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이번 특집기사의 주제 ‘다크 투어리즘’의 장소인 거제도포로수용소에 다녀왔다. 거제도포로수용소는 6.25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포로가 됐던 공산군과 반공 세력을 함께 수용했다. 이념대립으로 반공 포로와 친공 포로 간의 유혈상태가 자주 발생했고 많은 포로들이 죽어나갔다. 포로들 간의 이념대립은 해결되지 않은 채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 후 이 수용소는 폐쇄됐고, 친공 포로들은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보내졌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한 날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입구에서 본 수용소는 산으로 뒤와 양 옆이 둘러 쌓여있는 형태였다. 거제도는 섬이어서 외부와 교류하기 힘든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어 포로를 수용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현재 거제도포로수용소는 전쟁 당시 수용소의 터만 남아 있을 뿐 유적지 잔해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한국전쟁 존(Zone), 포로수용소 존, 프리쇼 존 등의 6.25 한국전쟁과 관련된 다양한 체험관과 조형물로 구성돼 테마공원처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잔혹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학살된 시체를 태웠던 소각로, 카펫을 짜기 위해 모아둔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유대인들을 실어 나른 철로, 고문실 등이 현재까지도 보존되고 있다. 일본은 세계 2차 대전 때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지붕이 날아간 히로시마 상업전시관을 기억해야 할 상징물로 남겨뒀다. 두 나라는 역사의 현장을 남김으로써 이런 일들이 인류의 역사에 또 발생하지 않도록 선조의 잘못을 교훈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거제도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후 곧바로 철거됐다. 기자는 외국의 사례처럼 수용소를 문화재로 남겨두지 않고 왜 바로 철거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수용소를 원래 모습으로 보존했더라면 후손들이 비극적인 역사의 장소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교훈의 장으로 활용되어 더 가치있는 장소가 됐을 것 같아 아쉬웠다.
  기자는 참혹한 장소를 돌아보며 반성의 기회를 갖는 다크 투어리즘의 취지를 생각하며 이곳을 방문했다. 그런데 역사적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는 다크 투어리즘의 의도와는 관련 없는 인공폭포와 분수광장 조형물 등이 수용소 입구에 있었다. 이 같은 조형물들 때문에 수용소 보존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역사의 흔적을 남겨 반성의 기회를 주는 문화재인 만큼 관련기관에서는 보존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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