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빠순이’로 폄하되었던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한동안 선행과 봉사 이미지를 구축하며 잘 나가던 국내 팬덤 문화가 위기에 봉착했다. 최근 인기 걸그룹 ‘티아라’의 왕따 논란은 새로운 팬덤 경쟁문화에서 시작됐다. 부정적 이미지가 강력했던 초기의 팬덤 경쟁 문화는 진화를 거듭하며 긍정적인 팬덤 문화로 정착해 왔었다.

과거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 연예인과 친분이 있는 여자 연예인에게 얼굴을 난도질한 사진과 함께 면도칼을 우편으로 보낸 사건은 팬덤 문화의 대표적인 네거티브 사례다. 유해물질이 든 음료수가 배달되고 입에 담기 힘든 내용이 담긴 혈서 사건들은 한국사회 전체를 큰 충격에 빠트렸었다.

지난 2010년 ‘원더걸스’ 멤버 스캔들은 터닝포인트였다. 선미의 갑작스런 활동 중단 소식에 팬들은 소속사에 해명을 요구했고 결국 멤버들과의 만남을 성사시켜 원만한 해결방안에 일조했다. ‘2PM’ 박재범의 탈퇴 때도 팬들은 불매운동을 펼쳤고 전속계약 갈등을 벌였던 ‘동방신기’ 팬들은 멤버들의 인권보호를 외치며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었다. 이는 국내 팬덤 문화가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 긍정적인 사례로 기억된다.

최근 ‘사생팬’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며 팬덤 문화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기획사 앞에서 진을 치고 노숙하는 그들의 모습은 과거로의 완벽한 회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정보력과 기동력을 갖추고 무차별적으로 진보된 형태다. 스타의 신분증을 이용해 통화 내용을 노출시키고, 자동차에 위치 추적 장치를 불법 장착해 추적하고, 심지어 숙소에 무단 침입해 개인 물건을 촬영한 후 자고 있는 스타를 지켜볼 정도로 그 스토커적 행태는 상상을 불허한다.

국내 팬덤의 역사는 60년대에 등장한 최초의 댄스가수 이금희의 팬클럽이 시초다. 70년대에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남진과 나훈아 양측 팬들의 충돌은 처음으로 사회 문제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80년대에 가왕 조용필의 ‘오빠부대’와 90년대 신세대들의 문화대통령 서태지의 열성팬까지 팬덤 문화를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을 중심으로 팬클럽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팬덤의 대상은 연예인을 넘어 스포츠, 정치인들로 확대됐고 팬들의 봉사와 기부활동을 통해 팬덤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2012년 현재,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같은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도 멤버마다 지지 세력이 따로 존재한다. 이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 수가 늘어나고 그룹 활동과는 별개로 멤버들의 개별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특정 멤버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 그룹이 은퇴 기자회견을 할 때 회견장 주변에서 울고불고 하는 정도였다. 지금은 다르다. 소속사를 대신해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언론 이상의 감시 기능을 수행한다. 멤버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소속사에 미팅을 요구하고 대규모 거리 시위까지 계획한다. 좋아하는 스타가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되면 법원을 찾아가 소송까지 대신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화했다.

최근 걸그룹 ‘소녀시대’의 한 멤버가 공연 도중 무대로 난입한 남성 팬에게 끌려 나가는 황당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 같은 부정적 현상은 아이돌가수들이 비주얼 중심의 상품으로 변질된 것이 중요 요인이다. 사생팬들의 관심이 음악이 아닌 ‘특정 가수’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과 SNS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원활한 쌍방 소통도 팬덤 과열 경쟁을 부채질한 원흉이다.

TV, 신문,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가 사생팬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사실 상당수 온라인 팬덤들은 아이돌그룹 멤버들의 사생활 관련 글이나 사진 그리고 타 연예인이나 팬덤에 대한 비방글, 사생글 등을 금지하는 규칙을 정해놓고 있다.

건전한 팬덤 문화는 스타를 응원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스타를 응원하고 사랑하며 건전한 팬덤 문화를 지키는 진정한 팬의 자세가 다시금 요구되고 있다.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