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보았던 영화 중 한 편으로 인해 기자는 관람 직후 입맛을 잃었고 일상 속에서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영화 속 장면들로 인해 진저리를 치곤 했다. 평소 공포물과 고어물을 보길 꺼려하던 기자가 어쩔 수 없이 봐야 했던 영화 <피라냐>가 바로 그 영화다. 영화는 기자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잔혹하고 선정적인 영상을 88분의 런닝 타임 동안 쉬지 않고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피와 살의 향연. 더욱이 3D로 봤으니 유독 자극을 강하게 받았을 수도 있지만, 객관적으로도 영화는 말초적이고 본능적인 자극을 과도하게 추구한 듯 했다.
잔혹성과 선정성을 강하게 띤 영화는 <피라냐>뿐만이 아니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서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악마를 보았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아저씨>와 최근 선정성을 앞세워 노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신작 <나탈리>, <두 여자> 등이 그 예이다. 작품을 끌어가기 위해 극적인 요소가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일부 영화는 자극 자체에 중점을 두어 더 잔혹하고 더 선정적이고 더 폭력적인 자극을 관객에게 주고 있다. 이런 추세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자극의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는 비단 영화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문화의 파격화
접근도와 영향력 측면에서 가장 대중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대중매체인 TV 속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는 막장에, 음악방송은 아이돌 가수의 선정적인 무대에, 예능 프로그램은 폭로와 리얼에 빠져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자극적 소재와 전개가 버젓이 펼쳐지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아예 출생의 비밀, 강간, 폭행, 살인, 불륜 등 자극적 소재를 가지고 이를 비상식적으로 풀어나가는 ‘막장’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SBS의 <강심장>은 아예 프로그램의 제작의도가 누가 더 독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겨루는 것이다. 때문에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나면 인터넷에는 출연한 연예인들의 폭로에 가까운 고백에 대한 화제성 기사가 넘쳐난다. 음악방송도 다르지 않다. 3~4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가수가 지닌 모든 역량을 보여주어야 하는 특성 때문에 더 강렬한 자극을 마구 쏟아낸다. 선정적인 안무와 가사, 의상으로 구성된 무대를 선보이는 아이돌 가수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 사이에는 간혹 미성년자도 있다.
자극을 추구하는 문화현상은 영역 내에서 더 큰 자극을 가지고 경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대중의 취향을 변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연극보다는 감각적인 뮤지컬과 3D 영화로, 실제 피를 튀기는 생생한 결투의 현장인 K1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에서 알 수 있다. 또한 3D, 증강현실과 같은 IT기술은 컨텐츠 못지않게 자극의 극대화에 공헌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가장 정적이면서도 비감각적인 책은 나날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엔도르핀을 추구하는 사회
이처럼 우리는 자극의 세계를 살아간다. 인간이 가진 오감을 자극하는 사회 말이다. 이러한 말초적 자극의 세계를 살아가는 대중은 과연 행복할까?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가 운영하는 세로토닌 문화원 측은 엔도르핀(Endorphin)과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설명하며 현재 문화 전반에 걸쳐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자극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우리의 몸이 극적인 기쁨, 환희와 같은 자극을 받을 때 뇌에서는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흔히 유익한 물질로 알고 있는 엔도르핀은 사실 중독성이 있어서 위험하다. 극적인 환희와 쾌락에 반응하는 엔도르핀은 자제력이 없기 때문에 더 강하고 지속적인 자극을 원하기 때문이다. 내성이 생긴 몸에 기존의 자극 이상을 요구하는 정도를 달성시키지 못하면 엔도르핀을 통해 얻은 기쁨은 다시 스트레스로 돌아온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긴장이나 흥분을 했을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Adrenaline)과 엔도르핀을 조절하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감소시켜 우울, 불안과 같은 인간의 감정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위의 말처럼 자극적인 문화의 수요자인 대중들은 자극에 중독되어 이제 웬만한 자극 앞에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더 큰 자극을 찾는다. 더 이상 ‘파격’을 파격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이에 문화 생산자는 대중의 요구에 맞춰 더 생생하고 자극적인 문화를 또 다시 생산한다. 이러한 자극을 받는 대중은 그 순간에는 즐거울 수 있지만, 문화 자체를 즐기고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을 소비하는 것에만 그치게 될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서도 회상하며 감동받는 문화가 아닌,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처럼 변질되는 세태가 그것을 말해준다.
자신만의 문화세계를 구축하길
권경우 문화평론가는 이런 악순환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경제․경쟁 중심의 한국사회가 등한시 했던 문화 개발과 육성의 미비로 인해 문화적 안목을 키우지 못한 문화 소비자 즉, 대중의 한계를 꼽았다. 그는 "다양성의 부족으로 인해 유행과 트렌드라는 이름하에 문화는 획일화됐다. 이런 문화적 상황에서 차별화 할 수 있는 방편은 ‘강도(强度)’ 밖에 없다. 누가 더 많이 벗고, 더 잔인하고 더 폭력적인가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려있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원하는 예술을 갖지 못한 채 일방적인 수용자로서만 존재하는 대중들의 문화적 소비의 한계다. 강도 높은 자극에 대해 대중은 담배와 마약에 빠지듯 중독되어 그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문화의 생산자인 문화관련 종사자들과 소비자인 대중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자극의 세계에 대해 제시하는 생물학적 관점과 사회학점 관점의 답은 동일선상에 서 있다. 이는 바로 자극을 이젠 내려놓으라는 것. 세로토닌 문화원 측은 중독성을 지닌 엔도르핀을 유도하는 대신 일상생활에서 의미 있는 기쁨을 추구하는 세로토닌적 삶을 추구하라고 전했다. 권경우 문화평론가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대중이 개개인에 맞는 다양한 문화를 향유해야 의미 있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탄은 했으나 감동이 없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를 평가하던 심사위원 윤종신의 평가가 참가자뿐만 아니라 문화 전체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끝을 알 수 없이 쾌락으로 치닫는 자극의 결말이 그리 밝지만 않을 것이다. 이제 본능적이고 말초적인 자극에서 벗어나 감탄이 아닌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