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계획이 성공의 방법이다’. <월간미술> 기자, 안그라픽스 편집장을 거쳐 도서출판 ‘북노마드’ 대표로 일하고 있는 윤동희 씨는 가급적 계획을 세우지 않으려 한다.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북노마드’라는 이름도 유목민이라는 뜻의 노마드(Nomad)에서 따왔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노마드’적인 삶을 꿈꾸는, 우리 대학 큐레이터학과에 출강하고 있는 교수이자 북노마드 대표 윤동희 씨를 만나보았다.

내일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윤동희 씨는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계획 없이 살아야 한다고 했다. “계획이라는 것은 앞으로의 일을 말해요. 그런데 계획을 세우면 그날 바로 하기보다 내일로 미루게 되죠. 오히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 간절해져요. 저는 현재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무엇보다 계획이라는 ‘틀’에 갇혀서 사고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는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영상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온 나라가 IMF 구제금융으로 뒤숭숭하던 시절 다니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미술잡지 기자가 됐다. “대학교 때 교양과목으로 전공과 관련 없는 미학 수업을 들었어요. 몇 장 분량의 레포트를 쓰는 과제에 거의 잡지를 만들어서 냈어요. 그때부터 그런 걸 좋아했어요. 교수님도 교양 수업에 열심히 임한 저를 눈여겨보시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어요.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며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갔는데 그 교수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이 바로 <월간미술> 이건수 편집장이세요. 그분의 권유로 전공과 관계없이 ‘월간미술’에 들어가 미술기자로 일하게 됐어요.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10여 년 이상을 미술기자, 편집장을 거쳐 작은 출판사를 차리기로 결정했다. 미술과 시각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를 병행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 2007년 4월 1일, 북노마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새로운 미술잡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북노마드는 여행, 에세이, 시각문화, 음악에 관한 책을 출판하고 있다. 4년간 혼자 꾸려나갔지만, 국내 굴지의 출판사 ‘문학동네’의 계열사로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아주 예쁜 시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출판사 모토에 어울리는 작고 소소하지만 갖고 싶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그의 관심사는 디자인 스튜디오 ‘제너럴그래픽스’와 함께 내년 상반기에 창간하려는 새로운 시각문화 전문지로 향해 있다.
   “지금까지의 미술 전문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문화 전문지를 만들고 싶어요. 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싶어요. 편집위원과 필진을 꾸리기 위해 디자인, 건축, 미학, 예술철학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어요”

북노마드의 경영시스템, 멘토와 멘티

   그는 책 한 권을 만들 때도 편집은 물론 기획 단계에서부터 책의 ‘물질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는 캐비닛이나 울타리를 만들 때 뒤에 숨겨져 안 보이는 부분도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어요. 저는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책을 만들 때 컨셉과 내용은 기본, 그 책이 갖는 내면적 물질성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 무엇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죠.”
   무엇보다 ‘인간적인’ 책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편집자를 채용할 때도 그 법칙을 적용한다고 말했다. “요즘 기업들은 대부분 경력직을 원하죠.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옳은 걸까요? 아마 10년 후면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경력직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요. 지금 젊은이들을 비정규직으로 가볍게 대하는데 나중에 정규직으로 경력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는 기업의 이윤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북노마드를 향한 믿음이 있는 젊은 친구라면 그보다 더 큰 믿음으로 함께하고 싶어요.”
   윤동희 씨는 책을 만들다 보면 편집, 교정, 디자인, 제작 등 사소한 것일수록 제대로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편집자이자 경영자의 역할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노마드가 원하는 콘텐츠와 운영 시스템이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 고민하는 것들과 완성된 책 사이의 관계를 통해 북노마드만의 ‘Booknomad Way’를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일하고 싶은 회사, 직원들이 행복해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대학생들이 가져야 하는 것, 비물질적인 감각과 감성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가르치는 그에게 요즘의 대학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는 대학생들이 너무 토익 공부와 학점 관리에만 매달린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유가 있다면 한 학기에 한 번 정도는 수업을 빠져도 좋다고 말해요. ‘날씨가 정말 좋아요’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올게요’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어요. 대학생 때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놓치지 말자는 거예요”
   그는 학생들이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세계 속에서 비물질적인 감각과 취향, 감성을 포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60년대 후반에 컴퓨터는 단순한 정보기술에 기반을 뒀던 것이 아니었어요. 지금처럼 물질문명이 아닌, 반문화 운동과 히피의 세계와 겹친 비물질적인 흐름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어요. 지금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물질적인 것들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바라봐서는 안돼요. 그 속에 어떤 정신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지 간파해야 해요”

미술 ‘밖’의 시선으로 미술 ‘안’을 들여다 보다

   윤동희 씨는 자신이 미술에 대해 강의하지만 미술 관련 서적은 잘 안 본다고 말했다. 대신 미술 ‘밖’의 시선으로 미술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즐겨 읽는다. “마케팅 전문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자신의 저서 『마켓 3.0』에서 기능(마켓 1.0)과 디자인(마켓 2.0)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마켓 3.0)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해요.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든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자칫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살아갈 수도 있어요. 지금 대학생들 역시 물질주의나 경력, 취업에만 신경 쓰기보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적인 문제에 시간을 쏟기를 바라요. 책과 예술이 그것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Passage)가 될 수 있어요. 세상 모든 현상 또는 일(Text)에는 그것이 생길 수밖에 없는 맥락(Context)이 있어요. 학생들이 그 맥락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근 그에게는 ‘새벽 3시 반’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좀처럼 자지 않는 그의 습성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하루 중 자신의 감성이 가장 충만한 시간인 새벽 3시 반에 깨어 있는 것을 행복해한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줄 때에도 새벽 3시 30분까지 제출하라고 한 뒤 아침 6시까지 채점하곤 한다.윤동희 씨는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믿는다. 우연이 필연이 되고 인연이 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미학을 기대한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우리의 인연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면서 기자에게 또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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