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날 오전에는 비가 내렸다. 비 온 후의 공기는 묵직하면서도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손을 마주 잡은 연인들, 배낭을 등에 메고 카메라를 목에 건 관광객들도 그 공기처럼 고요히 빗물에 젖은 낙엽들로 덥힌 길을 걷고 있었다.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마주한 북촌은 길가에 늘어선 골동품 노점상과 곳곳에 들어선 카페와 갤러리,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전통적인 건물이 공존하는 낯선 풍경을 하고 있었다. 

 

 

 

 #2  일단 북촌로를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북촌으로 떠나기 전 사전조사를 해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떠났다. 선입견과 기대 없이 보고 느낀 그대로의 체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런 정보 없이 여행을 시작했다. 일정에 맞춰 정해진 시각, 정해진 장소에 가기 위해 조급한 마음을 갖고 떠나는 여행과 다르길 바랐기에 더욱 그러했다. 결국엔 추천코스와 비슷한 길을 가게 된 셈이었지만.

 

 

#3 카페와 상점, 박물관, 갤러리 등이 북촌로를 따라 일렬로 늘어서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북촌로 옆으로 가지처럼 뻗은 골목길에 들어서야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촌)’, 북촌을 만날 수 있다. 오랫동안 북촌을 지키고 있는 고즈넉한 집과 공방, 문화재들이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양반들이 살았다는 그곳에 지금도 그들의 후손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석까래와 주춧돌이 그곳이 북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4 그렇게 골목 이곳저곳을 발 닿는 대로, 때론 앞선 사람들을 따르다보니 관광객들이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곳에 다다랐다. 알고 보니 북촌 6경 가회동 골목길이었다. 가회동 골목길은 마주보고 있는 한옥들의 처마 끝 사이로 서울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명소이다. 해질 무렵 도착한 그곳은 저 멀리 아직 완전히 어둠이 깔리기 전의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한 서울의 야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5 관광객 무리를 빠져나오자 누군가 덩그러니 놓은 듯 주택가 안에 있는 박물관이 보였다. 작은 규모의 북촌 동양문화박물관이었다. 총 3개의 전시관으로 이뤄진 박물관은 설립자 정산 권영두 관장이 30년 동안 수집한 한국 및 아시아 문화 예술품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현재는 기획전 <티베트, 영혼의 울림 展>이 진행되고 있으며, 박물관 내 마련된 서당에서는 체험프로그램도 실시한다. 이외에도 북촌에는 세계장신구박물관, 북촌생활사박물관, 서울 닭문화 박물관 등 소규모의 박물관들이 골목에 자리 잡아 저마다 가진 색을 소담스럽게 품고 있었다.

#6 박물관 관람을 끝내니 이미 완연한 밤이었다. 돌담길을 따라 삼청로에 들어서자 불빛을 밝히고 있는 카페와 브랜드 샵, 음식점들로 거리는 반짝이고 있었다. 가을, 비, 금요일, 초저녁, 불빛 ․․․․․․.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모든 요소가 그곳에 있었다. 때문에 잠시나마 멀리 다른 지역,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느꼈던 목까지 차올라 일렁이는 자유로움과 외로움을 서울 한복판 삼청로를 걸으며 느낄 수 있었다. 청화대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경찰관이 들고 있던 야광봉마저 몽환적으로 보였을 정도로. 안국역으로 돌아와 북촌 투어를 끝낼 때까지 빛나는 삼청로에서 그 울렁임을 마음껏 즐겼다.

  북촌에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규모나 화려함을 자랑하는 볼거리는 없었다. 대신 오랫동안 서로 담을 맞대고, 대문을 마주하고 살아온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한옥이 옹기종기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마을이 보여주는 일상이 있었다. 저녁때가 되면 한옥에서는 밥 짓는 냄새와 소리가 나고, 그 집으로 돌아올 사람이 있는. 그렇게 북촌이 품어온 일상은 역사와 전통이 되었고, 오늘도 북촌은 또 하루의 일상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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