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크리틱스 초이스 댄스 페스티벌 2019’에서 최우수 안무가로 선정돼 안무가로서 자질을 인정받은 무용과 출신 동문이 있다. 지금처럼 계속 춤추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무용수 겸 안무가 이지현(무용 14년 졸)(30) 동문. 한국무용계의 여러 방면에서 활약 중인 그를 만나 가치관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현입니다. 동덕여자대학교(이하 동덕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 및 박사를 수료했어요. 현재 한국무용 전공 윤수미 교수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윤수미 무용단’의 단원으로, 동덕여대 출신 동문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안무가는 어떤 직업인가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안무가는 안무작을 창작하는 사람이에요. 본인이 사유하고 있는 것을 작품에 담아내는 예술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저는 작품화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국무용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안무가라는 꿈을 꾸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안무가가 돼야겠다고 다짐한 결정적인 계기는 없었습니다. 다섯 살 무렵부터 단순히 춤이 좋아서 무용을 시작했고, 그래서 무용과로 진학했죠. 한국무용 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된 특별한 이유도 없었어요. 단지 어렸을 때 무용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한국무용 전공이셔서 자연스럽게 이쪽에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특히 동덕여대 무용과를 다니고 나선 한국무용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됐죠. 우리 학교 무용과 커리큘럼에는 안무작을 창작하고, 그 결과물을 무대에 올려 보여주는 과정이 매년 있는데요. 이 과정 덕분에 졸업할 때까지 창작 작업을 꾸준히 습득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부 때보다 더 깊이 있는 안무 이론을 배웠고, 동시에 한국무용에 대한 시야도 넓어졌던 것 같아요.

안무가와 무용수 활동은 어떤 차이를 가지나요
  무용수는 안무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작품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작품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하죠. 반면, 안무가는 의상, 음악, 소품, 무대 연출까지 다 고민해야 하고, 무용수에게 개별적인 피드백도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안무가는 연출가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안무 외에도 조명이 켜지고 꺼지는 부분이나 소품이 이동하는 경로 등을 모두 총괄하고, 무대 연출 감독님이나 조명 감독님과 소통하면서 작품을 만드니까요.

안무가로서, 무용수와 어떤 식으로 소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무대의 규모가 커질수록 준비 기간이 길어지곤 하는데요. 중요한 작품이 예정됐을 때는 거의 반년 정도 연습에 몰두합니다. 그러면 작품에 관한 얘기는 무대를 함께 준비하면서 충분히 나누게 되죠. 그런데 그 외의 것들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안무가로서 또 무용수로서의 고민을 나누면서 사이가 더 돈독해지더라고요. 지금 무용단 단원들은 거의 9~10년째 같이 활동하고 있는데, 명절이 아니면 본가에 잘 가지 않다 보니 가족보다 공유하는 시간이 많아요. 매일 마주치고, 항상 함께 연습하면서 땀 흘리죠. 그러다 보니 대화도 많이 하게 되고, 그 시간을 거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소통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협업 관계가 충분히 잘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무용수로 활동하실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경험이 있다면요
  대학교 3학년 때, 동기들과 함께 <우미>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공연 리허설 당시, 윤수미 교수님께서 저에게 “지현아, 자유롭게 움직여봐. 자유롭게”라는 말을 해주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엔 교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죠. 정해진 동작이 있는데, 어떻게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어요. 심지어 즉흥적인 안무 장면도 무대 위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합을 약간 맞춘 뒤에 무대에 올리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나이가 돼서 보니, 그 자유로움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교수님이 바라셨던 것은 ‘네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무대 위에서 너의 능력을 200% 발휘해보라는 것’이었던 거죠. 이 장면은 아직도 제 마음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안무가님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흉금-앞가슴의 옷깃>이 제일 애착이 가요. ‘처음’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붙은 작품이었거든요.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인 창작지원 사업이자, 최초예술지원인 사업 공모전에 선정된 저의 첫 개인 공연이었습니다. 게다가, ‘윤수미 무용단’으로 함께 활동했던 선배들이 처음으로 제 작품의 무용수로 뛰어준 무대이기도 하죠. 처음 해보는 것이 대부분이라 부족하거나 모르는 부분도 많았는데,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어요.

<흉금-앞가슴의 옷깃>은 어떤 작품인가요
  3층, 1층, 지하 1층 순서로 관객이 이동하며 관람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에요. 여기엔 각각 독립된 작품을 서로 연결해 하나의 테마로 만들어내는 옴니버스 형식이 활용됐죠. 그래서 층마다 다른 작품의 내용으로 구성했어요. 3층은 죽음, 지하는 과거, 1층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죠. 다방면에 관객석이 있도록 의도적으로 연출한 만큼, 보는 면에 따라 해석이 약간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관객이 공연에 입장할 때도 무용수들이 서 있는 1층 무대를 통해 들어올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던 저의 바람을 실현한 공연이었죠.

안무작을 창작하실 때 안무가님만의 철학이나 원동력이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어떤 철학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돌이켜보니 제 작품은 항상 내면으로부터 시작됐더라고요. 그래서 나만의 가치관을 작품을 통해 확립해 나가는 게 제 철학입니다. 원동력이라고 하면 고민, 외로움, 노력, 믿음, 이 네 가지인 것 같아요. 고민이 있어야 좋은 성과가 나오고, 외로워야 다양한 감정이 나오고, 노력해야만 안무에 익숙해지고, 마지막으로 무용수를 믿어야 좋은 공연이 되더라고요.

안무가를 꿈꾸는 동덕여대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많은 걸 경험해보고,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신과 관련된 사소한 것까지 예민하게 살펴봐야 좋은 소재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안무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왔어도, 졸업하면 전공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경우도 많아요. 설령 원래 가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더라도, 이것도 저는 용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꼭 무용으로 응원한다기보다는 용기를 주고 싶고, 그것이 어떤 용기든 응원하고 싶습니다.
 
노희주 기자 nnwrigg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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