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에 위치한 밥퍼나눔운동본부의 모습이다  

‘식사하셨어요?’ 내 옆의 누군가와 함께 먹는 따뜻한 끼니는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정말 식음의 여부를 물어보든 오랜만에 만난 이에게 안부를 묻든, 사람들은 밥을 먹었는지를 항상 먼저 묻곤 한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있어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식사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각자의 일에 치인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안부를 제대로 묻고 있을까.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무연고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2,549명으로 집계됐다. 관계는 단절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밥 먹었냐’라는 한 마디조차 건네지 못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한국인에게 밥은 안부를 대체할 정도로 중요한 수단이 됐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하루 한 끼를 간신히 먹기 위해 무료 급식소를 찾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기자도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하고자 청량리역 인근에 있는 밥퍼나눔운동본부(이하 밥퍼)를 찾았다. 다일공동체 소속 기관인 밥퍼는 노숙인, 독거노인, 무의탁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로 점심 한 끼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은 외로움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사를 하러 오는 노인들로 늘 북적인다.
 
누군가를 위한 식사 준비의 즐거움
  지난달 26일 오전 9시, 바람은 찼지만 상쾌한 날씨 덕에 봉사활동과 취재를 겸할 계획이었던 기자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밥퍼에 도착했다. 2층 사무실에 올라가 먼저 도착해 있는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소중하다”라고 말문을 열며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가 교육을 시작했다. 함께할 자원봉사자들을 소개한 후 인사를 나누고 밥퍼의 설립 취지와 오늘 할 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진행되는 봉사는 총 3부로 나뉘었다. 오늘 식사를 할 인원은 약 700명 정도였다. 곧이어 역할 분담이 시작됐고 기자는 1부에서 양파와 대파를 다듬는 작업에 배정받았다.
 
  주방으로 내려가 앞치마와 위생 모자, 장화를 착용한 후 정해진 자리로 가서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학생, 이거 물고 하면 하나도 안 매워.” 양파와 대파가 너무 매워 다듬으면서 연신 눈물을 흘리는 기자에게 옆에 앉은 할머니께서 하얀 양파 껍질 조각을 내밀었다. 손질을 마친 후 시간이 남아 옆자리의 취나물 다듬기에 합류했다. 취나물 다듬기까지 완료하니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오전 11시에 배식이 시작되기 전, 2층으로 올라가 휴식을 취하며 옆자리에 앉은 봉사자 A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몰라도 저기 어르신들의 모습이 나중에 내 미래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는 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담담히 밝혔다. 이런 봉사가 힘들지는 않을까. “한 게 별로 없는데. 오늘 한 번, 그것도 몇 시간 한 거로 힘들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어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어르신이 드실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어르신들께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끼니예요”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쉬는 시간이 끝났고 2부 배식을 준비해야 했다. 아침에 드문드문 비어 있던 의자들은 순식간에 북적북적하게 꽉 찼고 배식을 기다리는 줄이 밖에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추운 날씨에 이곳까지 식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반찬을 넉넉히 주고 싶어 멸치볶음을 한 움큼 쥐어 식판에 담았다. 그러자 옆에서 흐뭇한 잔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많이 담으면 반찬 금방 떨어져. 많이 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양 조절은 해야지.” 머쓱한 미소를 보이며 멸치볶음을 반 움큼 덜어냈다. 이윽고 눈에 띈 건 식판 위 꽤 많은 양의 밥이었다. 노제완 간사는 ‘그들에게 이 식사는 하루의 처음이자 마지막 끼니기에 한 번 식사할 때 최대한 많이 드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깐이나마 밥이 많다고 생각했던 모습이 부끄러워 볼이 붉어졌다.
 
  처음에는 배식판에 반찬을 담는 작업이 재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자세로 있는 팔과 다리가 저려오고, 열어놓은 문을 타고 들어온 찬바람 탓에 몸이 으슬으슬 추워졌다. “학생 힘들지? 누룽지 맛있는데 이거 먹으면서 해” 힘들어하는 기자의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옆자리 봉사자 할머니가 인자한 미소와 함께 큼지막한 누룽지 한 조각을 내밀었다. 누룽지에 허기졌던 배가 잠시나마 진정됐다.
 
  배식 중간 안타까운 장면이 눈에 보이기도 했다. 이곳으로 식사하러 오는 건 죄를 짓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식판을 들고 들어오는 어르신 대다수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채로 밥을 드시는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훈훈한 모습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며 연신 내뱉는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한 마디에 내 마음마저 따뜻해졌다. 어르신들의 식사가 끝난 뒤, 마무리 뒷정리를 하고 3부에는 봉사자들의 점심 식사가 이어졌다. 습기 가득한 주방 속에서 고된 하루였지만 밥 먹을 생각에 신이 났다. 진수성찬도 아니고 특별할 것 없는 반찬이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먹는 밥이라 그런지 그 어떤 밥보다 달콤했다. 먹은 식기를 설거지하고 청소한 후 단체 사진을 찍은 다음 봉사 참여 소감을 나누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모든 식사가 종료된 후 뒷정리를 하는 모습이다
 
우리 곁의 사람들로 살만한 사회
  겉옷을 챙기며 대각선에 앉은 B 씨가 보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열심히 봉사하던 분이었다.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오늘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건네며 봉사가 어땠는지 물었다. 밥퍼 봉사가 처음이라는 그녀는 “어르신들이 다들 연세가 많고 인생을 쓸쓸히 마무리하는 게 되게 안타깝잖아요.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그분들을 위해 어떻게 따뜻한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라며 예쁜 마음을 전했다.
 
  밥퍼를 나오기 전, 오늘 하루 봉사자들을 이끌어준 노제완 간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밥퍼 운영에 관해 물었다. 그는 어르신들께서 식사를 맛있게 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있다고 했다. 사무실 근처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그때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하루 잘 버텼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뿌듯하다며 웃음 짓기도 했다. 이어서 밥퍼는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모인 곳이기에 이 사회의 현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전했다. 누구보다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기자의 칭찬에, 직접 밥퍼에 찾아와서 봉사하고 인터뷰하는 기자의 모습이 더 멋있다며 콜라 한 캔을 건넸다.
 
  특별한 기술 없이도 건강한 몸과 마음가짐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하루에 가장 소중한 일과가 될 수도 있다. 오늘 몇 시간 동안 내가 흘린 땀이 그들에게 맛있는 한 끼가 돼 하루를 살아갈 힘을 건네줬기를 바란다. 많은 전문가는 고독사의 가장 큰 원인을 외로움과 고립으로 꼽는다. 이는 혼자 외롭게 여생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과 직결된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가까운 이웃이 건네는 인사 한마디와 조그만 관심일지도 모른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 내가 가진 온기를 주변의 이웃과 나눠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에게 한 줄기의 고마움이 되는 건 거창한 일만이 아니다.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자. 모두의 삶에는 각자 다양한 사연이 있듯이 식사를 하러 오는 어르신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안쓰러운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날씨가 춥죠.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따스한 인사를 건네면 모두가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정보운 기자 bounj07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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