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연기하는 마임(Mime)공연에서 연기자는 말이 없다.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는 관객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뿐이다. 한국에서 마임은 이십여 년 전만 해도 비주류 예술로 평가받았다.
비주류 예술로 여겨지던 마임은 마임축제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 한국마임페스티벌을 시작으로 현재는 춘천마임축제, 청소년몸짓대회, 대전 청소년마임페스티벌, 한국마임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89년부터 춘천마임축제를 이끌고 있는 예술 감독이자 마임이스트인 유진규 씨를 만나보았다.


수의학과 출신의 마임이스트
   그는 어렸을 적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다. 동물들과의 삶을 꿈꿨던 그는 건국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건국대학교의 축산대학이 유망했을 때라 학교 측에서 지원을 많이 해줬어요. 지방에서 올라온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았죠. 고등학교 때는 미션스쿨이라 굉장히 열린 교육을 받았거든요.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제가 생각한 대학의 모습과 좀 달랐어요. 자신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더라고요”
   학기 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그는 우연히 게시판에 붙은 ‘연극반 모집’이라는 게시물을 본 후 연극반에 지원했다. 그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연극반에서만 놀았어요. 그러다 군대를 갔다 와서 복학해야 될 때 극단에 들어가서 연극을 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이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유진규 씨는 “예술을 하면 경제적으로 어렵잖아요. 퇴계로에 보면 동물병원들이 많아요. 극단을 가기 위해 거기를 자주 지나다녔는데 ‘수의사를 했더라면 배고프지는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조금 들긴 들더라고요”라고 답했다.
 

마임을 해석하는 방법, ‘보고 느끼는 것’이 정답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몸짓과 표정으로 연기하는 마임공연은 보는 사람마다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 모든 예술은 어떻게 봐야 한다는 틀이 없고 느끼는 대로 보는 게 정답이라고 유진규 씨는 말한다. “모든 예술이 처음에는 낯서니까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마임의 경우는 각자 보는 세계가 다 달라요. 그 부분은 예술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열리기 시작해요. 이야기가 있는 마임의 경우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추상적인 마임 공연은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추상화도 마찬가지잖아요.
우리가 아는 이야기나 생각하는 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나 이미지로 보는 거예요. ‘이런 부분은 이런 관점에서 봐야하는구나, 이런 표현방법은 이렇게 이해해야 되는 구나’하고 요령이 생겨요.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죠”
유진규 씨는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이야기하려면 말이나 글로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마임은 언어로만 소통해야 한다는 고정된 틀을 없애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그는 대화할 때 말뿐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움직임과 표정, 눈빛으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말이나 글을 통해서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허상이에요. 『Body Language』라는 책을 보면 말로 주고받는 내용이 상대에게 끼치는 영향은 10%가 안 된다고 해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귀담아 듣지 않고 한귀로 흘려보내기도 하잖아요. 상대의 행동이나 취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감정이 없는 소통이 아닌 그만의 소통방법
   그는 항상 다른 이들과의 소통에 대해 고민한다고 말한다. 지난 8월에 서울인사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유진규의 하얀방>은 다른 공연과는 달리 마임을 하지 않았다. 여러 개의 방들로 이루어진 이 공연은 관객들이 미로 속 숨겨진 방을 체험하는 색다른 설치공연이었다.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그에게 남들과는 다른 그만의 소통방법에 대해 물었다. “어떤 대상과 소통하기 위해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해요.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이후에 오는 것들은 재미는 있을지라도 이미 익숙해져 버린 상태에요. 사람들은 ‘첫’이라는 단어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잖아요. 첫 경험에 의미를 두는 이유는 ‘도대체 이게 뭘까, 어떻게 전개될까’를 예측할 수가 없어서 그래요.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예술축제에 도입된 졸업제도
   춘천마임축제는 5년 연속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최우수 문화축제로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심사를 해 우수한 축제를 지원하고 있다.
   “축제를 하려면 예산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재정적인 안정이 중요하죠. 춘천마임축제는 5년째 지원을 받고 있는데 재작년부터 ‘3년 졸업제’가 시행되고 있어요. 우수 문화 축제로 선정이 되더라도 3년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예요. 다른 지역축제에도 골고루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죠. 문화예술은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쟁력 있는 축제를 지원해줘야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졸업제도 도입 후 이미 2년간 지원을 받은 춘천마임축제는 앞으로 지원 받을 수 있는 기간이 1년 남았다.
   이에 대한 대안이 마련돼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진규 씨는 마땅한 대안은 없다며 앞으로 예산을 어디서 확보해야 하는지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축제를 운영하기 위한 예산은 정부나 자치단체의 기금과 문화재단의 기금, 협찬금이나 개인의 후원금, 입장수익금이나 기념품 판매수익으로 마련하고 있다.
춘천마임축제는 현재 기업의 후원이나 입장료 수입은 안정돼 있는 편이다. 유진규 씨는 “앞으로 개발해야 할 부분은 협찬금이나 개인의 후원금 부분이에요. 공연이나 전시회 같은 부분은 예산이 없으면 안 되니까 작품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예산확보도 해야 하죠”라고 답했다.


한국마임 23년, 앞으로 필요한 것
   춘천 마임축제는 프랑스 미모스 마임축제와 런던 마임축제와 더불어 세계 3대 마임축제로 꼽히고 있다. 유진규 씨는 우리나라 마임축제의 수준이 프랑스와 영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외국사회에 뿌리내린 예술에 대한 이해라고 한다.
“프랑스와 영국에는 이미 예술을 어떻게 키워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예술에 대한 인식이 척박해요. ‘예술’하면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거라는 생각이 여전하거든요. 예술의 가치나 예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에요. 예술로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상업주의 의식도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올해로 23년에 접어드는 춘천마임축제는 89년 100여 명의 관객으로 시작했다. 올해는 14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축제에 참여할 정도로 성장했다. 마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던 23년 전과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물어보았다. “일단 마임을 연극계나 공연계에서 인정을 안했어요. 한번은 공연하기 위해 국립극장대관을 문의했는데 ‘우리는 마임을 하는 극장이 아니다’라는 답변이 왔어요. 그럼 뭐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발레나 무용, 연극을 하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임은 길에서 광대들이 하는 거 아니냐는 인식이었죠. 마임에 대한 이해가 없었어요” 유진규 씨는 마임축제를 통해 마임이 공연예술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확실하게 인식시켰다고 말한다. “지금은 문화예술위원회에 문화 기금을 신청할 때 신청항목에 마임이 한 분야로 명시돼 있어요. 예술계에서 마임을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한거죠”
현재는 대학의 연극이나 무용을 전공하는 학과에서 마임을 배우는 과목이 생겼다. 마임축제를 통해 마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해외와 한국 마임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3년간 마임축제를 이끌어온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옛날에 우리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 정월대보름이었다고 해요. 백 년 전만 해도 한 달 밤낮을 놀았다는 문헌상의 기록도 있어요. 농촌에서는 농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빌고, 어촌에서는 고기가 잘 잡히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일제시대 때 그런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고 해요. 앞으로 예술을 통해서 우리전통의 흥을 되살리고 싶어요. 우리민족이 워낙 술 잘 먹고 춤 잘 추는 민족이잖아요. 그 피가 어디 가겠어요?” 8월 14일에 끝난 <유진규의 하얀방> 이후 유진규 씨는 내년 5월에 있을 마임축제 준비로 벌써부터 바쁘다. 항상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마혜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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