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발족되고 난 후 일본군위안부(이하 위안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어느새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한 지 약 23년이 흘렀다.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과 희생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시작된 ‘수요 집회’는 1,000회를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일본은 사과는커녕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얼마 전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가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57명이 됐다. 가족뿐만 아니라 여·야, 연예인, 학생 등 남녀노소 대부분이 안타까움을 표하는 와중에도 ‘악플’은 있었다. 악플러들은 도를 넘은 수준의 내용으로 고인과 위안부를 모욕했다. 이에 분노한 누리꾼은 신상공개와 고소를 주장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 보장은 우리에게 더 자유롭게 의사 표현할 기회를 제공해 주지만 반대로 정제되지 않은 무자비한 언어도 묵과시킨다. 악성 댓글을 남기는 것은 상대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전까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또한 특정 문제를 가지고 사과하지 않는다고 해서 경찰에 잡혀가지도 않는다. 이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도덕성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댓글, 사과의 말 한 마디를 하는 것이 이득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승자박,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가 결국 본인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연예인에게 악성댓글을 남겨 고소당한 사람들을 보면 그제야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소 취하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참 어리석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성숙함의 기준으로 육체, 감정, 배려 등 많은 것을 든다. 책임지지도 못할 행동을 하면서도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가야만 뒤늦게 문제를 시인하는 자세 역시 분명 미성숙한 태도일 것이다. 진정한 성숙이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며 행동하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일본정부, 그리고 악플러에게 바라는 태도는 바로 이 성숙된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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