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지나고 나서야 그 속도를 체감하게 된다”라는 고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새싹이 돋을 무렵 부푼 기대를 안고 학보사에 들어온 어리바리한 수습기자는 어느새 편집장이 돼 여덟 번의 계절을 몸소 느끼며 기자 생활을 마무리합니다.

수습기자와 정기자로서의 1년과 편집장으로서의 1년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기자들과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작년 목표는 ‘학보사의 안정화’ 였습니다. 제가 수습기자로 들어오기 전 기자는 두 명뿐이었고, 저와 함께 여러 명의 학우가 수습기자로 들어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이유로 학보사를 떠났습니다. 제 위 기수는 전원 퇴사했고 여름방학 때는 세 명의 기자가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폐간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직후였기 때문에 이 안정적인 흐름이 존속 돼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기자로서의 직책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편집장이라는 직책을 얻었을 때 학보사에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위기일발의 작년이 지나고 안정을 되찾은 신문은 안일해지기 쉬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키워드를 ‘도전’으로 잡고 단단히 내린 뿌리 위에 혁신을 일으키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학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장 먼저 ‘사회면’을 ‘사회·여성면’으로 개편했습니다. 페미니즘이 화두에 오르면서 그동안 뒷전이었던 여성 인권과 관련한 담론이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여성대학의 편집장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저는 우리의 목소리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지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페미니즘이 화두에 오르면서 핑크택스, 임금 차별과 같이 여성 인권과 관련해 수면 위로 떠오른 주제들을 신문에 담았습니다. 여성복과 관련한 불편한 진실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사회에서 외면받는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월곡 시내를 돌아다니는 등 르포 기사도 꾸준히 썼습니다.

학내 사안을 취재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난여름, 화제의 중심이었던 평창동 주택을 직접 다녀오고 홍보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학우들에게 제공했습니다. 평소 불만이 잦았던 교내 홍보 실태, 스쿨버스, 흡연구역 등 원초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소통’의 문제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학보만의 학보’가 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인 학생에게 언론을 어렵지 않고 친근한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보 인스타그램을 개설해 다양한 이야기를 싣기로 했습니다. 재미있는 문구를 사용하며 학우들의 흥미를 돋우기도 하고 최근에는 영화 홍보사와 협업해 시사회 티켓을 주는 이벤트를 여러 차례 실시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학보 커뮤니티는 현재 학내 사안과 관련한 문제를 제보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편집장의 주관을 기고하는 꼭지인 ‘편집장적 논평’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기자라는 직책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재와 기사 작성에서 늘 ‘을’ 취급을 받곤 하니까요. 학생 기자 앞에 놓인 벽은 가끔 한없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고달픔이 ‘영향력 있는 교내 언론’으로 만들 것이라는 일념 하나로 졸린 눈과 피곤한 몸을 붙잡고 달려오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보가 최고의 학보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학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작년보다 교내 커뮤니티에서 학보 언급 양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학내에 문제가 발생하면 학우들은 학보를 찾고, 해결방안으로 학보 제보를 내놓습니다. 학보가 읽히고 있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때마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지금보다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문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결국, 기자 생활을 돌이켜 보면, ‘연대’라는 말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공통분모인 여성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그리고 학생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신문’이라는 역사에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입장에 연대를 표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신문은 불균형한 사회에 ‘연대’라는 수단을 통해 균형적인 시각을 덧대는 수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흰 네모 칸에서 주관대로 펜을 휘두를 수 있는 날이 또 올까요. 다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학 생활의 전부였던 학보사는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할 때도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낮았던 자존감을 회복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자신감도 얻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힘이 돼줬던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우선 사랑하는 가족과 여태천 주간교수님, 김종희, 이지우 조교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김규희 선배, 김현지 기자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덧붙여 정보운, 정채원, 하주언 후배 기자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희, 도헌, 예은, 희주 기자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여성과 학생이라는 위치의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행복합시다. 사회에서도 늘 손잡으며 살아요,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임나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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