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n번방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텔레그램 내의 거대한 성 착취 카르텔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곳은 n번방부터 리벤지 포르노, 불법 촬영물까지 최대 1만여 개의 성 착취 영상물이 유통된 일종의 디지털 성범죄 창구였다. 채팅방 속에서 상품화된 피해자의 영상은 디지털 화폐로 거래됐으며, 이는 가해자 집단의 막대한 이익으로 이어져 성 착취 카르텔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렇듯 그들만의 리그가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수사가 갖는 본질적인 한계 때문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엔 디지털 성범죄를 소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을뿐더러, n차 피해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또한 미비하다. 실제로 성범죄 영상물을 신고하더라도, 정부는 해당 사이트에 대해 접속 차단 조치만 내릴 뿐이다. 여기엔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는 플랫폼의 대부분이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일조했다. 텔레그램과 같이 국외에 서버를 둔 플랫폼의 경우, 보안성이 높아 국내 수사로는 정확한 이용자 추적이나 단속이 불가능한 탓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디지털 성범죄의 책임이 피해자에게도 있다는 왜곡된 시선을 보낸다. 그들은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며 본질을 흐리고, n번방 속 영상을 자의로 촬영한 청소년에게 맹목적인 비난을 한다. 허나 이들이 놓친 사실은 그 영상이 유포되는 과정엔 합의나 동의 따위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중심엔 경찰 사칭, 해킹, 거짓 알바 홍보 등 치밀한 수법과 정서적인 폭력 ‘그루밍’ 그리고 가해자의 지속적인 협박이 있었다. 따라서 성을 착취하려 한 가해자와 이를 용인하고 가능케 한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문제의 핵심은 여성을 사람이 아닌 재화로 취급하는 ‘강간 문화’에 있다. 이는 성 착취 영상물을 향해 몰려드는 수요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뫼비우스 띠처럼 재생산될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양형 기준 설립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해야 할 것은 물론, 성 착취 카르텔에 가담하는 이들을 검거하기 위한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제는 이 질긴 뫼비우스의 띠를 잘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n번째 피해자 양산을 근절할 때다.
 
노희주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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