살해 현장? 그는 득달같이 나의 약점을 찾아내 나를 가둬내려 하고 있었다. 제발 나 좀 냅둬.
뒤를 도는 순간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그가 내 머리채를 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의 간극도 허락되지 않았다. 두피에서부터 강한 고통이 느껴졌다.
“놔, 제발 날 놔.”
“넌 좀 잘해줬더니 이렇게 사람을 배신해? 이래서 잘해주면 안돼.” 
그는 내 머리카락을 세게 당겼다. 겨우 빠져나왔는데 그에게 다시 잡힐 수 없었다. 아빠에게서도, 할머니에게서도, 그리고 엄마에게서도 겨우 벗어났는데 또다시 붙잡힐 수 없었다. 그때 가위의 끝이 강하게 느껴졌다. 순간 손끝이 떨렸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다정했던 그의 모습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제발. 제발 한번에 모든 걸 끊어낼 수 있기를. 나는 가위의 손잡이에 손가락을 끼워넣었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내 머리카락을 잘랐고 한순간에 우리는 끊어졌다. 두피에서부터 선명하게 느껴지던 고통에서 풀려났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야 이혜선, 너 내가 다 봤다고. 내가 모를 줄 알아? 절대 가만 안 둬. ”
그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그에게 잠재된 것이 그를 덮쳤다. 그 안의 마귀가 그를 뚫고 나온 순간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묵인했던 고통의 순간들이 물밀듯이 덮쳤다. 빠르고 강렬했다. 숨이 차오르는 것 같아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잘려나간 머리카락 부근을 만졌다. 상처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언제쯤 또 무뎌질 수 있을까. 나는 얼마간 아플 것이다. 다 아프고 나면 예전과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빗속을 다시 걸었다. 해가 뜰 날이 머지 않았다.


소설 당선 소감

내 삶을 쓰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지해주신 부모님, 가족들, 세상 모든 이야기로 밤을 함께 지새운 친구들, 내 문장이 자라도록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신 선생님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순간과 대화 속에서 문장이 탄생했습니다. 문장에 힘이 있다는 게 몇 번이고 나를 무섭게 하지만 글을 쓸 수 있어서 그럭저럭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을 쓰는 데에 늘 확신이 없었지만 이번 결과를 통해서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은 많지만 내가 쓴 소설처럼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른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심사평

올해 동덕문화상 ‘소설 부문’ 응모작은 작년보다 편수가 줄어들었고,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도 다소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중 비교적 ‘소설의 형태’를 갖춘 작품 세 편에 대해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티브이」는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온 대학생 ‘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모녀간 갈등이 주된 모티프로 작용하는 이 소설은 성장기에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상처와 결핍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주인공이 모성의 대체물로써 ‘티브이’에 집착하는 모습을 서술한다. 하물며 ‘내’가 브라운관 속에 들어가 버리는 모태 회귀의 환상성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모녀간 갈등’이라는 문제를 던져놓고 퇴행적 장면으로 급히 마무리하면서 긴장이 와해되고 서사의 의미가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보편의 여름」은 할머니의 오빠(진 외종조부) ‘정성찬 씨’의 이야기를 다루는 인물전(傳)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1950년에 홀연히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살다 철거 직전의 건물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의 일본행 자체가 미스터리하거니와 죽음 또한 그러하다. 이야기는 ‘정성찬 씨’의 유족이 한국에 찾아오면서 시작되는데, ‘정성찬 씨’의 손녀인 ‘해미’와 ‘내’가 주고받는 대화가 의미심장한 대목을 구성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문득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이 오버랩되기도 하는 이 소설은 독특한 감수성과 매혹적인 뉘앙스를 제공한다. 작가는 삶을 짓누르는 ‘쓸쓸함’의 세계, 혹은 삶과 죽음의 동반(시)성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독자에게 가닿기에는 주제가 다소 추상적이고 서사의 짜임새가 헐거워 비록 당선작이 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쓰리라는 기대를 품게 하는 작품이다. 

한편 「가위」 는 무엇보다도 메시지가 뚜렷한 소설이다. 아버지의 폭력(‘마귀’)으로 삶이 와해된 어머니와 그들의 딸인 ‘나’의 이야기는 근래 여성 서사의 경향을 그대로 따르기에 언뜻 기시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강렬한 이미지로 왜곡된 남성성 속에 잠복해 있는 폭력의 실체를 민낯의 형태로 드러내 보이며 마지막 장면에서 그만 독자를 압도한다. 간혹 읽기를 방해하는 오문의 등장, 인과의 확보가 부족해 아무래도 허술하다고 생각되는 대목 등이 마음에 걸려 「보편의 여름」과 거듭 견주며 고민하다, 선자는 결국 「가위」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윤대녕(소설가·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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