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공부에, 학보사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기자가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던 건 해외봉사활동 때문이었다. 우리학교가 지원하는 해외봉사를 신청하게 된 것은 봉사라는 단어 앞에 붙어있는 ‘해외’라는 말 때문이었다. 여권도 없던 기자에게 해외라는 단어는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쓰게 했다. 솔직히 말해서 봉사활동보다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일정 금액을 제외하고 개인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65∼85만 원 정도였다. 러시아, 태국, 중국, 필리핀, 몽골 등 다양한 나라 중에서 기자가 신청한 국가는 필리핀, 그중에서도 마닐라 공항에서 다시 한 시간을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카가얀 데 오로(Cagayan de Oro)라는 도시였다.
   봉사 기간 동안 기자가 주요하게 맡은 역할은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초점이 나가거나 흔들려서 지운 사진들까지 합하면 평균적으로 하루에 270장, 이십 일 동안 거의 5,500장 가까이 사진을 찍었다. 도착하자마자 교육할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한글이름을 지어 이름표를 만들어 주는 일을 맡았다. 인사도 하기 전에 선생님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의 사진부터 찍었다. 아이들의 눈에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가득했다. 더운 날씨에 아이들을 달래가며 사진을 찍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는 아이, 아파서 오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떠나기 전날이 돼서야 모든 아이들에게 이름표를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처음 봉사활동을 신청했을 때 어떤 마음으로 봉사를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가기 전 해외 봉사를 다녀온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이유로 해외 봉사활동을 갔었냐고 물어보았다. 대부분이 경험을 위해 혹은 ‘이력서의 한줄’을 갖기 위해 간다고 답했다. 해외라는 말 때문에 떠난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서 기자가 얻은 것 중 하나는 팀원을 배려하는 방법이었다. 남의 의견보다 내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자는 팀원들과 직접 부딪치고 대화하면서 다른 의견도 수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남들과는 다른, 봉사인증서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마혜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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