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단편적으로 소개됐던 편지를 모은 『조선시대 한글편지 서체자전』이 발간됐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왕과 왕비, 옹주, 궁녀, 사대부, 일반 백성이 쓴 한글 편지 400여 편이 세상에 공개됐다.
 

  수록된 편지 중 명성황후의 한글 편지는 약 140여 편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명성황후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사료이다. 편지로 알 수 있는 그녀의 글씨는 기존 서체(한문 서체 또는 한글 서체인 궁체)와 다르게 개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시전지(세로줄이 인쇄된 편지지)에 쓴 글씨가 똑바르지 않은 것 역시 눈에 띈다. 줄을 맞추는 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흘림체로 거침없이 이어 쓴 그녀의 필체에는 자기만의 굳은 신념과 정신으로 일국을 좌지우지하던 강인한 기질이 유감없이 엿보인다. 
 

  ‘중국 사신들이 그 필적을 얻고자 애를 썼을 정도’의 명필이라 불렸던 선조의 한글 편지도 있다. 정자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필력에서 선조의 자상한 성품을 읽을 수 있다. 전해지는 편지는 모두 그의 세 옹주에게 보낸 것으로, 자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담은 내용이다. 아마 선조는 올곧은 임금인 동시에 소위 ‘딸 바보’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이외에도 효종의 거침없고 시원한 필체를 통해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품을, 숙종의 편지에서는 획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쓰는 올곧음을, 힘차고 굳은 세로획의 정조의 필체에서 문체반정을 추진했던 굳건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대전 안정 나씨의 묘에서 발굴된 한 통의 편지에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6세기 임진왜란 당시, 군관으로 근무했던 남편 나신걸은 부임지로 발령받아 떠나는 중에 혼자 있을 아내가 걱정돼 견딜 수 없었다. 한자를 모르는 아내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글로 된 편지였다. 당시 귀한 물품이던 분과 바늘과 함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집에 들를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히 표현돼 있다. 특히 편지에서 그는 아내에게 ‘자내(자네의 옛말)’라는 존중의 호칭과 ‘~하소’체를 쓰고 있는데 이는 남존여비 사상에서 점차 남녀평등 사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조선 중기의 변화를 보여준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한글 편지의 서체는 휘갈기듯 쓴 흘림체가 많다. 개인적인 문서인 만큼 편하게 썼고, 편지의 전달이 어려웠던 시절이라 인편이 있을 때 급하게 작성했기 때문이다. 읽어내기가 쉽지 않지만, 한글 편지에는 편지를 쓴 당사자의 성격과 생활 속 솔직한 감정이 녹아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한글 편지로 알 수 있듯, 편지를 보면 보내는 사람의 마음과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편지는 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매개하는 소통의 창구이다. 현대에 이르러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신이 이제부터라도 편지로 사랑하는 이와 그리고 미래의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바라며.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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