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웹툰 <이말년 씨리즈>는 병맛코드로 사랑받고 있다

tvN <SNL코리아>에는 공중파 방송에서 금기된 성적 또는 정치적 담론이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이는 섹드립, 스덕후(시사풍자 코너 ‘개구쟁이 스덕후’에서 비롯된 신조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외에도 욕설이나 생리적인 행동이 유머의 소재로 쓰인다. 다소 자극적인 설정과 전개에도 불구하고 <SNL코리아>의 콩트가 개그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병맛코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병맛에 중독되다

‘병맛’이란 욕설을 순화해 표현한 인터넷 은어의 일종이다. 맥락을 파괴하는 상황이나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지칭하는 신조어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만화 코너에 한 네티즌이 연재한 <정재황>에서 처음 사용됐다. 원초적 웃음과 역발상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병맛코드는 이제 대중문화 전반에서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롤러코스터>에는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고소공포증이 있는 한류스타, 지나치게 회장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비서, 씨스타의 <나 혼자>를 부르며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 등이 등장해 어이없는 웃음을 유발한다. 가요계에서는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직렬 5기통 춤은 무대라는 공간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헬멧복장과 점프 동작이 가미돼 있다. 기존 걸그룹이 고수해 온 청순 혹은 섹시이미지와 상반되는 귀여움과 의외성을 강조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때문에 신인 크레용팝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잇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데뷔 직후 단숨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이목을 끌었다.

병맛코드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는 이말년(본명 이병건) 작가가 연재하는 웹툰, <이말년 씨리즈>가 있다. 이 작품은 2009년부터 네이버 수요일 코너에 연재되다가 작년 12월 완결됐다. 선이 명확하지 않은 그림체, 괴팍한 말투와 생김새를 지닌 캐릭터, 현실에선 흔치 않은 황당한 상상이 담긴 줄거리가 특징적이다. 위독한 아버지에게 웃으며 좋은 곳으로 가시라며 ‘뱀이 불타면 뱀파이어’라는 개그를 하거나(‘개그왕 中’ 편) 사부가 수련을 끝마친 제자에게 오늘은 수요일이니 분리수거를 하라고 말하는 식(‘본격복수만화’편)이다.

병맛코드와 B급문화의 상관관계

병맛코드와 더불어 자주 거론되는 말로는 ‘B급문화’가 있다. B급문화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정통이 아닌 비주류의 문화, 혹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마니아층이 누리는 문화를 의미한다. 각종 심의규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금기시돼 왔던 일련의 소재를 활용한 병맛 코드는 B급문화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B급이라는 말은 ‘2류’처럼 질 나쁜 하위문화로 인식된다. 소수의 지배층이 규정한 A라는 범주에 들지 않으면 B급으로 밀려난다. B급문화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20년대였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의 작품에 ‘끼워팔기’ 식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를 가리켜 B급영화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후, B급문화는 주류가 되지 못한 열등감을 주류문화에 대한 풍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하는 반항의 문화로 인식돼 왔다.

B급문화의 주된 특성으로 병맛코드가 거론되기는 하지만, 병맛코드와 B급문화를 동일시하기엔 무리가 있다. 주류문화에 대한 부정성 띠고 있는 B급문화와 달리, 병맛코드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성을 지니고 있다. 어딘가 모자란 캐릭터에서 대중은 왠지 모를 우월감과 친근함을 느낀다. 이처럼 거부감이 들면서도 찾아보게 되는 묘한 양면성은 다른 말로는 대체 불가능한 ‘병맛스러움’ 그 자체이다.

병맛코드가 언제까지 B급문화로 존재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문화는 그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원더걸스의 <텔미>로 시작된 패러디 동영상 문화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통해 국내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대중화됐듯, 지금은 생소할 수 있는 병맛코드가 A급문화로 탈바꿈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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