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그동안 정적인 예술활동으로 여겨졌다. 작가 혼자 그리는 비활동적인 창작과정을 거칠 뿐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 역시 전시라는 고정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미술을 어렵거나 지루하게 생각한다. ‘드로잉쇼’는 이런 편견을 깨고 미술과 공연의 접목을 통해 ‘역동적인 미술’을 선보인다. 

드로잉쇼는 ‘난타’처럼 대사 없이 음악과 배우들의 몸짓 등으로 진행되는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외국인이나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배우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넌버벌 퍼포먼스의 매력이다. 실제로 드로잉쇼는 외국에서 온 단체 관람객이 많이 찾는다. 그렇다면 여타 넌버벌 퍼포먼스와는 다른 드로잉쇼만의 매력은 무엇이 있을까.

기존의 넌버벌 퍼포먼스는 대부분 춤과 음악으로 이뤄졌다. 대표적으로 앞서 말한 난타와 ‘판타스틱’, ‘비밥’ 등이 있다. 드로잉쇼에서도 춤을 추고 음악으로 흥을 돋우지만, 극의 긴장감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 몰라서 배우의 손짓 하나 하나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무렇게나 그리는 선인 줄 알았는데 그런 선이 여러 개가 모여 한 송이 꽃이 되는 식이다. 또 공연 중에 총 7개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각 작품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 숨어 있다. 이 같은 반전을 찾아내는 것도 드로잉쇼의 묘미다.

공연의 막을 올리는 첫 작품은 ‘빛드로잉’이다. 빛드로잉은 박진감 있는 배경 음악과 신비한 느낌을 뿜어내는 빛이 만나 만들어낸 작품이다. 시작과 동시에 불이 꺼지며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가 절도 있는 손짓으로 까맣게 칠한 판을 긁으면 그 자리마다 빛이 한 줄기씩 나온다. 눈 깜빡할 사이에 한 폭의 그림이 완성돼 어둠 속에서 빛난다. 빛드로잉을 보고 있으면 그림이 아니라 마치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보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빛드로잉이라는 생소한 기법에 대한 호기심도 공연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플라워드로잉’은 관객이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먼저 배우가 꽃 한 송이를 그리면 관객은 그것을 보고 따라 그리면 된다. 배우의 그림처럼 잘 그릴 수 없어서 무대에 나가기를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은데 꼭 잘 그릴 필요는 없다. 조금 이상하게 그린다고 해서 아무도 이를 비웃거나 비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용기를 내 무대에 나가 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모두가 박수를 쳐준다. 또한 관객이 그린 그림은 본인에게 돌려줘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한다. ‘어린 시절 즐겁게 그림을 그리던 체험이 미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김진규 예술감독의 생각이 녹아있는 코너다.

미술관에 걸려 있어야 할 그림을 무대 위로 옮겨온 작품도 있다. ‘마스터피스’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 명작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를 배우가 무대에서 직접 2미터가 넘는 화폭에 단 6분 만에 그린다. 배우의 빠른 손놀림에 왠지 모를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이뿐만 아니라 근엄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원작을 밝고 희망차게 바꾸는 마지막 반전은 드로잉쇼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손색없다. 이러한 마스터피스의 반전은 관객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드로잉쇼에서 만날 수 있는 미술은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고 오히려 신선하고 재미있다.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작품이 완성돼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놀랍게도 드로잉쇼는 세계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선보인 ‘회화 공연’이다. 이를 기획한 김진규 감독은 각종 방송이나 해외 공연에 초청되는 등, 드로잉쇼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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