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았다”

▲ 지난 1일 광주지법의 판결에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82)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1일, 근로정신대 할머니 4명, 유족 1명이 일본 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14년 동안 진행해온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광주지법은 원고인 피해 당사자 4명과 유족 1명에게 위자료(당사자 4명에게 각 1억 5,000만 원, 유족에게 8,000만 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손해배상액이 이전보다 늘어난 것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들의 나이가 당시 만 13-14세로 강제 노동을 하기엔 너무 어렸고, 근로 기간이 1년 5개월이었다는 점을 들어 설명했다.
 
강제 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이력은 지난 7월 1일 서울고등법원(신일철주금 상대·배상액 1인당 1억 원 배상), 31일 부산고등법원(미쓰비시 상대·배상액 1인당 8,000만 원)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1999년 3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일본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고 패소했다. 2008년 최종 기각된 후 지난해 10월 다시 소송을 시작했으며 14년 만의 투쟁 끝에 마침내 일부 승소라는 값진 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관련 문제가 종결됐다는 식의 판단을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많은 이의 우려대로,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법적 투쟁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지난 17일, 미쓰비시는 근로정신대 피해 여성에 대한 배상 판결에 불복,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 같은 대응에 여야를 비롯해 대한변호사협회,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등의 시민단체는 “미쓰비시 중공업이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죄하고 즉각 보상해야 한다”라며 강한 반발을 내비쳤다.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를 둘러싼 역사적 함의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는 서로 별개의 대상을 지칭하고 있다. 위안부는 제2차 세계대전에 동원돼 일본군에게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뜻한다. 이와 달리, 근로정신대는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군수공장에 파견된 강제 징용 노동자를 말한다. 양금덕(82세) 할머니를 포함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는 일본에 가면 상급 학교에 보내주고 돈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에 미쓰비시 항공기제작소로 가게 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곳에서 할머니들은 1년 이상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강제 노동력 동원과 성적 착취는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는 혼용되고 있다. 올해 4월 출간된 교학사 한국사대전은 근로정신대와 위안부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난 9월 우편향 논란으로 화제의 중심이 된 교학사 교과서 역시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의 개념과 파견된 시기를 혼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계에서는 위안부 희생자의 숱한 증언과 일본 정부의 사과 사실 등을 왜곡한 것과 다름없다는 반응이 일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건은 근로정신대에 지원한 여성이 상황에 따라 위안부로 징집된 사례가 적지 않고, 위안부 또한 은밀하게 모집됐던 역사의 불편한 진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종전 후 근로정신대로 강제노역을 마치고 돌아온 여성대부분은 위안부로 오해를 받았다. 일본군의 성적 노예였다는 오명을 피하고자 근로정신대에 파견됐던 자신의 과거가 발각되기를 꺼려했고, 이는 현재에 와서 역사적 진실이 왜곡되는 요인이 됐다.
 
이러한 역사적 정황과 미쓰비시에 대한 승소판결 그리고 최근 화두인 성폭력에 대한 시각이 맞물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이미 종결됐다는 논리를 펴왔다.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 여성에 대한 보상을 포함해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 간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국가 간 정식 합의로 완전히 해결된 것이라는 것이다.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아시아 여성기금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자국의 노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한국의 기본 입장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위안부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에 위안부의 투쟁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 적극적 대응 필요해
지난 13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내년 중 개정될 일본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정부 간에 법적으로 해결됐다’라는 내용이 실릴 예정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새로운 교과서 검정 기준에 역사 및 영토 문제와 관련해 정부의 통일된 견해나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 관련 내용을 담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외교부 관계자는 역사를 왜곡하는 부당한 처사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와 함께, 승소판결 이후 근로정신대와 더불어 위안부에 관한 배상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을까하는 국민의 기대와 바람도 무너졌다.
 
일본군 위안부 수요 집회가 이번 달 13일 1,100회를 맞았다. 국민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직 위안부가 겪은 피해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보상이나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우기기식 주장을 펴는 데 비하면 자국의 피해보상 문제에 관한 대응은 다소 미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현안을 분리하고 이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할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배상 문제를 역사 속에 사라질 소수의 문제가 아닌, 지금 당면한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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