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두들기며 써 내려가는 글은 영 내 취향이 아니다. 빠르게 쓸 수는 있어도 글쓴이의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흰 종이에 펜촉을 꾹꾹 누르며 생각을 적어가는 일기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냉큼 이 꼭지를 맡겠다고 나섰다.

일기의 완성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하루를 나열하듯 쓰기보다 일상 속 감정을 글로 최대한 표현해내려고 노력했다.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생각의 조각을 엮어 문장으로 만들다 보면 무의식의 ‘나’를 구체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흐름을 정리해 풀어나가는 연습을 억지로라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이 늘었다. 결국 일기 쓰기는 자아 탐구와 직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다짐은 쉬워도 실천이 어렵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쩌다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일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글감이 없다며 마음대로 건너뛰기도 했다. 사유를 미루다 보니 생각이 귀찮아졌다. 감정은 단순해지고 행동은 일차원적으로 변했다. 그러다 문득, 진짜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두려움에 휩싸여 다시 펜을 집어 들었고 천천히 생각을 담아냈다.

생각이 존재의 근거가 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떠올려본다면, 일기는 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물론 글쓰기가 순간적인 기분을 항구한 활자로 표현하는 행위기 때문에 지속이 어려운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잠깐의 안일함을 견뎌내고 무엇이라도 몇 자 적어본다면 ‘나’를 잃지 않고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임나은 기자 dong77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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