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실용적인지 그렇지 않은지가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무언가가 실용적이지 않다면, 즉 돈을 벌어 주지 않는다면 곧 그것은 무가치한 것이 되어 버린다. 얼마나 실용이 중요했던지 심지어 현 정부의 이름도 실용정부이다. 이런 세상에서 교양에 대해 논하는 것은 진부하게까지 느껴진다. 교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수준에 그치는 정도이다.

이렇게 교양이 하찮게 취급되는 와중에 최고의 가치는 돈이 되었고 돈을 번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수단이 정당한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수년 전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물의를 일으켰을 때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연구 수단이 부도덕하다 하더라도 눈감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국익을 위해서라며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전쟁에 파병했고 그 결정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대기업 회장이 어마어마한 탈세를 했어도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용서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내 경제 사정을 좋게 해주고 내 집값을 올려 줄 수만 있다면 개인적인 부도덕함은 눈감아 줄 수 있다며 국민이 선택한 것이 현재 우리의 대통령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오히려 더 팍팍해지고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교양이다. 교양을 갖춘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자신의 힘으로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통찰하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이 정해준 가치관대로 살고 남이 좇는 것을 그대로 나도 좇으며 사는 것은 노예의 삶이지 자유로운 인간의 삶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히 귀찮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면 더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되며 진정한 자유인이 될 것이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리고 그 극소수는 대다수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하여 더욱 부유해지고 있다. 진정 이러한 세상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인가?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올바름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그 답에 대한 실마리를 교양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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